유홍준 문화재청장은 2일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찾아왔다. 이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추석 차례와 성묘를 마치고 나면 전 국민이 하나같이 국가가 공인하는 3일간의 휴일을 즐기기 위하여 저마다의 구상대로 어디론가 떠난다. 올해는 마침 휴일과 연계되어 보통은 5일, 길게는 9일까지 황금의 휴가를 갖는다고 들떠 있다.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명절이 변질됐다고 탓하는 목소리가 일어난다. 본래 추석이라는 명절의 의미란 한 해 동안의 농사를 무사히 마치고 농사일에 바빠 찾아 뵙지 못했던 조상님의 묘소에 올라 감사드리는 것인데, 요즘 추석은 연휴를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만 골몰한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휴를 즐기는 것이 과연 추석의 의의에서 아주 벗어나는 것일까?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이 오늘의 한가위 풍속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닐까? 이 점에 대해 우리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래 전통이란 끊임없이 이어져 온다는데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전통이란 한편으로는 시대 상황에 맞추어 변해간다는 속성도 있는 것이다. 추석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큰 명절 추석의 유래
우리나라 4대 명절 중에서도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은 8월 한가위, 중추절이라고도 하는데 그 유래는 아주 오래되어, 농경사회가 자리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 축제이다. 이것이 전국에서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민족의 명절로 된 것이다. 추석은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만으로도 2천년이 더 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유리이사금 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9년(기원 32), 왕이 신라를 6부로 나누었는데 왕녀 두 사람이 각 부의 여자들을 통솔하여 7월 16일부터 날마다 길쌈을 하게 하여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지는 편이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가무와 온갖 유희를 벌였으니 이를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 때 진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라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여 뒷날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지은 노래가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가배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한가위의 어원이 된다. 또 중국의 역사책인 <수서>, <구당서>에는 “신라국에서는 8월 15일을 중히 여겨 음악을 베풀고 잔치를 열었으며 신하들이 활쏘기 대회를 열었다”고 하였으니 한가위는 신라시대 국가적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추석이 세월의 흐름 속에 온 민족이 기리는 명절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농사일과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1년 단위로 돌아가는 농사일은 엄청나게 바쁘다. 겨울철 농한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면 쌀농사, 밭농사, 보리농사의 씨뿌리기, 모내기, 김매기, 추수하기가 숨 쉴 겨를도 없이 이어진다.
추석 무렵이 되면 햇곡식과 햇과일이 나오고, 본격적인 추수에 앞서 이제 따가운 가을 햇살아래 벼가 익기만을 기다리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잠시 숨 돌릴 기간에 농민들은 햇곡식과 햇과일을 조상님께 바치며 올해도 농사가 무사히 이루어졌음을 감사드린다. 이를 영남지방에서는 ‘풋바심'이라 하고, 호남지방에서는 ‘올벼심리'라고 한다. 국은 추석 때 많이 나는 토란국을 끓이니 이것도 제철 음식인 셈이다.
급속한 이농현상이 낳은 60년대 이후 추석 풍속도
아직 본격적인 추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가위에는 명절 음식으로 송편이 생겼다. 송편은 햇쌀로 떡을 빚고 햇밤 또는 꿀, 깨, 팥, 콩 등을 속으로 넣어 반달모양으로 예쁘게 만든다. 같은 농경문화 속에 있으면서도 중국은 월병이라고 해서 둥근 달의 모양을 좋아했는데 우리는 오히려 반달을 좋아했다. 이는 보름달은 이제 기울어가지만 반달은 곧 가득 차게 된다는 성장의 의미가 있기 때문인데, 신라의 왕궁이 반월성으로 된 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추석에는 마을사람들이 어울려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한가위 둥근 달빛 아래 여인들은 강강술래를 추고, 남자들은 씨름판을 벌이고 아이들은 가마싸움을 즐긴다. 이 한차례의 축제가 끝나면 농부들은 즐겁고도 고된 가을걷이에 나서게 된다.
이처럼 추석은 농삿일의 주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공동 축제였던 것이다. 때문에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남쪽 지방에서 큰 명절로 되었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저서에서 추석은 가락국에서 나왔다고 했다.
같은 민족 명절인 단오는 보리농사와 관계되어 있다. 음력 5월 초가 되면 보리베기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틈이 난다. 이 때 우리는 단오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단오 축제는 보리농사를 많이 짓는 북한지역과 강원도 지역에서 큰 명절로 정착되어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의 세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추석보다 단오를 더 큰 명절로 치고 있다.
그러던 추석이 귀향 명절로 바뀐 것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급속한 이농현상이 낳은 새로운 풍속이다. 국민의 70퍼센트가 농민이던 우리나라는 현재 8퍼센트의 농민만 남겼으니 그 빠른 이농현상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인간 생태계의 변화였다.
70년대, 80년대 농촌을 떠나 도시 노동자로 편입된 이 분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된 노동을 감내했다. 휴일도 없이 야근과 철야로 이어졌다. 이들에게 주어진 휴가는 오직 추석과 설 뿐이었다. 어떤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추석이 되면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 고된 작업을 넘겼다고도 한다. 여기에서 추석 귀향이라는 새 풍속도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귀성 열차, 귀성객 등 추석에는 으레 귀성이 따라 붙게 되었고, 민족의 대이동은 연중 행사로 벌어지며, 극심한 교통란으로 역귀성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대로
몇 해 전 해외 토픽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추석이 되면 3일간의 휴가 기간에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는데 올 해는 교통사고로 200여명이 죽었다. 그런데 경찰 당국은 작년에 비해 많이 줄은 숫자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귀성객들이 벌이는 추석의 축제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60, 70년대에 추석 연휴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여론 조사에서 당시 귀성객들 중에는 “고향에 가서 부모님 곁에서 잠만 실컷 자고 오겠다”라는 대답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노동조건과 살림 형편이 조금 나아진 80년대에 오면 “고향에 가서 친구들과 밤새워 고스톱을 칠 것이다”가 대세를 차지했다. 그런데 21세기, 국민소득이 1만 5천 달러를 넘어서니 이제는 추석이 되면 “국내로, 해외로 여행하겠다”는 것이 한 추세가 된 것이다. 그 모두가 평소 하고 싶던 것을 해 보는 즐거운 여가 시간으로 즐기겠다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한가위 명절의 풍속도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런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토란국을 끓이고, 송편을 빚어 솔잎에 받혀 쪄내고, 바쁜 현대적 일상생활로 평소 얼굴 보기 힘들었던 형제 자매들과 한 상에서 식사를 한다는 사실이다. 추석이 아니라면 이럴 기회가 또 몇 번이나 있겠는가.
추석 귀향이 아니라면 정겨운 고향에 언제 이렇게 긴 시간으로 다녀갈 것이며, 고향 친구들을 이렇게 편하게 만날 수 있겠는가. 추석은 어떤 식으로 즐기던 우리의 가장 큰 명절인 것이다.
한가위 명절의 어제와 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