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3국이 모두 엽전을 쓰던 때가 있었다. 엽전을 끈으로 꿰매어 고리에 끼거나 목에 매고 다녔는데 일본에서는 돈을 마음대로 쓴다는 표현을 “가네니 이도메와 쯔게노”(엽전을 꼬인 끈의 한 군데를 묶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엽전을 매듭이 있는데 까지만 빼서 쓰고 그 이상은 안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마음대로 쓴다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 돈에 여유가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는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한 사회 안에 얼마나 되는지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면서 통계라는 것이 있어서 숫자를 가지고 돈에 구애받지 않는 계층을 측정할 수가 있게 됐다.
2004년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그런 부유한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0.5%로 대략 14만6천명이라고 한다. 그들 중에는 고액 연봉자, 고소득 실업가, 거액금융 자산가 그리고 숨은 부자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의 지도층은 걸핏하면 잘사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20%이고 못 사는 사람이 80%나 된다고 하면서 못사는 80%를 향하여 “이 양극화 현상을 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침몰할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나머지 사람들을 불안한 상태로 몰아 밥술이나 먹는 사람들은 모두 걱정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따지고 보면 인구의 20%가 돈을 물 쓰듯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 중의 극소수인 0.5%만이 그런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못사는 80%가 모두 들고 일어날 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20대 80은 무리한 분류이다. 해방 후 반세기 넘게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 오면서 중산층이 그렇게도 없을 수 있겠는가. 전 국민의 80%가 모두 제대로 끼니를 끓일 수 없는 가난뱅이들은 아니지 않은가.
도대체 사실도 아닌 그런 무리한 숫자를 가지고 양극화를 부르짖으면서 볼세비키 혁명 전야처럼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여 사회를 소란케 한다면 손해 볼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 0.5%를 포함한 국민 전체가 아니겠는가.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싸움을 붙이려고 획책하지 말고 못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여 가진 사람들 축에 끼어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부권력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오늘 못 가진 자로 하여금 분통이 터지게 만드는 것이 좋은 정치가 아니며 잘 사는 자가 교만에 빠지게 하는 것이 잘하는 정치가 아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에 통로가 마련되는 것이 올바른 정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