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왜 기억돼야 하는가? 두 번 다시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함이다. 참전용사들은 왜 예우받아야 하는가? 역시 전쟁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박세환(재향군인회장)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터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 사람의 목숨은 파리목숨과 같다. 평시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묻지만 전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묻는다. 이것이 바로 평시와 전시의 차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는가? 생존을 위해서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따라서 전시에 인권은 사치품에 불과하다. 전쟁터에서 좋은 의식주는 그림 속의 환상일 뿐이다. 오직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전투가 있을 뿐이다. 이겨서 살아남는 것만이 최선의 목표다.
전쟁에서 패배는 무엇을 말하는가? 몽골군이 한번 쳐 내려오면 20만 명의 국민이 인질로 끌려갔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에는 배가 고파 인육을 먹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제강점 35년에 성 노예로 일본군에 끌려간 할머니들은 지금도 그 한을 풀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정책도 튼튼한 국방에 우선할 수 없다. 그 어떤 가치도 국민의 생존에 우선할 수 없다. 튼튼한 국방을 유지해 국민의 생존을 지켜나가는 길! 그 길은 결코 전쟁을 잊지 않는 것이다. 참전용사들을 최고로 예우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런 정책에서 예외가 없다. 국민 간의 이견도 있을 수 없다. 미국의 알링턴국립묘지, 이곳에는 국가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16만 명의 용사를 추모하고 있다. 꺼지지 않는 불꽃(Eternal Flame)이 꺼지지 않고 타고 있다.
파리의 개선문 광장,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고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을 기리기 위한 개선문 광장에도 추모의 불꽃(Flame of Remembrance)이 타오르고 있다. 전쟁에서 희생한 용사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불꽃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로프 공원에도, 캐나다의 국회의사당 광장에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또다시 전쟁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유사시 너도나도 전쟁터로 뛰어드는 국민의식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시설들은 모두 외국관광객들이 먼저 찾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반만년 역사 동안 930여 회의 외침을 받은 나라, 6ㆍ25전쟁에서 500만 동족이 희생된 나라, 지구 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서 200만 정규군이 대치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에는 내놓을 만한 호국의 명소가 없다. 전쟁을 기억하고 전쟁영웅들을 추모하면서 안보의 소중함을 마음속에 각인시킬 성지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보훈처가 ‘호국보훈의 불꽃’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온 국민이 환영하고 국회에서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장소를 제공해야 할 지자체가 반대하고 나섰다. 광화문 광장은 안 되니 남산 꼭대기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단언컨대 호국보훈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려 한다면 시대착오적 발상이요, 전쟁영웅들을 변두리 한적한 곳에 보관할 폐품 정도로 생각한다면 호국 영령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국민이 최고의 지도자로 존경하는 세종대왕, 국난 극복의 역사에서 불멸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호국보훈의 불꽃’, 너무 멋있지 않은가?
이곳에서 이념을 뛰어넘어 모든 국민, 수많은 외국관광객이 옷깃을 여미고 꽃을 바치며 고개 숙여 추모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것은 한 개인의 소망인 동시에 5000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이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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