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주변 가로수는 모두 죽었는데, 노동자들의 건강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장하나 의원,이번 사고의 최대 피해자는 공단 노동자, 시급하게 민관합동조사 실시해야
지난 9월 27일, 구미4공단 휴브 글로벌 불산 유출 사고 후 11일이 지났지만, 고용노동부는 사고 사업장 주변 노동자들에 대한 적극적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8일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비례대표)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불산 유출 사고 시각인 지난 27일 오후 3시 43분 이후 1시간 만에 사고를 인지했다. 이후 자체위기평가회의’를 진행하고 바로 다음날 오전 8시(28일)에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구성했다. 인지와 위기관리기구 구성은 신속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대응은 이게 끝이었다.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제출자료에서 사고가 난 ‘휴브 글로벌’ 정문에서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사업장들이 10여개다. 문제는 이들 사업장들의 노동자들이 사고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대책이나 조치 없이 계속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휴브 글로벌’과 공장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아사히 글라스’라는 기업이다.
장하나 의원은 지난 7일, 구미에 내려가 사고현장과 ‘아사히 글라스’ 공장을 방문하고,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휴브 글로벌’의 경우 전체 노동자가 7명인데, 이 중 이번 사고로 5명이 사망해 더 이상 조업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휴업조치 되었다. 인근 5개 업체는 사고 다음 날인 28일 하루만 휴업했는데, 휴업 이유는 건물외벽이 내려앉고 설비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지 노동자들의 건강은 이유가 아니었다는 게 주변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아사히 글라스’의 경우, 사고 당일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100명은 대피하지 못하고 공장 내에서 갇혀있었다. 저녁 7시까지 공장 내에 머물다가 오후 7시가 되어서야 회사가 대절한 버스를 타고 공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사히 글라스 노동자들은 그 이후에도 추석 당일 하루만 쉬었을 뿐, 현재까지 계속 출근하고 있다. 불산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상태라 이들의 건강이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장 의원이 만난 아사히 글라스노동자들은 이렇게 증언했다.사고 당일, 우리는 밖에 나가서 하얀 구름 같은 것을 30분 이상 구경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아사히 글라스는 24시간 3교대제인데, 사고 당일 야간조는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전원 출근했다. 회사 앞이 통제되어 있었지만, 출근한다고 하니 통제선을 열어줬다.
사고 당일 공장 밖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던 분은 마스크를 쓰고 작업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아사히 글라스 노동자의 증언을 살펴보면, 고용노동부는 사고 후 1시간 만에 사고를 인지하고 서둘러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구성했지만, 실제 사고수습은 전혀 없었던 셈이다. 구미4공단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불산 유출로 인해 대피하고 있을 때, 고용노동부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책이 나오는 이유다.
해당 노동자는 구미공단지역의 안전보건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폭로했다.어느 날 안전교육을 한다고 해서 갔더니, 프린트물 몇 장 주고는 읽어보라고 했다. 그 뒤 아무 것도 없는 빈 용지에 이름을 쓰라고 했다. 그게 안전보건교육의 끝이다. 어떨 때는 프린트물도 없이 그냥 이름만 적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구미4공단만 해도 불산을 다루는 사업장이 무려 60군데가 넘는다. 하지만 안전보건교육의 실상은 위와 같다. 2010년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로 1년 넘게 파업을 한 구미 KEC 사업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안전보건교육 시간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덕담하고, 손가락 잘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는 시간 정도라고 한다.
이에 대해 사측과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이 규정에 따라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게 문제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전혀 달랐다.
보호 장비는 착용해야 하는 게 맞지만, 실제 우리에게 안전장비가 제대로 지급되는가의 문제를 봐야 합니다. 회사에 비치는 되어 있지만 우리가 규정대로 모두 착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진행한 정기, 수시점검 시에 크게 지적받은 게 없다는 것은, 점검의 부실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장하나 의원은 “고용노동부의 형식적인 관리감독과 사측의 책임회피 속에서, 지금까지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뿐”이라고 탄식했다.
사고 당일부터 지금까지 계속 근무하면서 고용노동부, 환경부로부터 어떠한 정보와 지침도 받지 못했던 노동자들, 노동자들은 불안해하지만 회사 눈치 때문에 스스로 위험을 주장하기는 어려웠다. 불산 노출 시, 인간은 식물과 다르게 신체적 문제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잠복기가 아주 길다. 주변 가로수는 잎을 태우며 죽어갔지만 노동자들은 두통과 가슴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향후 신체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유해화학물질 노출 노동자들에 대한 추적관리 시스템은 전무한 실정이다.
사고 인근 공장 노동자들은 지난 5일에 병원(차병원)에 가 보라는 공문을 관리자가 보여줬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지만 걱정과 불안은 전혀 해소되지 못했다. 아래는 진료를 받은 한 노동자가 의사와 나눈 이야기를 보내온 내용이다.
불산 누출사고로 인해서 오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먼저 의사와 면담을 했다. 의사가 불편한 곳이 있는지 물었다. 그래서 눈에 충열되고 눈이 따갑다고 하니 의사가 안구를 확인하더니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와 이런 대화가 오갔다.
지금 하고 있는 이런 기본적인 검사로 우리처럼 불산에 노출된 사람이 검사로 나타날 수 있어요?
지금하고 있는 검진은 중환자를 찾아내는 검진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 마나한 검진을 하는 것이잖아요?"
사람들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이런 검진이라도 해야 한다.우리 회사 앞에 큰 가로수들의 낙엽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정말 겁이 난다.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혈압체크하고 소변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약국에 가서 안약을 받았다. 검진에서 이상이 나오면 연락해 준다고 한다.
솔직히 너무 허무하다. 믿을 곳이 하나도 없다. 아무도 우리에게 불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 수포 생긴 사람도 있다. 눈이 아프면 그냥 안약 주고, 수포 생기면 단순히 바르는 약을 준다. 약국에서 몇 천원에 다 살 수 있다.”
노동자들이 서 있었던 자리에 있던 가로수들이 전부 죽었다. 우리도 죽고 있는지 모른다.”
이번 구미4공단에서 벌어진 재해를 놓고 단순히 위기관리시스템만을 지적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공단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들이 위해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어도 상관없다는 기업의 반윤리적 행태와 이를 적극 방치하는 정부와 고용노동부의 안일하고 형식적인 관리감독 역시 바로 잡아야 한다.
장 의원은 시급히 구미4공단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정부와 고용노동부는 노동자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신뢰할만한 민간단체와 함께 합동조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조사기간 동안 임시 휴업조치를 취하고 이번 기회에 비용문제로 후퇴한 산업안전보건 관련법 역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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