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리비아 주재 대사를 역임한 이영하 전 공군차장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푸른 창공에서 배운 소통리더십 주제의 강연 내용이다.

저는 2,300시간의 전투조종사 비행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영하(전 공군 참모차장. 전 레바논 특명전권대사) 4일이 모자란 100일을 하늘에서 보냈으며, 33년 반 동안을 하늘과 더불어 살아왔으니, 하늘은 저희들 전투 조종사들의 일터요 싸움터이기도 하지만 에이스가 되기 위한 꿈을 펼치는 무한한 공간이기도 하고 소통의 리더십을 배우는 소중한 교육장소이기도 합니다.
전투조종사들은 비행기와 소통 해야 합니다. 자기가 타는 비행기를 애기(愛機: 사랑하는 기계 - 애용하고 있는 기계, 비행기, 사진기 따위)라고 부릅니다.
애기에 탑승하기 전에 애기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조종장갑으로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기도 합니다.
통제실과 소통도 무척 중요합니다. 과거에 외국비행장에서 지상에서 활주하는 여객기와 착륙하는 비행기가 충돌하며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야기한 사건을 상기해보면 관제탑 등 비행통제실과의 소통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동료들과의 소통은 훌륭한 전투조종사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여객기조종사는 편대 비행이라는 것이 없지요 반대로, 전투조종사들은 단기로 하는 임무는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계기비행 평가비행시 복좌 단기로 하는 임무를 하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전투기는 모든 임무가 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2대, 3대, 4대, 5대, 6대, 블랙이글 같은 경우는 8대가 편대를 구성하며, 편대원간에 원활한 소통이야말로 임무 성공의 필수 요건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 “빨간마후라”나, 최근 공군 에어쇼 팀이 영국에서 개최된 세계에어쇼대회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함으로써 유튜브에 비행실황이 전파되는 내용을 보신 분들은 비행 중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럼 소통의 일반적 이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창옥은 “소통은 숨이며 호흡이다. 그래서 소통이 안 되면 숨이 끊어진다.” 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발견되는 갈등의 원인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정치권력과 국민간의 갈등, 정당간의 권력다툼, 공익시민단체간의 갈등, 네티즌간의 설전 등)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두 가운데 하나가 소통이지요.
소통은 우리 사회에서 트렌드를 읽는데 가장 뒤쳐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정치권에서까지도 중요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 신문사(창간 20주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차기 대통령의 갖춰야 할 덕목 1순위는 국민과의 소통능력이라고 응답한 19-29세 응답자가 52.8%로서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전체응답자의 42.7%)
또한 소통의 시작은 경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얼굴을 현미경을 동원하여 아무리 자세하게 찾아보아도 입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그러나 귀는 양쪽에 두 개입니다. 남의 말을 잘 들으라는 조물주의 거룩한 뜻이겠지요.
언어학자들은 우리가 아무리 귀 기울여서 들으려고 애쓴다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을 70%이상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소통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소통의 대가, 소통의 달인이지만 그녀는 1시간짜리 토크쇼에서 10분 정도만 말한다고 합니다. (비결은 말을 잘하는 것보다 듣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지요)
한국 기업의 소통지수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닙니다.
삼성 경제 연구소가 올해 경영자와 직장인 회원 9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은 65.3%, 경영자는 46.0%가 소통이 안 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연구소는 한국기업의 소통은 100점 만점에 54점 수준으로 상당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소통의 활성화를 위한 6가지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소통의 활성화를 위한 6가지 방향 >
- 경영자는 간결하고 핵심적 메시지로 정확/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라
- 긍정적인 피드백을 사용하라
- 개인, 부서 이기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공동 목표를 제시해 협력을 유도하라
- 직원들의 제안, 아이디어에 대해 끝까지 경청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라
- 직원들의 고충을 우선 파악하고 이해하라
-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고 긍정적인 감정을 전파하라
최근에는 소통방식의 변화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SNS가 중요한 소통방식으로 부상하고 있지요. SNS는 웹상에서 인맥관계를 강화시키거나 새 인맥을 쌓으며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로 트위터, 페이스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SNS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에게 수평적 연대감을 주는 소통수단으로 자리잡은지 오래 되었다.
트위터는 전세계 5억명이 가입했고, 페이스북은 10억명이 사용하고 있다 (2010년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만 6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중 65.7%가 SNS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발표)이다
저는 레바논 대사로 부임한 2009년 초에 페이스북에 가입하였으며 레바논 국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Hello Lebanon Meet Korea" 그룹을 개설하여 운영했다. (103명 친한 인사 등록)이다.
군에 복무할 때에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지휘관리기법 연구를 많이 하였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속도와 변화라고 말하지요. 소장으로 재직했던 남부전투사령관 시절에 사령관의 ‘영상편지와 안전제언’을 1년 2개월 동안 주 2개 정도씩 만들어서 소속장병이 클릭하여 보도록 했다.
중장으로 재직했던 공군 교육사령관 시절에는 사령관의 영상 편지, 동기 부여, 안전제언”을 2005. 11 - 2006. 12월 까지 재직기간동안 주 1회 1가지씩 만들어 예하 부대에서 전 장병이 직접 보고 배우고 느끼도록 했다.
특히 2005년도에 남부전투사령관으로 부임시에 초대사령관으로서 부대를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어려운 여건이었고 새로 조직된 예하 비행단 장병들이 “우리들이 남부사 소속이 맞는 거야” 라며 정체성의 혼란 현상이 심하여 이를 해소하는 방안을 연구하게 되었으며 IT를 활용하여 동기부여를 확실히 시킬 수 있는 교훈적인 글 + 감성적인 음악 + 멋지고 자긍심 느낄 수 있는 동영상을 합성하여 사령관의 영상편지”를 만들게 됐다.
주 레바논 대사 시절에는 국가와 국가간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 몇가지 실례를 들면 한국 - 레바논 간 수교 30주년 기념행사를 “Hello Lebanon, Meet Korea"라고 명명하여
-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사물놀이 팀, B-Boy팀을 베이루트로 초청하여
- 레바논 팀과 합동공연을 실시함으로써 성공적인 수교 기념행사가 됐다.
- 문화 협정, 외교관 및 관용여권에 대한 비자면제 협정, 환경협력 양해각서 체결을 추진하여 결실을 맺었으며, 특히 레바논 대통령을 임기중 5번이나 예방하여 양국관계증진방안에 관해 협조한 기억은 오랫동안 자부심으로 남아있습니다.
대사관 조직과 업무 수행차원의 소통으로는
- 한국 외교부 직원과 현지 채용 직원과의 소통 활성화를 위해 월요일 직원회의, 개인별 의견 발표시간 부여, 분기 1회 관저/오찬/만찬, 리더십 참고 자료 배포 후 토의등을 실천하였으며
- 인적소통 채널 다양화 측면에서는
- 수교 30주년이 될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한인회를 조직하여 출범시켰고
- 한-레바논 의원 친선 협회를 수교이후 최초로 레바논 의회에 설립토록 레바논 의회와 협조하여 결실을 거두었으며, - 활동이 미미하던 한-레바논 친선협회를 거의 신규창립에 가깝게 대폭적으로 재창립을 실시했다.
- 베이루트 국제 마라톤 대회에 전 대사관 직원이 참여토록 하여 국제간에 소통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소통은 이렇게 작게는 개인으로부터 기업과 국가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꼭 필요한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선택과 집중
저는 유튜브에서 솔개 동영상을 보면서 내 인생을 변화시킨 ‘작은 선택’ 이야기와 선택을 통해 이룬 꿈을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환골탈태의 각성과 집중과 뼈를 깍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나름대로 다양한 꿈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꿈이 현실화 되어 가지요. 그리고 때로는 꿈이 현실의 벽에 갇혀 지장을 받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도 이런 상황이지요.
저는 중학교 3년 동안 아버님이 산지를 개간하여 만드신 밭에 관하여 민사소송 중이었으며, 고등학교를 진학할 무렵 대법원에서 패소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가슴속에 품어오던 전투조종사의 꿈이 현실의 벽에 갇히게 됐다.
민사재판 패소에 따라 집안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으며, 아버님은 이긴다던 재판이 패소함에 따라 홧병이 생기셨으며, 거의 매일 술을 드시며 울분을 토로하신 걸 보았다.(돈이 없고 백이 없으니 재판에 지게 된다고 말씀하심)
아버님의 한이 저를 서울대 법대에 진학시켜 법관을 만드는 것에 집중되었고 저는 아버님의 담임선생님에 대한 설득으로 (제가 원서제출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가운데) 학교에서 단체로 서울대 법대에 원서를 제출했다. 저는 사실은 법대보다는 서울 문리대 독문학과를 선호하여 그쪽에 입학하고 싶다고 담임선생님께 요구하였으나, 아버님의 끈질긴 집념이 담임선생님을 움직여 법대에 입학원서를 제출하게 되었으며 고등학교 졸업식 하는 날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입시준비는 그렇게 잘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왜냐면, 2년 동안 중학생 집에 가정교사로 입주하여 있었고, 특히 고 3때는 중학교 3학년생 집에 있어서 그 학생이나 저나 다 같이 입시준비생이었기 때문에 제 입시공부에 올인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울대 법대 입학시험에 낙방함으로써 자학과 대인기피증으로 시달려야 했고 3개월 정도를 방탕해야 했다.
부친이 병환 중이신데다 3개월을 방탕하고 나니 다시 서울법대에 지원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란 생각이 들면서 어릴적부터 품어왔던 조종사의 꿈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5월부터 “정신차리기”방법을 연구하였고 전남매일 신문사 교정기자 시험을 치르게 됐다. 300여명이 치른 시험에서 4명의 합격생 중에 내 이름이 들어 있다. 신문사 교정기자로 근무하면서 정신을 차리었고 사관학교 시험 준비를 착실하게 하기 시작했다. 6개월간 재수생으로서 독자적인 주경야독을 한 결과, 공군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 1차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결국은 어릴 적부터 지속적으로 꾸어왔던 꿈이 전투조종사 였던지라 공군사관학교에 2차 시험(면접)을 치르고 육사는 2차 시험을 포기했다.
그러던 중 1969년 12.24일 남들은 크리스마스 성탄절을 즐기느라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 가족은 아버님을 잃고 통곡해야 하는 순간을 맞았다. 7남매의 장남으로서 아버님 장례를 치르고 나니 1970년 1월 5일 공군사관학교 합격 통지서가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이때부터 1월 30일까지 25일간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정체성 혼란을 겪었던 시기였으며, 결국은 7남매의 장남으로서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족을 위해 필요한 길이라는 충고와 그래도 전남매일 신문사에 직장을 가지고 근무하니 계속 근무하면서 어머님께 효도하고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주는 일이 필요한 길이라는 주변지인들의 충고가 반반으로 팽팽하다 보니, 두가지 갈림길에서 방황하다가 자살충동까지도 느껴보았던 참으로 암울했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저는 홀어머님과 동생들을 남겨두고 사관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대신 학교에서 4년간 열심히 해서 졸업할 땐 꼭 저희 어머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굳은 각오를 했다.
4년간 어머님과 동생들 생각하며 동기생들 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렸으며,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을 받았다. 그 결과, 1974년 3월 28일 공군 사관학교 졸업식 날, 최우수 졸업생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그 해 5월 어버이날에는 광주시장, 전남매일신문사장, 광주 효동초등학교장등 3개 기관장으로부터 장한어머니상을 받으시게 됐다.
저는 졸업과 동시에 공군 소위로 임관하였고 전투조종사로서 꿈을 이루어 조국영공 수호의 최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주 독일 대사관 무관부 보좌관 파견 근무는 꿈을 지속적으로 꾸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재학시 제 2외국어를 선택시 독일어를 선택하였고 3학년때까지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초급 위관장교 시절에 퇴근하고 나면 집에서 독일어를 자습하였습니다. EBS 방송에서 한 우근 교수가 쓴 “즐거운 독일어”를 공부하였지요. 그 노력이 훗날 소령이 되었을 때 독일 무관 보좌관으로 선발되어 2년 1개월 동안 서독 본에 파견되었고 제 인생 최초로 국제경험과 외교관으로서의 근무 경력을 쌓게 되는 계기가 됐다.
다음은 88년 서울 올림픽에 얽힌 저의 꿈과 소통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88년 1월 계급은 중령이었으며, 전투비행대대 비행대장 보직을 마치고 오산 소재 공군 작전사령부 작전처로 부임하게 됐다.
저는 공군장교가 된 이래 국군의 날 행사나 사관학교 졸업식 행사 때 대규모 비행대수가 참가하는 축하비행을 보면서, 그리고 축하비행 편대원으로 참가하면서 직접 축하비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임무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드디어 그 꿈을 실행할 수 있는 부서로 보직이 되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배님들께 제 꿈을 이야기하였고 드디어 그 해 3월 공사졸업식 축하비행을 통제할 기회가 제게 주어졌다.
통제장교는 지상상황과 공중편대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여 실시간 중요지침을 내리는 역할로서 소통능력이 없으면 임무가 실패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공군의 위상이 실추되게 됩니다. 막중한 임무라서 스트레스도 많이 걸리지만 열심히 소통방법을 연구하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88년 9월 올림픽 개막식에서 오륜기 게양시점에 맞춰 동시에 하늘에 오륜기모양을 비행기 5대로 그리고, 성화점화 시 점화대 직상공으로 5색 연막 축하비행을 실시하는 임무가 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공군에 부여되었다. 누가 이 막중한 임무의 주인공으로서 적합한지 공군작전사령부 지휘부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결국은 소통방법을 창의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여 공사졸업식을 성공적으로 실시한 바 있으므로 제가 임무수행 적격자라고 판단되어, 영광스럽게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통제장교 임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 공군의 위용을 과시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으며, 공중편대와 개막식 상황 소통을 철저히 함으로써 TOT 를 기적적으로 잘 맞추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처럼 공중에서 배운 소통 리더십으로 인해 89.4.11일 대한민국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훈하였는바, 군 생활 33.5년 동안 수훈받은 3개의 보국훈장 중 가장 최초에 세계를 상대로 노력한 결과 받은 훈장이라서 지금도 가장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다음은 자기 영역에서 남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지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준비, 훈련, 연습이란 어휘가 다 비슷한 뜻을 가집니다만 어쨌든 수많은 연습이 소통을 성공적으로 만들고 결국은 자신의 꿈도 이루게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어 우리 공군의 에어쇼 팀 블랙이글스에 관해 소개하겠습니다. 8대의 전투기가 보여주는 기동 중에 임무성공을 위해, 그리고 비행안전을 위해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느끼시게 될거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공군의 블랙이글 에어쇼팀이 지난 6.30일부터 7.15일 까지 영국 국제 에어쇼 대회에 최초로 참가했다.
와딩톤 국제에어쇼, 리아트 에어쇼, 판보로 에어쇼등에 국산 초음속 전투기로 참가하여 국력을 과시하고 공군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여 항공기 수출 증진에도 기여했다.
아시다시피 와딩톤 에어쇼에서 14개 국가가 참가해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리아트 에어쇼에서 25개국이 참가해서 최우수상과 인기상을 차지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석권함으로써 상상하지 못했던 경제적 효과를 생산한 쾌거를 거두었는데 이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사항은 소통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으며, 수많은 연습을 통한 성공적인 소통의 결과는 모든 상을 석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삼겹살을 먹을 예정이다.그러면 시장을 봐와야 하는데 보통은 일단 시장에 가서 무턱대고 여러 재료들을 사옵니다. 하지만 집에서 음식을 먹다보면 이것저것 빠진 것이 참 많다. 왜 그럴까요? 바로 구입품목을 메모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소통을 잘 하기 위해 기록하는 습관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군 생활 할 때 어떤 참모들은 자기 기억력을 자랑하며 메모하지 않는 것을 본적이 많다.
우리 인간의 두뇌는 망각곡선을 가지고 있어 보거나 들은 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기록하는 습관이 무척 중요하다.
저는 유난히 메모하는 버릇이 잘 들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순간 감동을 받아 생각난 느낌도 바로 적어두지 않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시를 쓰는 시인들도 시상이 떠오를 때 바로 메모지를 찾는다고 합니다. 제가 레바논에 있을 때 고국이 그리울 때마다 기록해 둔 글들이 한편의 시가 되어 “고려달빛”이란 시 문예지에 등단이 되었고 이 시를 보령군에 소재한 “시와 숲길” 공원에 시비로 만들어져 많은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다.
제가 군 복무를 할 때 자율과 창의적 조직문화를 정착하고 임무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부대 핵심가치를 설정하고 여러 가지 개선 프로그램을 잘 기록하다 보니 “부대 정체성 확립을 위한 문화육성 프로그램”으로 탄생되어 부대의 지휘관리 효율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바람직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 라는 팜플렛도 지휘관리에 유용한 지침들을 그 때 그때 기록으로 남겨 모아 놓은 것이며, 많은 후배 지휘관 참모들이 즐겨 보았던 참고서가 되었다.
전역 후 사회에 나와서도 끊임없이 기록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좋은 글귀가 생각나면 바로 메모하고, 어떤 주제에 대하여 쓰고 싶어지면 그대로 적어 놓았다가 글이 술술 풀려나오는 날 열심히 써 놓은 다음, 퇴고하고 퇴고하여 완성했다.
그래서 지난 2010년 12.24일 날에는 계간지 문예춘추”에 “동명부대, 오늘도 레바논에 평화를 심는다” 등 3편의 수필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여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으며, 2012년 4.30일 국제 문화 예술 협회에서 발행하는 “열린 문학”지에 “대한민국호와 위대한 국민 가슴속 열정의 화산에 불을 지펴라” “어느 겨울 아침의 단상”등 3편의 수필을 실으면서 “황금 마패상”을 수상했다.
좋은 착상과 감성, 그리고 느낌을 잘 기억하기 위해 우리가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기록하는 습관이야말로 훌륭한 소통비결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소통, 선택과 집중, 연습, 기록하는 습관은 제가 푸른 창공으로부터 몸과 마음으로 직접 터득한 소통 리더십의 핵심이다.
여러분들도 “푸른 창공에서 배운 소통 리더십으로 부터 자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어가는데 큰 힘이 될것이라 확신한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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