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11월 24일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적 권력의 최후보루로서 그 책무를 포기했다.
작년 10월 신행정수도법 에 위헌딱지를 붙인 지 불과 1년 남짓만에 행정도시’로 둔갑한 수도분할 심판에서 선출된 권력의 편이 됐다. 결국 헌법의 수임(mandate)을 일탈한 권력의 월권(越權)을 묵인한 일방 자신의 결정 즉 재판결과에 대한 권력의 불복(不服)에 굴복한 셈이다.
헌재에 대한 권부의 압력이 극성을 부렸다. 열린우리당은 행정도시 건설에 위헌판정이 내려질 경우 국회의 입법권 침해와 정부 기능 마비 등 혼란이 우려된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천도위헌 선고 직후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다“고 헌재를 나무란 노무현 대통령의 오기를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반역적 언동을 둘러싼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와 더불어 선출된 권력의 횡포가 꼴사납다. 사법권 침해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선거 만능의 독선이다. 제도민주주의를 동반 못하는 선거민주주의는 독재의 은폐 정당화 도구로 타락한다는 것을 악용할 심보가 아니라면 그럴 수 없다. 소위 ‘민주화’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독립된 사법부는 자유언론 및 직업관료의 중립과 더불어 민주주의에 불가결하다. 이 세 가지 제도로 떠받쳐지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 중 하나만 결여돼도 권력은 그 속성상 독재의 문을 뚜드린다.
소위 참여정부 는 TV를 포함한 방송의 독점으로 전파독재 의 길을 닦고 신문법의 제정으로 언론탄압을 시도하며 엽관으로 직업관료제를 붕괴시키고 있다. 헌재의 천도위헌 결정을 "사법 쿠데타"로 낙인찍더니 그 위헌법률 심사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며 헌재를 압박했다. 권력의 제도민주주의 교살 기도가 반역 수준이다.
헌재는-관습헌법´을 원용하여--비록 헌법에 언급이 없더라도 권력에는 금기(禁忌)와 한계(限界)가 있음을 판시했다. 그 법리의 근본은 민주주의의 상식과 이성이다.
611년 된 서울은 그 역사적 상징성과 한국의 경제기적을 따라 높아진 그 브랜드 가치로 볼 때 한국의 정체성(正體性)과 불가분(不可分)하다. 나라의 그런 근본은 선출된 권력이 함부로 탈낼 수 없다. 그것을 무시한 권력이 오만을 부린 결과 지난 대선 때의 천도공약이 위헌으로 판명되고 대권(大權)의 정통성(正統性)에 흠집이 났다.
그러나 헌재의 수도분할 방조로 그 천도위헌 결정은 도루묵이 됐다.
대통령과 국회 등의 일부 기관을 제외한 16개 정부부처와 177개 공공기관이 서울에서 빠지는 것은 형식상 천도는 아니나 ‘유사천도(類似遷都)’임에 틀림없다. 서울-수도-신행정수도-행정도시의 일체성(integrity)을 부인하는 편법으로 괜히 땅값을 올리고 국가자원을 소모하며 직장인의 집단이동(relocation)을 강제하는 가운데 국가기능의 혼잡(混雜) 을 획책한다.
300조의 국가채무가 눈에 선한데 소위 지역균형발전 자주국방 과거사 청산 등의 무모한 정략에 기인한 권력의 반민주적 낭비(浪費)작태가 반역 수준이다.
정치적 이유를 들어 노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했던 헌재는 단순한 불법보다 간악한 편법의 폐해와 부작용이 더 지독함을 간과하고 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권력의 수족이 되는데 부끄럼이 없다.
행정도시’를 위한 그 변명이 참으로 궁색하다. 현대사회에서 공간의 의미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말로 대인(對人)접촉의 중요성과 국가기능의 효율성(效率性)을 무시한다.
세계의 주요 수도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나라의 경우에 국회와 정부기관이 지척간에 밀집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았다.
경제의 세계화시대에 “주요 국제관계가 형성되는 장소”로 외국 외교관이 자주 드나드는 곳은 청와대나 외교부가 아니라 경제부처라는 사실을 모른다.
행정도시’는 한마디로 상식(常識)과 이성(理性)을 배반한 권력의 악덕이 빚어낸 산물이다.
그 부정적 함의와 후과를 외면한 헌재가 비겁하게 정권의 망국적 득표정략(政略)에 영합한 까닭에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발육장애를 앓을 것은 너무나 뻔하다.
더군다나 대북 ‘퍼주기’의 이적(利敵)과 한미동맹의 와해를 노린 반미(反美)로 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한국(韓國)이--낭비에 무심한 권력의 반민(反民)으로--더욱 거세질 반역(反逆)의 물결에 삼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