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甲濟] 국정원이 작성, 보관하던 2007년 10월의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전문(全文)이 지난 6월 24일 공개되었다. (월간조선)에서 세 차례 보도했던 내용을 포함하여 생생한 대화가 읽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2007년 10월 3일 오전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네 시간에 걸친 노무현-김정일 회담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먼저 일종의 기조 발언을 하였다. 그는, 북한의 불법적인 핵개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평화체제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남북 주도하에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서 북미(北美) 관계 정상화와 남북(南北)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한 냉전체제 종식과 핵문제 해결이라는 두 가지 큰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핵문제는 관련 각측의 노력으로 해결의 방향을 잡았으며, 이는 김 위원장께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도력을 발휘해 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은 ‘미북(美北)’이란 표현을 써야 하는데 ‘북미’라고 한다. 적(敵)을 동맹국보다 우대하는 친북적(親北的) 표현이다. 북이 핵실험을 하고 유엔이 대북(對北)제재를 가하는 상황을 도외시하고 핵문제를 김정일이가 잘 지도해 준다니? 그는 일찌감치 핵문제 해결을 요구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낸 셈이다.
노무현은 이산가족 문제를 이렇게 짚고 넘어간다.
“최소한 생사확인과 서신교환만큼은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과거 전쟁시기와 그 이후에 소식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불행한 과거를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기회에 큰 틀에서 해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원장의 결단을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연간(年間) 10억 달러어치의 금품을 북한에 제공하던 대한민국 대통령의 언급치고는 너무나 약하다. ‘과거 전쟁시기와 그 이후에 소식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란 애매한 표현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왜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정정당당하게 제기하지 못하는가? 김정일은 노무현의 이런 호소를 간단하게 묵살해 버렸다. 제기하는 쪽에서 성의나 집념을 보이지 않아 무시당한 면도 있을 것이다.
김정일의 유일한 회담 목적은 NLL 無力化
노무현의 발언이 끝나자 김정일이 자신의 복안(腹案)을 드러낸다. 그는 “내가 원래 생각하고 있던 문제를 메모했습니다. 반복을 피하기 위해 체계를 잡아가지고 얘기하겠습니다”라고 운을 떼더니 소위 민족공조 노선을 강조한 다음 작심을 하고 비수(匕首)를 들이대었다.
“내 생각은 이번에 모처럼 마련된 수뇌회담에서 조금 희망을 주고, 적대 관계를 완전히 종식시킬 데 대한 공동의 의지가 있다, 하는 것을 하나 보여주자 하니까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 이 문제를 하나 던져놓을 수 있지 않는가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화록을 읽어보면, 김정일은 노무현을 평양으로 오게 하여,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무력화(無力化)에 합의하도록 하는 것을 회담의 제1 목적, 아니 유일한 목적으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노무현이 미북 관계 개선 필요성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강조하니 ‘그렇다면 서해의 군사적 긴장 문제를 같이 해결하여 적대 관계 종식의 의지를 보여주자’고 걸고 나온 것이다. 김정일의 발언은 이렇게 이어졌다.
“우리 의견은 앞으로 국방장관급에서 논의되겠지만 내 생각 같아서는 군사경계,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
NLL 남쪽에 공동어로水域 설정 제안
김정일의 이 발언은 이날 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議題)가 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라는 제안은 날강도 식이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 김정일이 말한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이란, 1999년 북한정권이 일방적으로 NLL 남쪽에 그은 선이다.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의 우리 쪽 섬들이 그 선 안에 들어가 북의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는, 실효성도 없는 환상의 경계선이다. 북이 멋대로 휴전선 남쪽 수원 부근에 ‘우리의 군사경계선’이란 것을 긋고, 그 선과 휴전선 사이, 즉 수도권을 남북이 평화지대로 공동관리하자고 나온 꼴이다. 더 쉽게 표현하면 강도가 부잣집 안방을 ‘내 것’이라고 선포한 다음 부자에게 선심을 베풀듯 이렇게 제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로 싸우는 모습 보이지 맙시다. 안방에서 현관을 지나 정문까지는 나와 귀하의 공동관리지역으로 설정, 평화롭게 관리합시다.”
날강도 수법의 모욕적인 제안을 받은 노무현은, 그가 정말 한국 대통령이라면 껄껄 웃든지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평양~원산 선과 휴전선 사이의 북한 지역을 공동관리지역으로 설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노무현은 김정일의 이 제안에 일절 반론을 제기하지 않다가 결국은 편승하고 만다.
김정일의 추가 설명은 계속된다.
“우리 군대는 지금까지 주장해 온 군사경계선에서 남측의 북방한계선까지 물러선다. 물러선 조건에서 공동수역으로 한다. 공동수역 안에서 공동어로 한다.”
김정일이 노무현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 관할 수역(水域) 안에 멋대로 유령선(線)을 그어놓고는 그 선으로부터 NLL까지 ‘철수’하는 조건으로 NLL과 유령선 사이 해역(海域·전부가 NLL 남쪽 우리 수역)을 공동소유-공동관리하자는 것이다. 수도권 방어에 결정적 중요성을 가진 바다를 소매치기하겠다는 의도이다.
노무현은 이렇게 화답한다.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라고 NLL의 정당성을 부정한 뒤, 자신도 김정일이 제의한 대로 “남쪽에다 그냥 확 해서 해결해 버리면 좋겠는데” 정부 안에서도 반론이 있고, “NLL 말만 나오면 전부 다 막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는 것 때문에” 더 논의하자고 했다. 북한정권의 핵개발에 대하여는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근데 그것은 되도록이면 가서 판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라고”라고 비아냥거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