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세입 부족’에 대한 무대책 예산
노동당은 논평에서 2014년 예산은 적자예산이다. 총수입(370.7조)과 총지출(357.7조)만 따지면 13조가 남는 흑자예산이지만, 흑자는 기금(수입 125.5조, 지출 105.9조)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기금을 제외한 예산은 6.6조의 적자가 발생한다고 30일 밝혔다.
적자의 원인은 충분한 세수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세수입은 2014년 218.5조로 2013년 본예산 대비 1.0% 증가에 불과하다. 국가 자산 매각이나 이자 수입 등으로 구성된 세외수입은 2013년(본예산) 36.9조에서 2014년 26.7조원으로 10.2조원 감소되었다. 그 결과 (기금을 제외한) 예산 수입은 2013년 본예산 대비 8.1조 감소하고 총수입은 1.9조 감소한다.
정부는 낮은 세입 증가율의 원인으로 성장세 회복 지연을 꼽는다. 그런데, 2014년 예산안은 3.9%의 경제성장을 전제로 책정되었지만, 세입 증가율은 경제 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는 1.0%에 불과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세입 증가율 하락의 주된 원인이 경기 침체가 아닌 다른 원인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4년 재정운용 방향 및 주요 현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최근의 세입 부진은 경기적 요인뿐만 아니라 경기외적인 구조적 요인에도 일부 기인’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꼽는 ‘경기외적인 구조적 요인’으로는 ‘법인세율 인하 등 법인세 부담을 완화시키는 세제개편으로 인해 영업잉여에서 법인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와 ‘FTA 등 무역자유화의 확대 등으로 실효관세율이 지속적으로 하락(1980년대 8%대-2012년 1.7%)’ 등이다. 쉽게 말하면, 기업들이 돈은 많이 버는데 충분히 세금을 내지 않아서 걷어 들이는 조세 수입이 시원찮다는 얘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자 예산, 정책 비전도 실현 의지도 없는 예산
누적된 세수 부진으로 인해 2014년 국가채무는 515조에 달할 예정이고, 2017년 610조에 달할 예정이다. 이렇게 채무가 늘고 나라 살림살이에 적자가 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명확한 정책 목표가 있고, 이후 살림살이 운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균형예산 또는 흑자예산을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적자예산 운영을 통해 적극적으로 경제정책이나 사회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훨씬 낫다.
예산은 단순한 살림살이가 아니라 정책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집행 의지의 표현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나 육아휴직제의 도입, 실업보험의 확대 등 자신의 복지 확대 정책을 예산에 반영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에 50조라는 사상 초유의 예산을 쏟아 붇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2014년 예산안에서 정부의 정책 의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2014년 예산안은 ① 경제활력 회복과 성장잠재력 확충 ② 일자리 창출 ③ 서민생활 안정과 삶의 질 제고 ④ 국민안정 확보와 든든한 정부 구현 ⑤ 건전재정 기반 확충과 재정운용 개선 등 5개 중점 사업을 제시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들 중점 사업은 정부가 이전까지 진행해 오던 사업을 그저 묶음으로 내놓은 것 이상의 정책 비전을 담고 있지 못 하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진단도 없고, 중점 사업을 통해 해당 과제를 어느 정도까지 해결하겠다는 정책 목표도 불명확하다. 따라서 적자 예산이 편성되어야 할 이유 또한 찾기 어렵다. 마치 제대 말년까지 근근이 시간이나 떼우자는 말년 병장의 생활계획표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비정규직 확대 예산, 반복지 예산
명확한 정책 의지가 없다보니, 2014년 예산은 자신의 공약조차 번복하는 예산이 됐다.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수없이 지적된 것처럼, ‘모든 어른신’께 드리겠다던 기초노령연금은 대상층을 70%로 축소하고 그나마 선별 지급으로 바뀌었다. 4대 중대질병 지원도, 5세 이하 보육 지원도, 반값 등록금도, 단계적 고교 무상교육 도입도, 방과후 돌봄서비스 확대도 모두 축소·후퇴되었다. 대표적인 반복지 예산이다.
복지 공약 후퇴와 더불어 2014년 예산의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5대 중점 사업 예산으로 제시된 ‘일자리 창출 사업’의 핵심 중 하나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위한 패키지 지원’ 예산이다. ‘시간 선택제’라고 우아하게 표현했지만, 단시간 노동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고 그에 따른 고용불안이 가장 심각한 나라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특징은 파트타임(단시간 노동) 비중이 높은 서유럽과는 달리 주로 기간제와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오히려 단시간 비정규직을 더욱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반노동 예산이다.
근거 없는 균형 회복 약속
적자예산을 제출한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재정균형을 이루겠다고 약속한다. 세입 확대와 세출 절감을 통해 2017년까지 총수입 증가율은 5.0%로 유지하고 총지출 증가율은 3.5%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14년 총수입 증가율은 -0.5%이고 세입증가율도 1.0%에 불과하다. ‘구조적 요인’을 바꾸지 않는 한, 수입 증가율을 5.0%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해 6-7% 이상의 경제성장이 보장되어야 한다. 아니면 국가 자산을 팔아 치워야 한다.
실제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중기재정운영계획에 따르면 2017년 610조에 달하는 국가채무를 GDP 대비 35.6%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를 역산하면 2017년 GDP 규모는 1,700조원을 넘는다. 이는 매해 7% 이상의 경제성장을 전제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버렸던 747 공약의 재림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 내외를 보여 왔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것은 경기 침체의 영향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면 성장률 자체가 2-3% 이하로 낮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연간 7% 경제 성장을 전제로 하는 재정 정책은 사기일 수밖에 없다.
결국 복지 등의 재정 지출 확대가 아니라 현 수준의 재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경기외적인 구조적 요인’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이상 증세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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