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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년만에  빨갱이 누명 벗은 군상 기사의 진실
기사등록 일시 : 2005-10-02 16:58:11   프린터



손충무 칼럼 - 20세기 역사의 증언

군사정권과 투쟁하다 빼았긴 경향신문과 언론인들 높이 평가?

1966년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단행된 경향신문 은행 경매사건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 기관에 재갈 물리기와 함께 본격적인 한국 언론 탄압을 알리는 신호탄이 었다.

그런데도 당시 한국 언론들은 그 시절 독자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강력한 힘을 가졌던 경향신문이 폐간되면 경향신문 독자들이 자신들에게 돌아 온다는 계산 아래 경향신문 사태를 충격적인 커다란 사건으로 받아 드리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박정희 정권의 영향권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한국의 언론 자유는 종말을 고하고 마침내 維新 시대는 ‘말 잘하는 반 벙어리’ ‘새장의 앵무새 언론’으로 둔갑 했던 암울한 기간이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신문을 박정희 정권의 앵무새 언론으로 전락 하도록 만든 경향신문 경매 사건은 한국 언론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음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세계적으로 악명을 남긴 중앙정보부장 (KCIA) 김형욱의 진두 지휘하에 중앙정보부라는 국가 권력기관이 앞장서 언론기관을 강탈한 진실이 41년 만에 그 전모가 밝혀졌다.

국가정보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아래부터,국정원 진실위)는 지난 7월22일 ‘釜日奬學會 헌납 및 京鄕新聞 매각에 따른 의혹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군사독재 정권과 싸운 경향신문 높이 평가
빨갱이로 몰아 고통 준 언론인들 명예회복

국정원 진실위’는 조사를 착수한지 5개월 만에 미국까지 조사관을 파견 경향신문 강제 매각을 지휘 한 후 미국으로 도주 현재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방응모씨 (당시 정보부 감찰실장),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냈던 피해자 손충무를 (필자) 워싱턴에서 면담 하는 등 관련자 40여명을 면담 했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A4 용지 93매의 방대한 량의 조사 결과를 통해 (1) 당시 군사정권을 비판 하다가 정권의 탄압을 받아 강제 매각 당한 경향신문의 언론 활동을 재평가 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언론인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 하고 명예를 회복토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2) 또한 신문사 건물과 부지를 보유하여 경영상 큰 어려움이 없던 경향신문사가 강제매각과 통폐합 과정에서 심각한 적자에 도달, 매달 사옥의 토지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등 큰 손실을 입어
왔으므로 이러한 손실을 보전할 방안을 강구할 사회적 공론화도 필요 하다고 판단됨.이라고 발표 하고 정부에 건의 했다.

이에 따라 당시 경향신문 발행인 이준구(李俊九),사회부 기자 손충무 (孫忠武), 정치부 기자 윤상철 (尹相哲)씨등 7명의 언론인들에게 덥혀 씌어졌던 빨갱이 누명이 벗겨졌다.

41년 만에 벗겨진 빨갱이 누명…..참으로 긴 시간이 걸렸다.
이준구 발행인과 손충무 기자는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 安家 지하실에, 윤상철 기자는? 계엄사령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으며 결국은 빨갱이 누명을 쓰고 서대문 교도소로 끌려가 억울한 감옥 살이 까지 했었다.

진실위’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당시 군사정권은 경향신문을 두려워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박정희 정권이 경향신문을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박 정권에 대한 경향신문의 논조가 가장 비판적인 데다가 카톨릭을 배경으로 하여 넓은 독자층을 확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향신문은 12시 10분에 서울 시내 가판 3만부를 발행 했는데 신문이 나오기 전에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사람들이 신문사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50부씩 사서 가져갔다.

정부 부처 장관실에서도 비서들을 미리 대기시켜 가판을 수십부씩 구입 하여 점심 시간에 경향신문을 읽어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권 연장을 위해서는 경향신문이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으로 판단 김형욱 정보부장 에게 ”경향신문을 정부 여당지로 만들고 발행인 이준구를 신문 발행에서 손을 떼도록 만들라.”고 지시 했다.

청와대 중앙정보부 경향신문에 눈독
보리고개 시리즈 허기진 군상 트집

1964년 박 정권이 한.일회담을 시작 할 때 군대식으로 밀어 부치는 회담 스타일을 반대하는 신문들은 처음에 14개 신문사였다.

그러나 정권의 강력한 탄압에 견디다 못해 1964년 5월경에는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대구매일신문 4개사만 남아 저항 했다.이들 4개 신문 가운데 경향신문은 은행 빚이 적었으며 흑자 경영을 하면서 카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박 정권과 정보부는 경향신문만 무너 뜨리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3개 신문은 자동적으로 숨통을 조일 수 있다고 판단 경향신문 탄압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때에 경향신문 간부들은 눈뜨고는 볼수 없는 농촌의 보리 고개 와 도시 연세민들의 ‘허기진 삶’을 집중 보도 하여 잘사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이웃을 돌보게 하는 ‘이웃 사랑하기’ 캠페인을 벌리기로 결정했다.

편집국 부장단 회의를 거쳐 당시 사진부에서 보도 사진을 배우고 있던 손충무 기자 (필자) 를 선발 했다. 필자는 사회부에 기사를 쓰면서 당시 한국에서 보도 사진의 제1인자인 박창희 사진부장에게 보도 사진에 대한 특별 지도를 받고 있었다.

당시 필자는 아직 6개월 수습 기간도 아직 끝나지 않은 초년생 기자 시절 이었다.그런데도 필자가 그런 엄청난 특집 기사의 현장 취재 기자로 선발 될 것은 허기진 군상 시리즈는 글 중심 보다는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현장 사진이 중요 하다는 뜻에서 선발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1964년 5월 초부터 전국 지방을 돌면서 비참한 농촌 현장과 인간이 먹을수 없는 술 찌거기, 전분 찌거기,생선 창자를 주어서 먹다가 죽어 가는 현장을 8회에 걸쳐 보도 했다.

또 대전에서는 대전 시내와 4km나 떨어진 변두리 마을에서 이른 새벽 부터 대전 시내로 밥을 얻으러 나가는 행렬을 보고 목이 메었다.그런 행렬속에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깡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나가는 눈물겨운 사연을 취재 보도 했다.

그 유명한 ‘허기진 군상’ 시리즈 첫번째 기사인 <하루는 책보,이틀은 깡통 ?대전에 목불인견 (目不忍見-참으로 눈뜨고는 볼수 없는)구걸 대렬>이라는 사회면 톱기사였다. (1964년 5월9일)
이 기사를 스타트로 하여 8회에 걸쳐 ‘허기진 군상’시리즈 기사가 보도 되자 민심은 박 정권으로부터 멀어 지면서 대학생들의 데모 구호로 등장 하는 지경이 됐다.

또 북한의 평양방송과 언론 매체들이 경향신문을 인용 “남조선 인민들은 박정희 군사정권아래 모두 굶어 죽어간다.” 고 선전 하면서 비라를 만들어 남한으로 날려 보냈다.

6.3 계엄령 선포, 언론인 17명 구속 수감
反共법,특정범죄처벌법등,빨갱이 누명 씌워

언론 탄압의 기회만 기다리던 정권은 6.3 계엄령 선포와 함께 4일 새벽부터 평소 반정부 적인 기사를 써온 언론인 17명을 영장도 없이 불법 체포 구속 했다. 특히 경향신문을 노리던 정권은 필자가 쓴 허기진 군상’을 트집 잡아 필자와 발행인 이준구, 정치부 윤상철 기자를 연행 했다.

이준구 발행인과 필자는 남산 외교구락부 아래에 있는 新韓무역사로 위장된 기와집 지하실로 끌려 갔으며 윤상철 기자는 계엄 사령부로 연행 되었다.

신한무역회사는 중앙정보부 소속 안가로 불리는 수사기관이었다.이곳 지하실에서 아침 9시부터 밤 8시 까지 2주일 동안을 고문 당하며 북한 공산당과 내통하여 허기진 군상 기사를 보도 했다고 허위 자백 하도록 강요 받았다.

그러나 그토록 엄청난 고통을 당 하면서도 끝끝내 허위 자백을 하지 않자 그들도 어쩔수 없었던지 검찰로 송치 해 서대문 감옥으로 넘어 갔다. 그런데 검찰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 정의로운 검사였던 이용훈 부장 검사와 김병리 주임 검사는 반공법 위반 사건이 될수 없으므로 기소 할수 없다고 버티었다. 그래도 청와대와 정보부의 부당한 압력에 그들은 저항 사표를 제출하는 상황으로 발전 했다.

이에 당황한 정권은 이용훈 부장 검사의 사표는 수리하고 김병리 검사의 사표는 반려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권력 지향적인 최대현 공안부장에게 사건을 배당 하면서 이준구 발행인은 석방 하고 필자만 기소 했다.

그후 재판도 없이 2개월을 구속한 후 계엄령 해제와 함께 석방 했으나 조건을 달았다. 손충무를 언론계에서 떠나도록 해임 하라는 요구였다. 회사측은 석방을 위해 경향신문 1면에 해임 사고를 내고 석방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한후 1개월 동안 휴가를 마친후 다시 출근 했다.그러나 1년 동안은 지면에 손충무 이름을 사용치 못하고 무기명으로 기사를 써야 했다.

중앙정보부 7번 끌려가 고문 받으며 3년 투쟁
이준구 신문사 빼앗기고, 필자는 결국 미국 망명

허기진 군상’ 시리즈 기사로 경향신문을 빼앗으려고 했던 정권은 첫번째
계획이 실패로 끝났는데도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그들은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런때 경향신문에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윤우현이라는 재일 교포 출신 동경지사장이 북송선을 타고 평양으로 도망친 사건이 1965년에 생겼다.

그런데도 해외 지사장이기 때문에 정부가 계획적인 음모 사건으로 몰아 갈수는 없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이번에는 중앙정보부가 좋은 구실을 삼을 수 있는 간첩 보호 및 정보 제공 사건이 신문사 내부에서 발생 했다.

당시 경향신문 체육부에 이향백이라는 부장이 있었다. 한국 스포츠계에 널리 알려진 스포츠 맨 출신 언론인 이었다.그의 동생에 이성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6.25 전쟁 때 행방불명이 됐다가 65년에 형 앞에 나타났다.

이성백은 처음 형의 가족들에게 “6.25 전쟁 때 일본으로 도망하여 일본에서 재산을 모아서 귀국 했다.”고 말했다. 이향백 부장은 동생의 말을 그대로 믿고 1년 가까이 한집에서 함께 살았다.

그런데 중간에 동생이 평양에서 남파된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그런데도 가족들은 그를 고발 하거나 자수를 권유 하지 않고 집안 식구들이 그를 도왔다. 그것이 불행이었다.

이향백 부장의 집은 한양대학교 근처에 살았으며 필자는 무학여고 근처에 살고 있었다. 정보부와 경찰은 밤마다 한양대학교 근처에서 평양으로 날아가는 전파를 탐지 수사망을 좁혀 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이성백이 바지를 벗어 방안에 버려두고 외출 했다.그래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세탁소에 바지를 마꼈는데 세탁소 청년이 바지 앞 적은 주머니에서 이상한 길다란 종이 쪽지를 발견했다.

당시는 TV에서 반공 드라마를 많이 했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난수표라는 암호문을 알고 있었다 .세탁소 직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정보부에 보고 했으며 난수표는 바지 세탁을 마친후 그 자리에 넣어 돌려 보냈다.

3주일 동안을 잠복 하던 정보부는 일 가족을 체포 했으며 그 사건으로 인해 경향신문은 간첩이 잠입 활약한 언론으로 누명을 쓰게 되었다.

이준구 발행인은 다시 구속이 되고 편집국은 매일 아침 정보부 직원 수십명이 진을 치고 수사를 한다는 미명아래 신문제작 방해를 했다.

필자는 7번이나 정보부에 끌려갔다.을지로 3가 충일기업사라는 정보부 분실이었다.외부에는 소아과 병원 간판이 걸려 있었으며 병원은 휴무’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경향신문의 간부급들은 한번쯤을 모두 불려 다녔다.그런데도 필자가 7번이나 끌려 간 것은 이향백 부장의 출퇴근 지프를 1년 이상 함께 타고 다녔으며 2년전 ‘허기진 군상’기사로 감옥에 간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준구 측근으로 분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년 반 이상을 감옥과 병원을 오가며 투쟁 하던 이준구씨는 건강을 견디다 못해 2억여원의 보상금을 받고 경향신문을 포기 미국으로 병 치료를
떠난다는 조건으로 석방 했다.

청와대와 정보부는 은행을 시켜 경매를 하도록 만들고 이후락 김형욱이 지시한 기아산업이 단독 응찰 경매를 받아 몇년을 운영 하다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신진 자동차 김창원에게로 넘어 갔다.

그후 신진 자동차는 박정희에게 주식 70%을 헌납 했으며 경향신문은 문화 방송국과 합병 하여 운영 하다가 5.16 장학회로 넘어가는 기구한 운명의 길을 걸었다.

1977년 미국으로 망명,프레이져 위원회에 김형욱의 언론인 탄압,경향신문 사건 증언

청와대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경향신문은 권력의 대변지 언론으로 변모 됐으며 反 박정희 세력으로 분류된 필자는 몇 년 동안 엄청난 수난을 당했다. 그러다가 유신 2기에 접어 들면서 더 이상 한국 에서는 정의로운 언론인 생활을 할수 없다고 판단 1977년 6월 캐나다 토론토 대학 신문 연구소에 객원 연구원으로 초빙을 받고 캐나다로 갔었다.

가족들은 아이들 학교가 8월 여름 방학이 시작 되면 데리고 오라고 아내에게 부탁 하고 캐나다 도착후 회사에 사표를 내도록 해놓고 떠났다.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내자 정보부가 당황 다음날 정보부 직원 3명이 반포아파트 집으로 들어 닥쳐 집을 수색하고 가족들 여권을 뺏어 갔다. 그래서 워싱턴으로 가서 정치 망명을 선언 하고 3년 동안 가족들과 생 이별을 했다.

미국 망명후 연방 하원 국제관계 위원회 프레이져 위원회에 나가서 김형욱의 언론인 탄압 사실과 경향신문 강제 경매 사건의 범죄 사실을 증언 하고 김형욱을 미국 연방 법원에 형사 고발 했다.

그러니까 김형욱이 흑인 3명을 사서 필자를 죽이려고 하다가 수사 기관이 포착하여 김형욱에게 권총을 압수 하는 일도 있었다.그후 전두환 정권이 가족들에게 여권을 발급해 주어 아이들은 1981년 미국에 왔으나 아내는 함께 오기를 거절 결국 정권 때문에 불행한 이혼을 하게 됐다.

한편 필자는 1986년 한국으로 돌아가 1987년 4월 ‘제1.3공화국의 언론과 정치’라는 책을 집필, 박 정권에 의한 경향신문 강제 경매 사건을 폭로했다. 이 책을 문학예술사에서 발행 했으나 정보부가 판매 하지 못하도록 방해 압수를 하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1심부터 이겼으나 정보부가 방해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 했다.

이것이 한국 언론사에 첫 판례를 만든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법률에 의하지 않고 정부가 행정 편의주의를 내세워 헌법에 보장돤 언론자유의 출판물을 판매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행위는 위법이라는 1심 재판을 지지 했다.

결국 “정의는 승리하며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역사의 진실결국 모든 것이 밝혀졌다. 41년 만에 벗은 빨갱이 누명?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이제 정부는 경향신문을 본래의 소유주에게 돌려 주고 빨갱이로 몰아 고통을 준 언론인들의 명예를 회복 시키고 41년간 족쇄를 채워 고통을 준 정신적 육체적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손충무 국제 저널리스트,www.usinsideworld.com
이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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