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대표, 말 잘못 했다. 흡수통일을 반대한다고? 아니, 독일의 경우 흡수통일이 누가 시도(試圖)해서 된 것인가?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서독 콜 수상은 통일을 먼 훗날에나 있을, 단계적인 조치의 최종국면으로 설정했었다. 그런데 동독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을 왕창 허물고 물밀듯 서독으로 들이닥쳐서 서독이 오히려 흡수통일 사태를 떠안은 셈이다.
한반도의 경우도 북한 권력층 내부의 모순이 폭발하고 북한주민들이 대거 국경을 넘는 급변사태가 나면 우리가 흡수통일 사태를 떠안을 수 있다. 이거야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산사태 같은 것 아닌가?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다. 이건 흡수통일이 아니라 공존, 교류, 신뢰축적을 통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 추구다.
북이 이런 합리적이고 기능주의적인 통일 프로세스에 호응한다면 한반도의 장래 운(運)은 윈윈이다. 그러나 북은 그럴 수가 없다. 그렇게 할 경우 김 씨 절대왕정의 절대독재가 보장되지 않을까봐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 우려는 사실일 수 있다. 절대왕정의 절대독재를 길이 유지하는 데는 ‘느슨하게 풀어놓음’이 아닌 ‘꽁꽁 얽어맴’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나 아무리 꽁꽁 얽어매려 해도 북의 내부사정은 갈수록 유동(流動)할 가능성이 있다. 장성택 숙청 같은 권력층 내부의 길항(拮抗)과 모순이 계속 내연(內燃)할 수 있고, 주민들의 충성심도 김일성 때 다르고 김정일 때 다르고 김정은 때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북이 곧 소멸한다”고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국가로서, 공공제도로서, 체제로서는 이미 더 이상 어떻게 손 써볼 수 없을 정도로 고장 난 자동차 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북한과 함께 하는 신뢰 프로세스를 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 고장 난 북한 자동차가 정말로 고속도로 상에서 제풀에 ‘앵꼬’를 낼 경우에도 대비해서 이런 저런 비상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건 국가의 정상업무 중 하나다.
그 비상대책(contingency program)에는 우리의 신뢰 프로세스에는 없는 것, 즉 언제 어느 때 닥칠지도 모를 급박한 ‘통일 사태’를 염두에 둔 대비책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비책에는 그런 사태’에 임해서 우리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김한길 대표가 대통령이면 이런 걸 안 하겠다는 것인가? 그게 위기국가의 대통령이랄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흡수통일은 특정한 국면에서 우리에게 벼락처럼, 쓰나미처럼 닥치는 것이다. 이건 우리가 “오지 말라, 오지 말라” 한다고 해서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합리적 선택을 하면 물론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죽어도 합리적 선택을 할 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선택은 결국 자체 모순을 심화시키는 광신적이고 수구적인, 따라서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다.
북이 이러는 한 우리는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대책, 즉 ‘통일 대책’을 세워놓아야 한다. 김한길 대표, 이게 뭐가 잘못 됐다는 것이요?
김한길 대표는 지금 당내 이념적 근본주의 패거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 김한길 대표는 리더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흠집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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