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 10일 오전 서울 간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도산묘소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76주기 추모식이 열렸다.ⓒkonas.net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이자 민족 계몽운동가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76주기 추모식이 10일 오전 서울 간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도산묘소에서 열렸다.

▲ 추념사하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konas.net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와 흥사단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광복회원, 흥사단원, 학생,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전봉독, 추모사 추념사, 추모가,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추념사를 통해 “선생이 뿌려놓은 희생과 나라 사랑 정신이 오늘날 우리 국민의 정신적 희망으로 면면이 이루어져 오고 있다”며 선생이 강조했던 민족통합과 교육의 정신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루어 번영된 국가 안위를 이루어 나갈 것을 밝혔다.
도산 안창호(1878. 11. 9 - 1938. 3)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며 자주독립과 국민의 자각을 호소했다.
19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1905년 미주 한인 최초의 민족운동 단체인 ‘공립협회’를 창립하고 ‘공립신보’를 발간했다.
이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는 1907년 귀국하여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민중운동을 벌인다.
1909년에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배후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국외로 망명,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12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한 후 1913년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해 민족 계몽운동과 국권회복 활동을 펼쳤다.
1919년에는 3·1독립 선언 찬동 포고문을 발표하고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정부 내무총장 및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해, 연통제 실시와 교통국을 설치하고 임정기관지인 ‘독립’을 발간했다.
1931년에는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폭탄투척 의거로 피체돼 4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이후 1937년 6월 일본 경찰에 다시 체포돼 옥고를 치르던 중 병을 얻어 12월 보석으로 출감했으나 1938년 3월 순국했다.
정부는 안창호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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