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이 무슨 날인가? 대다수 국민은 현충일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현충일은 무엇하는 날인가?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 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절반 가량이 공휴일로 알고는 있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 날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한다.
그러면 현충일은 어떻게 제정됐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고개를 흔든다.
우리는 6·25 전쟁에서 40만이 넘는 군인이 희생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휴전이 성립되고 나라가 안정을 찾아가던 1956년, 매년 6월6일을 현충일로 지정해 임들을 추모하기로 했다.
이날을 현충일로 정한 이유는 절기상 ‘망종’(芒種)에 성묘도 하고 제사도 지내는 전래 풍습이 있었는데, 1956년 ‘망종’이 6월6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는 현충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해마다 현충일이 되면 국립현충원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추념식이 열린다. 오전 10시에는 사이렌이 울리고 전 국민의 묵념이 시작된다. 참전 용사들의 가정에는 정부 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참전 노병들이 누워 있는 보훈병원에도 각계 인사들의 위문이 이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다음부터다. 현충일이 지나고 나면 대개 현충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순국선열과 참전용사들의 고마움도 잊어버린다. 전쟁터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돌아가신 참전용사들을 기억하지 않는 국민은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 그런 나라의 국민은 유사시 그 누구도 전쟁터로 뛰어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나라는 전쟁을 피할 도리가 없다.
내일은 쉰아홉 번째 현충일이다. 대전과 서울 동작동의 국립현충원을 비롯한 전국의 호국원에는 수많은 호국 영령이 잠들어 있다. 바로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대신 돌아가신 분들이다.
옛 서대문형무소에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살이 찢기는 고문과 싸우다 순국하신 선열들의 핏자국이 아직도 생생하다.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에도 일제의 총칼에 맨손으로 맞서 항거하신 애국 선열들의 기록이 전시돼 있다.
현충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역전의 전우들과 더불어 현충원을 찾아 먼저 가신 전우들을 찾아보라는 뜻이다. 아들·딸·손주들의 손을 잡고 서대문형무소를, 독립기념관을 찾아 나라 없는 민족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껴 보라는 현충일이다.
국경일에 아파트마다 가뭄에 콩 나듯 태극기가 내걸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수많은 선열이 그토록 가혹한 억압을 이겨내며 피로써 되찾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태극기는 바로 그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기(弔旗)를 내거는 일 또한 현충일에 후손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동시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해야 할 기본 책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외침(外侵)으로 인한 수난과 핍박의 역사가 되풀이되게 해선 안된다.
6·25 전쟁을 일으켜 500만 동족을 사상케 했던 북한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다. 아니 그때보다 더 악랄해지고, 더 집요해졌다. 36년 간 식민통치의 고통을 안겨줬던 일본의 군국주의는 또다시 꿈틀거리며 되살아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우방이 어디 있고, 영원한 적이 어디 있는가? 영원한 것은 오직 국가이익뿐이다.
정의(正義) 없는 무력(武力)은 폭력’이라고 비난들 하지만, ‘무력 없는 정의는 무력(無力)’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떤 외부 세력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만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길이다. 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다.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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