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지털뉴스 정승로 기자 오는 24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423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은 선조 25년 1592년 5월 24일(음력 4월 13일) 수많은 병선에 왜군을 싣고 부산에 상륙하여 우리나라(조선)를 침공했다.

김성만 예비역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前 해군작전사령관)이를 임진왜란이라 한다. 1598년까지 이어진 전쟁에서 국토는 황폐화되었다. 민간인을 포함한 조선 측 사망자는 1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도 부지기수다. 또한, 경작지 중에서 66%가 파괴되었다. 육상 전투에서 연패함에 따라 선조가 평안북도 의주까지 피난을 갔다. 임진왜란은 오랜 평화와 그로 인한 안보 해이가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전쟁이다.
당시 일본군은 신무기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랜 기간 평화에 젖어 안보를 잊고 있었다. 혹시 왜군이 쳐들어온다면 큰 나라인 명나라가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라는 있으되 나라를 지켜줄 국방은 없었
다.
그런데 해전에서의 승리로 인해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이는 조선이 상당 규모의 수군(해군)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자료는 없으나 병력 약 5만 명에 함선 700~800척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군선과 화포를 개발했다. 세종 재위 1418~1450년에는 수군 50,402명에 군선 829척이었다. 당시 국가전체 군인 병력은 11만 명이다. 또 성종 1469-1494에는 수군 48,800명에 군선 739척이다. 각도별 군선 배치는 경기 57척, 충청 109척, 경상 266척, 전라 186척, 강원 16척, 황해 39척, 영안 23척, 평안 43척이다.
조선 수군은 임진왜란 전인 16세기 중반에 들어 큰 발전을 이루었다. 임진왜란에서는 주력 군선으로 활약한 판옥선이 등장했고, 화기도 천·지·현·황자 총통 위주로 개편됐다.
먼저 판옥선은 일본의 아다케·세키부네와 비교하면, 강도와 전투력 면에서 월등한 군선이었다. 반면에 일본이 육전에서 승리를 가져온 조총은 해전에서는 그다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임란발발 직전에는 거북선이 건조됐다. 오늘날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이지스구축함이다. 이러한 군선 등 무기체계의 차이는 일본 수군이 해전에서 전패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물론 이순신 제독의 뛰어난 전략과 전라도 수군의 전쟁 준비도 승리 요인이다.
그러면 400 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해군은 병력 4만1천 명에 함정 170척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우세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서해5도 무력탈취를 기도하고 있다. 북한해군은 함정 820여척에 6만 명이다.
일본은 2005년부터 방위백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고 무력탈취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해군은 한국 해군력의 3배 이상을 평가받고 있다.
중국은 2006년부터 이어도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이어도와 서해 EEZ를 노리고 있다. 중국 해군은 한국 해군의 6배 이상이다.
우리 해군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함정의 성능도 일본·중국 해군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해군력 증강에 대한 목소리는 없다. 전문가들은 우선 병력 8만 명에 350척 수준으로 증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신속한 조치를 기대한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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