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드골과 케네디의 역사적 核논쟁 중계
처칠, 드골, 이승만은 대문장가였다. 복잡한 상황을 요약하여 파악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외교를 펴는 데 있어서 지도자의 문장력은 그야말로 國力(국력)이다. 드골의 知的(지적) 수준을 잘 보여주는 자료를 소개한다.
<조갑제닷컴> 존 F. 케네디 대통령 밑에서 특별 보과관 겸 史官(사관) 역할을 하였던 아서 M. 슐레진저 2세는 1000일 백악관의 케네디(A Thousand Days: John F. Kennedy in the White House)라는 책을 썼다. 傳記(전기) 부분 퓰리처 상을 받았다.
1961년 6월 초 파리를 방문한 케네디와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頂上(정상)회담 기록 중 核전략을 다룬 부분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핵무장한 북한의 위협에 노출된 핵 없는 한국에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드골은 '핵무기가 없는 나라는 진실로 독립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을 한 사람이다.
드골 '지금과 같은 NATO는 수명이 다하였다. 이 조직의 핵심적 존재 목적은 미국의 핵무기로 유럽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만이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던 시대는 지났다. 미국은 더구나 다른 곳에서도 할 일들이 많다. 미국이 통합적으로 군대를 지휘하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이다.
최근 프랑스 장군들이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프랑스를 자기들이 지킨다는 자주국방 의지의 不在(부재)가 한 원인이다. 이는 정부에 대한 충성심의 결여로 나타난다. 자주국방 의지의 결여는 동맹을 약화시킨다. 애국적 동기가 있어야만 長期戰(장기전)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기 위하여) 먼저 핵무기를 쓸 것이라고 믿을 수 없게 되었기에 유럽의 안전은 유럽 국가들에 의하여 확보되어야 한다. 미국의 도움 없이 그렇게 하자는 게 아니라 미국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케네디: '미국에 있어서는 유럽의 방어가 미국의 방어와 마찬가지이다. 미군이 유럽에 주둔하는 이유는, 유럽에 대한 소련의 공격은 자동적으로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모스크바에게 想起(상기)시키기 위함이다. 핵무기는 먼저 사용하는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므로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로 공격했다고 해서 우리가 핵무기 사용을 유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유럽 국가들이 별도로 국방체제를 갖춘다면 새로운 문제를 만들 것이다. 즉 핵무기가 없는 국가들은 불만이 생길 것이고 중립화로 몰릴지 모른다.'
드골 '만약 러시아가, 미국은 다른 나라의 방어를 위하여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귀하의 말이 맞다. 그러나 러시아가 그렇게 믿을지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미국인들조차도 그 약속을 믿을지 의문이다.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 원자폭탄을 맡겨놓을 수는 없다 注: 다른 나라의 사태에 의하여 自國(자국)의 핵폭탄 사용 與否(여부)가 좌우되도록 할 수는 없다는 뜻. 이게 프랑스가 미국에 핵무기를 지원해달라든지 핵개발을 도와달라고 하지 않은 이유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은 자기 영토가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을 때만 핵무기를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하지 않는가? 국가는 그렇게 행동하는 법이다.
러시아와 프랑스도 그럴 것이다. 귀하가 미국인은 유럽과 미국을 같은 존재로 본다고 말하니까 나는 그 말을 믿겠지만 다른 사람도 그럴까? 내가 만약 귀하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이 무기를 써야 할지 자신이 없을 것이다. 벌써 미국은 기준을 높이지 않았나, 즉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야 하는 시각을 늦추지 않았나?
케네디 기준을 엄격히 한 것은 局地的(국지적) 충돌이 핵전쟁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약속을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통제를 강화했다. NATO에 대한 공격은 그 기준을 넘어서는 것임이 명백하다. 장군(드골)은 미국이 2차대전까지는 고립주의적이었지만 달라졌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을 침략했을 때 취한 미국의 대응을 보면 우리 동맹국들은 안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끼리의 신뢰를 강화할 때 모스크바에 대하여 우리가 베를린 위기에 즈음하여 단호하게 대응할 것임을 믿게 만들 수 있다.
그날 저녁 드골은 베르사이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호화로운 만찬을 베풀었다. 만찬 중 케네디는 드골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했다. 처칠과 루스벨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드골은 이런 요지의 비교 했다.
처칠은 투사였다. 가식 없는 매너를 가졌으며, 어느 날은 매우 재미 있고, 다른 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의 정책은 임박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단기적인 것이다. 모든 영국인들이 다 그렇지만 그도 장사꾼이다. 예컨대 러시아를 상대할 때 東歐(동구)에서 양보를 함으로써 다른 곳에서 행동의 자유를 얻으려는 식이었다. 루스벨트는 항상 매력적이고 항상 귀족적이다. 그는 장기적 정책을 추구하였지만 소련에 대한 정책처럼 실수가 잦았다.
이 대화를 기록한 슐레진저 2세는 이렇게 평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확고부동의 국가주의자와 이성적이고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실용주의자 사이의 솔직하고 탐색적인 만남이었고 둘 다 만족했다. 드골은 케네디가 자신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고 충분히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케네디는 오랫동안 드골에 흠뻑 빠졌는데, 특히 이 위대하고 침울한 지도자가 역사적 사건을 상대하면서 그 결과를 고매하고 세심한 문장으로 기록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 만남은 드골의 끈질김과 명료한 생각을 이해하는 도움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