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 규슈(九州) 이부스키(指宿) 시를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조선 도공의 후예이자 일본도예 명가(名家)인 심수관가(沈壽官家) 후손을 만난다.
노 대통령은 조선 도공(陶工)의 후손으로 일본에서 ‘사쓰마야키’(薩摩燒)라는 찬란한 사쓰마자기(薩摩磁器) 문화를 일군 심수관 가문의 14대손(孫) 심수관 옹(76)과 15대손 심수관 씨(45)를 만난다. 이들은 일본도예의 명인으로 대우받고 있다. 심수관가는 일본 3대 도자기의 하나인 사쓰마자기 종가라는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사쓰마자기는 우아하고 섬세한 백색 사쓰마와 소박하고 실용적인 흑색 사쓰마로 대별된다.
심수관가는 1대조 심당길(沈當吉)이 1598년 정유재란을 겪으며 전북 남원에서 조선도공 80여명과 함께 왜군에 붙잡혀 강제로 사쓰마(현재 가고시마 현)에 끌려와 정착하면서 가문을 이뤘다. 심당길은 처음부터 한국 성(姓)을 고집해 ‘심’씨 성을 간직했고,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생산하고 도예문화를 일궈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 당시 일본 규슈지방은 나무그릇과 흙으로 만든 토기를 주로 사용했다.
이어 1603년 히가시(東市) 이치키초(來町)로 이주해 정착한 뒤 한국전통 도요(陶窯, 도자기를 굽는 가마)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빚어 사쓰마 지방 도자기를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11대까지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려오다 12대부터 심수관으로 작명한 뒤 같은 이름을 이어받는 습명(襲名)에 들어가 15대 심수관에 이르렀다. 12대 심수관이 1873년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에 2ｍ 높이의 ‘금수대화병’을 출품해 유럽인에게 상찬을 받고 이후 ‘사쓰마웨어’라는 브랜드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일이 계기가 돼 심수관을 가문의 세습명으로 삼게 됐다. 습명은 40세가 되는 해 이뤄진다.
14대 심수관 옹은 지난 12일 선조 심당길이 쓰던 망건을 내보이며 “이것이 심수관가의 가보(家寶)”라며 “도예가로서 조선도공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선조의 망건을 꺼내보며 힘을 얻고 어려움을 극복해왔다”고 덧붙였다.
심수관 옹은 지난 64년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4대 심수관을 습명했으며, 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대화병을 출품해 절찬을 받고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89년에는 가고시마 대한민국 명예총영사로 임명됐으며, 99년 우리정부의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편 15대 심수관 씨는 지난 98년 사쓰마 도자기 400년제’에 쓸 ‘남원의 불’을 봉송하려고 그해 10월 전북 남원을 방문해 교룡산성 산신단에서 부싯돌로 채화한 불씨를 직접 일본으로 가져왔다. 당시 심 씨는 400년 전 일본으로 끌려온 선조 심당길을 비롯한 조선도공들이 배에서 내려 첫발을 디딘 구시키노(串木野) 시의 시마비라(島平) 해변으로 직접 불씨를 옮겨왔다. 이어 고향의 불씨로 ‘한일 우호의 불꽃(炎) 기념석탑’에 점화함으로써 남원 도자기의 일본전래를 완성했다.
남원의 불’ 봉송은 정유재란 때 붙잡혀온 조선의 도공들이 점토와 유약은 가져왔으나 도예의 혼인 불씨를 가져오지 못해 일본의 불로 자기를 굽는 것을 애석해 하며 조선의 불 채화를 유언으로 남긴 조상들의 한을 달래는 의식으로 장중하게 치러졌다.
노 대통령 심수관家’ 후손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