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나라 먼저(Country First) 보수원칙 개혁정신에 입각한 합리적 人選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존 매케인(John McCain)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美 정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44세의 알래스카 주(州)지사 세라 페일린(Sarah Palin)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 미국과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인구 9,780명의 작은 도시 와실라(Wasilla) 시장(市長)에 불과했던 페일린은 2006년 알래스카 주지사 선거에서 ‘개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 당시 공화당 현직 지사이자 22년간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거물 프랭크 머코우스키(Frank Murkowski)를 당 경선에서 패배시키고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제치며 주지사에 당선됐다.
현재 페일린의 알래스카 내 여론 지지도는 80~90%를 넘나들고, 주민들은 차량에 “가장 추운 주, 가장 뜨거운 주지사(Coldest State, Hottest Governor)”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고 한다.
분석가들은 매케인의 페일린 지명이 힐러리 클린턴 지지표와 여성표를 매케인에게 향하도록 하는 대신, 오바마가 지녔던 ‘경험 부족’ 브랜드를 희석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지적하면서, 이번 지명을 “특별한 의미의 위험(special peril)”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매케인 자신은 페일린의 ‘개혁(reform)’ 마인드와 그녀가 알래스카에서 보인 ‘개혁’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매케인 후보는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면서, “(페일린은) 내가 워싱턴의 구(舊)정치 관료조직을 쇄신(刷新)하고 국민을 위해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케인은 이어 “그녀야말로 정확히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서, “특히 ‘나라보다 자신을 먼저(Me first and country second)’ 생각하는 워싱턴 구(舊)정치와 내가 싸우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정확히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라고 칭찬해마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가 돼 6년간을 공산 월맹의 포로수용소에서 굴복하지 않고 있다가 파리협정에 의해 풀려난 매케인은 ‘개혁’에 입각한 “나라 먼저(Country First)”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개인적 야망으로 가득 찬 구(舊)정치 타파를 선언하면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지난 8년 국정 수행 성적표는 미국민들에게 매우 부정적이고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부시행정부가 열정적으로 수행해 온 이라크전쟁이 인기가 없고, 무엇보다도 경제 상황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 매케인은 이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해왔고, 한 때는 매케인 자신이 부시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미군의 이라크 증원(增援)을 통한 강력한 이라크 개입만이 이라크 민주화와 전쟁 승리를 달성할 수 있다고 조언했을 정도였다. (부시대통령은 그의 조언을 좇아 美軍증파를 단행했고, 그 후 이라크정세는 安定기조로 접어들었다.)
부시행정부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단순히 이라크 전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민들 다수는 ‘자유와 인권의 세계적 확산’을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미군(美軍)의 적극적 역할에 긍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부시행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고 즉흥적이며, 효과적인 실천방안이 결여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인기가 없는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란의 핵무장 저지 실패, 그루지아 전쟁의 경우 말로만 큰 소리 치는 모습,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처음 원칙적이고 강경했다가 점차 협상에만 매달리고 북한에게 끌려다닐 만큼 갑자기 꼬리를 내리는 모습 등이 미국민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전에 임한 매케인 후보는 적지 않은 딜렘마와 어려움에 봉착해왔다고 분석가들은 지적한다. 말하자면 공화당 세력을 이끌고 백악관에 다시 들어가 미국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앞에 놓고, 인기 없는 부시대통령과 행정부 8년의 초라한 집권 성적표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민주당은 이런 상황을 이용, ‘변화(change)’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공화당과 부시행정부를 공격해왔다. 민주당은 매케인과 부시를 동일시하면서 “부시와 매케인은 ‘트윈 시티(Twin Cities)’ 안의 ‘쌍둥이(twins)’”라고 비난해왔다. 부시의 ‘실정(失政)’ 이미지를 매케인과 오버랩시켜, 승리하려는 전략이다.
이런 난국을 메케인 측은 페일린 지명을 통해 타개해 나가려는 시도다. 보수적 원칙과 정견을 견지하면서도 과감한 ‘개혁’ 노선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이끌어간다는 전략이다.
페일린 여사는 짧지만 강렬한 정치 경력이 말해 주듯, 보수적 원칙과 反낙태주의, 총기(銃器) 소유 지지 등의 확고한 천명을 통해 사기가 떨어진 공화당의 정치적 입지에 활력을 다시 불어넣으면서, 낡은 정치관행을 일소하고 ‘개혁’ 성향으로 국민에게 어필, 매케인에게 승리의 희망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페일린 지명이 발표된 29일 이후 이틀간 총 70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매케인 후보 측이 거둬들였다는 소식이다. 매케인 후보 진영이 그동안 1일 1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성과다.
한편 매케인과 페일린 두 사람 간에 특별한 학연 혈연 지연 등의 인맥 관계가 없었고 매케인 자신도 금년 2월 공식석상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정도라는 점에서, 이번 인선(人選)은 흔히 정치인들이 중시하는 충성도(忠誠度)를 떠나, 그녀의 ‘개혁’ 마인드를 높인 산 합리적 선택이었다는 점이 눈에 띤다.
매케인과 페일린을 정 부(正副)통령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공화당은 정강정책 초안에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oca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해체)’를 핵심으로 하는 북핵 정책을 집어넣었다. ‘CVID’는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 초기에 채택했다가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기 시작한 지난해 봄부터 사실상 포기한 對북핵 정책 노선이다.
초안은 또 “미국은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광적인(maniacal) 독재국가인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맹국, 한국과 함께 북한의 위협에 맞서 왔다”고 기술, 韓美 동맹을 강조했다. 또한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한국민의 희망대로 한반도가 통일돼 평화와 자유를 누리길 희망한다”고 북한 인권문제를 지적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민주당은 정강정책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을 통한 ‘직접외교’를 지속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매케인은 부시만큼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이며, 이번 인선(人選)이 말해주듯 합리적 개혁주의자이다. 그는 또한 높은 도덕성과 불굴의 용기를 가진 인물이다.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 직후 쓴 칼럼에서 그는 “이라크 전쟁이 결코 미국을 위한 ‘이기적인(selfish) 제국주의적(imperialistic)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오는 11월 ‘매케인 페일린’ 팀의 승리가 한반도와 특히 북한 동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줄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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