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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영변시설 협상 카드로 들고 나와 ‘核신고’ - 테러지원국 해제 강변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북한이 돌연 “(영변)핵시설 원상 복구”를 선언함에 따라 북한 핵문제가 새로운 국면(局面)에 접어들고 있다.
부시행정부가 북한式 검증체계의 “수용 불가”와 테러리스트 명단에서의 삭제 보류를 천명함에 따라, 이에 대한 반발로 북한정권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disablement) 취소’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국제원자력기구)가 영변핵시설에 붙여놓은 봉인을 제거함으로써, 플루토늄 재생산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다는 소식이다.(美 폭스뉴스, 9월 5일 보도)
이러한 북한 반발의 근원적 배경에는 꺼지지 않는 북한의 핵 야망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핵개발을 기정사실화시켜 ‘핵 보유국’ 지위를 공인(公認)받겠다는 기도가 아닌가 한다.
영변 핵시설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흑연감속 방식의 플루토늄 원자로로서, 전략적 가치가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이미 핵 개발 프로그램을 플루토늄에서 고농축우라늄(HEU)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낡은 시설을 협상 카드로 들고 나와 ‘핵 신고’를 마쳤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6자회담을 진행하면서 핵협상이 검증 단계에까지 오게 된 것을 “대단한 성공”으로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부시행정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이제 미국 내에서도 그 허상(虛像)이 깨지는 분위기다.
존 볼튼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지난 6일 월스트리트(WSJ)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부시 행정부의 심리(心理)를 읽고 핵 불능화 조치 중단 및 영변핵시설 복구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북한의 핵 불능화 중단은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새로운 협상을 전개하여, 오바마 정부로부터 추가적인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시간벌기’ 전략을 추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북핵 6자회담 과정은 국제협상의 역사를 새로 쓰기에 충분할 만큼,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회담 개최와 중단, 그에 따른 희망과 좌절, 전환과 기복(起伏)이 있었고, 그 와중에서 북한은 2006년 10월 핵실험을 감행했다.
미 북 양측은 2007년 2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2ㆍ13합의>로드맵을 만들어 가까스로 6자회담을 지속해왔으나, 이번 북한의 ‘핵복구’ 선언으로 모든 것이 다시 원점(原點)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 재개의 직접적인 계기는 ‘검증 합의 실패’라고 하지만, 본래 북한 핵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결되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다른 5자(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간의 상충(相衝)하는 입장 차이가 그것이다.
북한의 산하단체 조총련(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지난 6일 보도했듯, 북한은 “핵시설 원상복구” 선언과 관련하여 “자주권(자위권)”을 재차 주장하고 있고, 6자회담 참가 목적을 “선군정치에 입각한 강성대국 건설”에 연계시키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북한은 기본적으로 핵포기 의사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
이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6자회담 5개국은 북한의 핵무장이 (i)NPT (Non-Proliferation Treaty, 핵확산금지조약)체제에 대한 도전이며, (ii)동북아 평화에 대한 심대한 위협임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국가 별로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북한의 핵무장은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북핵을 저지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북핵 저지를 위해 제시된 가장 합리적이고 일관된 해법은 (i)‘핵 不容’ 원칙을 확고히 제시하되, 그 실현을 군사적 억지력으로 뒷받침하고 (ii)북한의 ‘핵 포기’ 시 확실한 ‘포용’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金ㆍ盧 정부의 ‘잃어버린 10년’ 이전(以前), 우리의 전통적인 핵정책이 그러했고, 지난 1999년 고심 끝에 나온 「페리보고서」 또한 “억지와 포용의 병행전략(Two Track Approach)”이었다. 물론 우리의 대북정책에서 핵문제 해결이 대북 ‘포용’의 충분조건이 아님은 분명하다. 북한 인권 문제도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았던 ‘억지에 입각한 核포기 → 대북포용’ 원칙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金정부는 (i)‘북핵 불용’의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ii)“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란 단서를 달아, ‘억지’ 기능을 소멸시키는 한편, 사실상 한ㆍ미 양국에 의한 ‘북핵 저지’ 지렛대(leverage)들을 무력화시켰다. 실제로, 북한의 핵개발 야망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核불용-평화적 해결’은 현실적으로 모순되는 논리다.
돌이켜 볼 때,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 북핵은 “자위용ㆍ협상용”이라는 왜곡된 슬로건으로 포장되어 한국사회에 확산되었고, 대규모 현금ㆍ물자 지원이 북핵을 방조하기에 이르렀었다.
2001년 강력하고 원칙적인 대북정책을 표방하며 출범한 부시행정부가 임기 말에 급격한 ‘유화(宥和)’정책 전환으로 꼬리를 내리게 된 것도 한국정부의 자세에 1차적인 원인이 있었다. 예컨대 <한국정부의 核저지 의지 결여 → 북한 문제에 대한 한ㆍ미 양국 인식 차이 증대 → 한ㆍ미 동맹 약화 - 美의 현실주의 정책으로의 전환>의 인과(因果)관계가 성립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7개월을 맞고 있는 지금, 이번 북한의 전격적인 “북핵 원상 복구‘ 조치를 계기로 북핵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먼저 북한 핵이 갖는 의미 곧 (i)동북아 평화에 대한 위협 (ii)한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 개념을 명확히 하고, (i)실제로 북핵을 억지하고, (ii)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며, (iii)확고한 국가안보와 치안유지 속에서 ‘경제 활성화’를 유인해야 할 것이다.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기존의 6자회담을 활용하되, 북핵 저지에 비교적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미ㆍ일과의 협의를 강화하고, 다소 온건한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야 할 것으로 본다. 동시에 미국 대선(大選) 결과를 주시하면서, 공화ㆍ민주 양당이 집권하게 될 각각의 경우에 대비하여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공화ㆍ민주 양당의 전당대회가 끝나고 대선후보와 정강정책이 채택된 지금, 강도의차이는 있어도 양당 모두 ‘북핵 불용(不容)’ 방침에는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공화당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의 재확인, 北에 대한 “광적(maniacal)인 독재국가” 인식을 표명했고, 민주당은 ‘직접적인 외교’와 ‘6자회담 지속’을 통한 ‘북핵 프로그램의 검증가능한 종식’ 입장을 천명했다.
어떤 경우에나 한ㆍ미 간 대북 인식의 공유(共有)와 공동대응 노선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은 지금 겉으로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체제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미 ‘와해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남한으로부터 제공된 대규모 현금ㆍ물자 지원이 중단됨에 따라, 중국으로부터의 지원 증대가 이를 보완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최근 中ㆍ北 간 교역량의 급격한 증대가 이를 추정케 한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金正日(66)의 건강 이상(異狀)설이 주목을 끌고 있다. 김정일(북한 국방위원장)이 3주일 이상 공개석상에 안 보이고, 최근 중국 의사 5명이 방북했다는 정보가 나오면서 “건강 이상”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한다.(英 일간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9월 7일자 보도)
김정일은 전(前)부터 당뇨병과 심장병 등을 앓아 온 것으로 알려져 건강이 썩 좋지는 않은 사람이다. 더욱이 ‘post-김정일’ 후계자 준비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그의 유고(有故) 시, 집단지도체제를 전망하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의 유고 등으로 북한 내부에 유사(有事)상황이 발생할 경우, 아들 및 측근들 간의 암투와 중국의 군사적 개입이 우려된다.
북한이 핵무장을 완료하여 한국을 위협하기 전에 유사상황이 발생한다면,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다행한 일이겠으나, 北내부 유사사태는 우리에게 또 다른 대비를 요구한다. 北유사시 한반도 통일을 달성하여 선진 통일국가 건설을 실현할 계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美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현재, 북핵 문제는 당분간 교착상태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 정부는 조급해 하거나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이며, 차라리 이번 북한의 ‘벼랑끝 전술’을 북핵 문제의 전반적 재검토와 보다 근본적인 대북전략 마련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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