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金東吉) 연세대 명예교수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의 재산이나 명예나 학식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우리는 위대하다 하고 우러러 봅니까. 그가 지닌 정신입니다. 자기 자신의 출세나 죽재에 연연한 사람은 이 세상에 차고 넘치니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나라 망하니 베옷을 감으시고”로 시작되는 “마의태자”의 노래는 지금도 감동적입니다. 그는 신라 경순왕의 태자였습니다. 천년사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태자는 통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패망한 왕조에 미련을 갖지 않고 속세를 떠나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가 베옷을 입고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신라는 망했으나 신라의 정신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쇠망의 길을 더듬던 고려는 일종의 군사 쿠데타로 득세한 이성계 일파에 왕조를 빼앗겼지만, “이 몸이 죽고 죽어”라는 시조 한 수로 이방원의 요청을 거절하여 비록 선죽교에서 칼을 맞았건 몽둥이를 맞았건, 피를 철철 흘리며 세상을 하직했다 하여도 고려는 죽은 것이 아니라 정몽주의 그 의로운 정신 때문에 영원히 역사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일제의 침략을 막지 못하고 36년이나 일인들의 압제 밑에 시달렸지만 안중근·윤봉길·이봉창이 그렇게 분발하여 그렇게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조선의 정신은 살아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리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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