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평화 기념관을 방문, 관람하고 다음과 같이 우리들의 입장을 밝힌다.
우리들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에서는 2009년 3월 5일부터 7일까지 제주4.3사건 당시 진압작전에 참가했던 회원 등 회원대표 64명이 제주4.3평화 기념관 등을 관람하고 공통된 의견일치로 절차를 거쳐 다음과 같이 우리들의 입장을 밝히며 건의하니 정부당국과 관련위원회 등에서는 성의있는 조치 있으시기 바라는 바이다.
세계백과대사전에 “제주도 폭동사건은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폭도의 폭동사건. 김달삼, 이호제등 남로당 제주도당부의 수괴들이 북로당과 긴밀한 연락아래 살인, 방화, 관공서 습격 등 무력폭동을 감행한 다음 한라산을 본거지로 유격전을 펼쳤다.
6월18일 새볔 연대장 박진경 중령이 공산당 푸락치인 문상길중위 등에게 암살되는 것을 계기로 하여 과감한 공격을 펼쳐 7월15일 일단 소탕했으나 다시 11월7일의 소련 혁명기념일을 기하여 폭동이 발생했다.
그다음 해 4월 2일에 제주 도 인민위원장이 사살되고 김달삼은 월북함으로서 공산폭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라고 쓰여있다 (자료출처-학원사 발행 세계백과대사전 1967년3월17일, 10권 352쪽)이다.
또한 당시 제주4.3사건 진압작전 참가자들의 증언과 주변의 인식들도 대략 그러하였기에 우리들의 머릿속엔 제주4.3사건은 공산주의 지령을 받은 무장폭도들의 폭동사건이라고 인식되어 왔으며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제주4.3 평화기념관 전시 내용은 너무도 판이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저해하고 국가공권력에 반하는 행위는 미화 표기하듯 하고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국군은 마치 학살자로 폄하 하듯하며 국가 공권력의 집행기관인 경찰 또한 그러하였기에 앞으로 국민과 학생들이 현 상태로 기념관 관람시 심히 걱정스러우며 불행했던 과거 한때의 시대적 상황과 국가 치안유지가 어려웠던 혼란한 시기에 있어서는 안될 불행한 사태 발생으로 무고한 국민의 생명을 잃게하고 재산피해를 입혔기에 그분들에게는 사과와 보상과 명예회복 조치는 마땅하며 서로의 잘못을 뉘우치게하여 국민 모두가 화해하고 상생의 길로 화합하도록 세심한 검토로 기념관 내의 일부 편향된 전시, 기록물을 시정, 보완하여 재조명토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조국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목숨바쳐 싸워온 우리들은 우국충정으로 제주4.3 평화기념관을 현 상태로 국민과 학생들, 외국인들에게 계속 관람케 함은 일부국민들의 분노와 갈등 야기는 물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국가안보에 상당한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아 일부 편향적인 기념관의 내용물 전시관람을 제고 했으면 하는 심정이다.
우리들이 독립기념관을 관람하면 애국심이, 안보전시관을 관람하면 안보의식이 고취되는 것과 같이 제주 4.3 평화기념관의 전시, 표기, 영상물도 국민적 공감을 이루게하여 서로가 반성 하고, 명예 회복하여 국민 화합을 이룩하는 국민화합, 상생의 기념관이 될 수 있도록 관계 당국과 관련 위원회 등의 조속한 시정, 보완을 요구한다
연락처 전화 02) 415 - 3715 - 6 Fax 415 - 3717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 회 장 권 오 강 외 회원일동
제주4.3 평화기념관을 관람한 우리들의 소견
1.제주 4.3 사건의 발발은 대략 다음 두 가지로 전시 표기되어 있다 한가지는 4.3 사건의 도화선 3.1 발포사건 발발” 이란 제목하에 1947년 3월1일 3.1절 기념식후 군정경찰이 군중을 향해 쏜 총탄으로 주민 6명의 희생이 기폭제가 되었다는것이고 - 또한가지는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라는 제목하에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주도한 무장 봉기가 시작되었다”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소견 기타 어느 표기, 표현 장면에서도 무장폭도의 폭동사건이란 흔적은 찿아 볼수 업다.
1.봉기한 무장대는 미화 표기하고 진압작전에 임한 군인과 경찰은 학살, 총살 등으로 악의적인 표기이다.
소견 그 예로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강력했지만 온건했다”로 표기했고 “군경은 가혹하게 학살, 사살, 집단학살, 초토화 작전” 등의 제목으로 표기했다.
1.경찰 탄압에 저항 - 단선 단정” 반대제목으로 5.10 총선반대 남한 단독정부 반대로 조국의 통일 독립과 완전한 민족 해방을 위하여”라 표기했다.
소견 마치 반정부적인 표기인 듯한 인상을 느끼게 했다.
1.남북 분단은 전쟁을 불러올 것” 제목으로 표기
소견 국민 불안을 조성 하는듯한 느낌이 생김
1.시민에게 고하는 무장대의 포고문에 조국의 통일 독립과 완전한 민족해방을 위하여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만행을 제거하기위하여..(중략) 우리들은 무기를 들고 궐기했다.” 소견 반정부 감정을 유발
1.제주도 단독선거 보이콧” 제목하에 50 선거를 무산시키기 위하여 주민을 산으로 올려 보냈다.
소견 선거에 불참, 선거 거부함은 당시 정부방침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1.초토화 작전 - 정부 최고 지령에 따라 총살” 제목 소견 포고령, 계엄령에 의한 작전명령을 초토화 작전이라고 함은 부적절 1.불법으로 치러진 군법회의” 제목하에 1949년 6-7월에 제2연대장 함병선은 하산한 주민을 군법회의에 넘겼다, 이 군법회의는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불 법적인 것이다. 소견 1948.10.17일 총살령의 포고령 발표 1948.11.17일 계엄령 선포 1949.3.2일 제주도 지구 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 대령) 설치되어 제2연대를 지휘했다.
계엄령하의 군법회의?
1.가혹하게 이어진 학살” 제목하에 군 찝차와 철모쓴 군인이 서있는 사진” 소견 국군이 가혹한 학살자로 인식될 우려했다.
1.폭도 지역에선 모든 사람을 사살하라” 제목하에 소견 미군 비밀문서에서 그러한 가혹한 작전을 했다고 기록한 근거에 의거 그러한 명령식 표기는 부적절 하다.
1.형무소 수감자 집단 학살 제목하에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등 두 차례에 걸쳐 열린 불법적군법회의 결과로 수감된 자들은 이승만 정부에 의해 1960년 7월경 집단 학살됐다. 소견 1960. 4. 26 이승만 대통령 하야
1.총살해 암매장 제목 군인과 경찰의 사진” 대부분 헌병들의 사진이다. 소견 장소와 날짜 미기입으로 정확성 결여
1.스탈린과 김일성 사진 무장대 사령관 북한 해주대회참석” 제목으로 표기 소견 과연 적절한 것인지?
1.너븐숭이 4.3 위령성지” 제목 새로운 빛으로 되살아 나소서”의 비문에 역대 독재정권들의 반세기에 걸쳐 그 참사의 기억을 말살하려고 무섭게 금압했다. 소견 역대 독재정권이란 표기는 부적절
영상에 비추는 사망자의 사망내용에는 거의가 군인과 경찰에게 총살되었다고 되어있고 무장대, 무장폭도들에 의해 사망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정부측의 군,경과 공무원 등에게 학살, 습격, 방화 등 만행한 사진과 내용은 볼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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