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과 정치에 대한 언론활동을 수행하는 사간원(司諫院)은 종로구 사간동(司諫洞)에 있었는데 왕과 정치에 대한 언론활동은 물론, 현실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으로 확대되었으며 사헌부·홍문관과 함께 대간(臺諫)이나 3사(三司)라고 불렀다. 간쟁(諫諍)은 왕에 대한 언론으로서 왕의 언행과 시정에 잘못이 있을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한 언론이고, 봉박(封駁)은 일반 정치에 대한 언론으로 그 대상은 그릇된 정치와 부당·부적합한 인사 등이다.
사간원관은 왕이 중신을 접견하여 정치적 보고와 자문을 받는 조계(朝啓)·상참(常參)에 참여했고, 의정부(議政府)·6조와 함께 정치와 입법에 관한 논의에 참가했는데 왕을 모시고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經筵)과 세자를 교육하는 서연(書筵)에 입시했고, 왕의 행행에 호종(扈從)했으며 사헌부(司憲府) 관원과 함께 5품 이하 관인의 제수(除授)와 관련된 고신(告身)과 법령의 제정·개정과 관련된 의첩(依牒)을 심사하고 동의했다.
소격서(昭格署)는 도교(道敎)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구상화(具像化)한 상청(上淸)·태청(太淸)·옥청(玉淸)을 위해 성제단(星祭壇)을 설치하고 초제(醮祭) 지내는 일을 담당한 관아이며 종로구 소격동(昭格洞)에 있다. 태종 이전에는 하늘과 별자리,산천에 복을 빌고 병을 고치게 하며 비를 내리게 기원하는 국가의 제사를 맡은 소격전(昭格殿)이 경복궁 건춘문 앞에 있었는데, 1466년(세조 12) 관제개편 때 소격서(昭格署)로 개칭했다.
삼청동(三淸洞)의 제단에는 삼청전(三淸殿)·태일전(太一殿)·직숙전(直宿殿)·십일요전(十一曜殿)을 두어 초제(醮祭)를 지냈는데, 삼청전(三淸殿)에는 옥황상제(玉皇上帝)·태상노군(太上老君)·보화천존(普化天尊) 등 남자상(男子像)을 모셨고, 태일전(太一殿)에는 여자상을 모셔 칠성제수(七星諸宿)를 제사하고 직숙전(直宿殿)·십일요전(十一曜殿)에는 사해용왕(四海龍王)·명부십왕(冥府十王) 등을 제사했다.
규장각(奎章閣)은 종로구 소격동 국군병원 뒤쪽에 있었던 종친부 옆에 있었으며 왕실의 계보(系譜), 기록, 친필, 칙지(勅誌) 같은 문서를 보관하는 관아였고 실록,승정원 일지(承政院日誌),일성록(日省錄), 등록(騰錄) 등 수십만 권에 달하는 책이 규장각에 수집되어 있다. 종부시(宗簿寺)는 종로구 소격동 사간원 북쪽에 있었고 선원보첩(璿源譜牒)을 편찬하고, 종실의 허물과 잘못을 규찰하고 왕자·왕녀의 혼인을 준비하는 일을 담당하던 관아였으며 조선 초에 전중시(殿中寺)라 하다가 태종 원년(1401)에 종부시로 개칭했다.
장생전(長生殿)은 종로구 소격동 사간원(司諫院) 북쪽에 종부시(宗簿寺)와 인접해 있었으며 조선초 공신의 도상(圖像)과 관재(棺材)인 동원비기(東園煉器)를 관리하던 관아였는데 비기는 관곽(棺槨)을 뜻하며 왕실에서 쓰는 관을 미리 제작하여 보관했다.
장원서(掌苑署)는 종로구 화동에 있었으며 1466년 1월 관제개정 때 상림원(上林園)을 장원서로 이름을 바꾸었고 궁중 정원의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관장하여 수시로 궁중과 관아에 꽃을 공급하고, 매년 9월 9일 중양절에는 국화분(盆)을 궁중과 내각에 진헌(進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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