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래와 행복이 걸린 문제다. 오선생이 이 철학을 열심히 공부 했으면 좋겠다. 남한에 와서 10년만에 찾은 사람이다.정말 제자다운 제자로 삼고 싶다.
나같은 이런 철학, 사상적 선생을 만날 귀중한 기회가 그리 흔치 않다. 필요할 때 언제든 시간을 내겠다. 다시한번 생각하라 .
황장엽씨의 이 진심어린 권유를 인간적으로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는 탈북민으로 불리기보다 철학자이고 사상가로 기억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나는 황장엽씨를 인간적으로 이해한다.
무엇보다 그의 방대한 독서량과, 80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무섭도록 사그러지지않은 명징한 기억력에 감탄한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철학을 연구했고 학위를 가졌으며 평생을 그의 사상의 완성을 위해 노력했고 많은 저술을 한 철학자이고 사상가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황장엽씨의 인생은 이해하지만 그가 인간중심철학이라고 이름지은 그 나름의 완성됐다고 믿고 있는 사상체계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몇 번의 간곡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과 사상체계를 더 이상 연구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첫 번 만남의 강의와 질문, 그리고 대화에서 나는 이미 너무도 명확한 결론을 얼음짱처럼 냉정하게 내렸던 것이다.
그런 나의 태도가 스스로 완성된 철학적 체계를 정리했다고 믿고 있는 황장엽씨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자존심 상한 분노 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과 인정한다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나는 문인이다 . 작가란 본시 이 지구상의, 아니 우주의 어떤 존재에도 다 나름대로의 상황과 삶과 소멸이 있음을 이해하고 그 모든 삶을 하나같이 깊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존재다.
나는 황장엽씨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이 별로 없었다.그런데
최근에 장기표가 황장엽은 북한 김정일 체재를 옹호하는 발언을 계속해 왔다는 의혹을 제기 했다.
그러자 자유주의연대의 최홍재가 그에 대한 반박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 같고, 그 뒤를 이어 최근에 다시 누군가가 편집되어 출간된 황장엽씨의 책에서 대한민국의 보수에 대해 쓴소리 한 부분을 인터넷 어느 사이트와 <독립신문>에 올렸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황장엽씨가 이종석에 대해 언급한 일을 글로 올렸다.
이런 현상들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것임을 밝혀둔다.
우선 장기표의 글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황장엽은 김정일체재가 환멸스럽도록 싫어서 망명한 사람이다.
좌파 정권이 무슨짓을 하고 있든 지금 이 순간도 대한민국은 헌법상 엄연히 김정일체재와 주적관계로 대치하고 있는게 현실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황장엽은 주적 김정일에 반대하여 목숨을 걸고 김정일 체재를 탈출 해 나와서 대한민국에 망명한 탈북민이며 확실한 전향의 망명이 맞다.
그런 황장엽이 김정일 체재를 옹호하고 유리한 발언을 해 왔다고 하는 장기표의 지적은 그래서 맞지 않다.
장기표의 글을 반박한 최홍재의 글도 결국 이 범주일 것이다.
그의 반박은 그래서 어떤의미에서 맞는 말이다.
이 정도까지는 솔직히 나는 관심도 없었다.
그 다음에 <독립신문>에 실린 황장엽의 기사가 문제였다.
황장엽은 회고록에서 한국보수세력의 가장 큰 결함으로 사상적 결함을 들고 있다고 기사는 쓰고 있다
그는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 대해
다양성을 일반적으로 강요할 뿐 ,그것이 통일되어 형성되는 집단의 이익이 무엇인가. 집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걸어야 되는가 하는 민주주의 사상의 집단주의적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또 한국 보수세력이 진화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보수세력이 소련붕괴를 영원한 승리로 착각하고 자만에 빠져 있으며 , 이는 독약과 같다 고 평가했다.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는 있지만 또 다른 어느 글에서는
이곳 남한에 와서는 천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들이 풍기는 냄새 때문이다. 아마 젖비린내인 것 같다 ”
뿐만 아니라 한국보수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일갈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것’이 기본이듯 북한체재 유지의 근간이 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대해 전혀 무지한 한국 보수세력에 대해 혹평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 보수는 修己治人(; 자신을 갈고 닦아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 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결론은 그가 내게 전화해서 말한것처럼 인간이 보다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결국 무지한 한국의 보수들은 황장엽 자신의 사상체계를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보수세력 전체를 모욕하는 용납할 수 없는 궤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황장엽이 스스로 완성하였다고 자만하는 그의 철학과 사상체계는 유치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첫 번의 대화에서 더 이상 게속해서 들을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가 이미 우리가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버린 <마르크시즘>에서 나름대로 수정 보완한 사상이 주체사상, 지금 그가 내세우는 인간중심철학의 민주주의 이념이다.
민주주의란 말은 공산국가에서도 사용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경제하의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르다.
그가 민주주의라든가 인간중심이라는 용어의 선택을 고심해서 선별 했다는 흔적을 나는 느낀다.
인간중심철학의 그 궁극에 가서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은 위에서도 언급한것처럼 그는 언제나 개인보다 그 상위에 집단을 둔다.
그 결론에 도달할때까지 그는 인간중심이라는 타이틀에 충실하려는 강의를 해 나갈것이다.
위에서 내가 본 황장엽은 방대한 독서량과 비상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 곳의 학자들은 우선 그의 그런 방대한 독서에 의한 암기력의 재 설파에 일단 눈이 둥그레지고 입을 벌리는 것 같다.
대부분의 박사들이란 그 자신의 전공분야 이외의 독서량은 실은 거의 어이없는 수준이므로 일단 황장엽의 독서량과 다양한 지식에 주눅이 들고 만다는걸 나는 첫 번에 간파했다.
그는 기초적인 <다윈>의 <진화론>에서부터 복잡한 수학과 물리학의 복잡한 공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달통한 언변으로 일단 한국의 박사들을 눌러 놓는다. 질문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권위로 황장엽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거의 혼자 군림하는 오만의 철학자였었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고대철학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의 거의 모든 철학자와 사상가를 사정없이 무가치한 쓰레기 정도로 매도해 나간다.
그가 그나마도 가치 있다고, 아니 위대하다고 인정하고 언급하는 철학? 혹은 사상 , 이념가가 유일하게 <마르크시스> 한 사람이다.
그는 철저히 보고 계산되고 증명해 낼 수 있는 물질만을 인정하는 지독한 유물사관에서 단 한뼘도 움직이지 않는 고집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음악도 미술에도 거의 문외한 이었다. 추상화는 정신병자의 낙서 정도로 간단하게 치부해 버렸다.
그는 인간을 개조하고 발전시켜가면 언젠가는 육백만불의 사나이 이상의 진화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인간개조론의 기조이다.
그렇게 발전 된 상태가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는 지론 이었다.
그에게는 관념이나 영혼 , 神의 존재란 한번의 코웃음에 불과한 냉소꺼리에 지나지 않는다.
모스크바대학 도서관에서 6개월간을 들고 팠다는 <헤겔>은 그에게서
무식하고 쓰잘데없는 양아치정도로 취급 당한다.
<헤겔>의 절대정신이란 그에게는 잠꼬대에 불과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더 우위에 두고 그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더욱 가치있게 보호하고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질서를 위해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필요한 집단의 존재가 아니라 ,
황장엽의 집단은 집단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력이상의 가치와 힘으로 개인을 지배하고, 그 집단의 개조와 무한한 발전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은 희생 될 수도 있는 , 개인의 자유를 집단의 혜택을 받는 존재, 상위의 집단 그 하위(下位)에 개인을 둔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그의 사상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집단의 개조와 발전으로 그 집단의 발전에 개인을 희생시키므로해서 개인은 그 집단에 속하는 지위와 행복을 누릴수 있다는 것이다.소수의 관리자가 독재로 흐르는 공산주의식 오류를 그는 간과해버린다.
집단의 무한한 개조와 발전으로 인해 유한한 개인 삶의 영원성도 그 집단의 영속성에서 해결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황장엽은 어느날 나에게 이런 의문을 탄식처럼 말했다.
보이지 않는 신(神)을 그렇게 어리석게 믿고 있는 종교적 부흥이 그 특성이 그 시스템이 부럽다는 것이다.
그 말은 자신의 인간중심철학은 보이지도 않고 누구도 확연히 드러나게 보여 주지도 못하는 그 거짓존재인 신(神)보다도 훨씬 더 과학적이고 증명할 수 있는 진화론적 경험과 물리학적 수학적 계산까지 나오는 실체라 할 수 있는데, 그 좋은 사상체계를 헛된 종교적 마취에 취해있는 이 곳의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신으로 대체 할 수 없을까? 라는 마음의 토로였다.
신(神)의 대체(代替)로 그는 자신의 인간중심철학을 사람들의 생각, 정신 속에 넣고 싶어 했다. 그래야 인류가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이 황장엽의 꿈이었다.
국내의 학자들이 인간중심철학의 민주주의 이념연구회라는걸 창립했을때 나는 우연히 그들 중 한사람이라 할 수 있는 황장엽에게 강의를 듣는 철학도 전공한 어느 정치학박사에게 지나가는 말로 일침을 가했었다.
저사람들 왜저러는가? 정말 이 곳에는 황장엽만한 학자가 없어서 박사들이 자존심도 없이 그의 제자가 되지 못해 저러는가 ? 라고 .
물론 몇 명에 불과 했지만 .
그 중 몇 명은 지나친 관료주의에 물들어서 일까? 황장엽의 북한에서의 지위를 이곳에서도 인정하는듯한 태도로 굽신거리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그 정치학박사가 나를 황장엽강의를 주기적으로 대여섯명이 듣는 그 강의에 데려갔다 . 이유는 들어보고 비판하라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었다. 처음 권유를 듣고 시간이 없어 한두달 있다가 그래 한번 부딫혀보자 뭘 말하는가? 그리고 갔었던 첫날이다.
그 첫날에 나는 그에 대한 모든 결론을 다 내렸던 것이다.
나는 박사학위는 없지만 비교적 이날까지 책을 손에서 그리 놓지 않은 기본적인 독서량은 있었고 내 속에서 이리저리 용해 되었을 그 갖가지 철학서적등, 여러분야의 독서의 지식들이 그가 무슨 말을 하든간에 다행히 그때그때 기억에서 되살아나 주었다.
그런부분에서 황장엽은 나를 망명 십년만에 겨우 찾은 보석이라는 엄청난 찬사로 환영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첫시간에 철학과 이념 ,사상적인 면에서 그와는 결코 좁혀지지않을 영원한 평행선을 높은 성벽처럼 느꼈던 것이다.
철저한 유물사관, 그의 주체사상이나 이름을 근사하게 바꾼 인간중심철학의 밑바탕이 된 위대한 마르크시스트(물론 계급투쟁으로만 발전시킨 약간의 오류를 뺀) 이외엔 어떤 철학자도 사상가도 그 누구도 쓰레기처럼 경솔하게 배척하는 지독한 편견.
관념의 세계와 영혼의 문제 , 신(神)의 존재에 대한 괴팍하고도 철저한 부정. 민주주의라고 이름붙인 집단, 전체주의, 즉 공산주의에 대한 결코 놓치기 싫은 짙은 향수(鄕愁)와 미련,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 믿음.( 위의 소련 붕괴를 영원한 승리로 착각한다고, 그것은 독약이라고 이곳 보수세력을 공격 지적한 것에서도 나타나지만)을 나는 그와의 첫 시간에 다 읽어 냈었다.
나는 첫시간부터 <헤겔>로 그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물론 그는 부인할 것이다) 여기서 그 모든 것을 다 기술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순히 공격을 위한 공격이 아니라 그를 일깨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첫시간에 그의 그 꿈이 자유민주주의의 전혀 다른 공기에서 나고 자라고 뼈를 이루고 살을 이루고 정신을 이룬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 도저히 파고 들 겨를이 없는 얼마나 무의미 한것인가를 말해주고 싶었다.
나의 눈에 그가 완성 시켰다고 굳게 믿고 있는 그의 철학은? 사상은 ? 이념은 ? 그리고 끈질긴 꿈은 이미 오래 전에 이 지구상에서 박제로나 겨우 남을 헛되고도 쓰잘데 없고 무가치한 허접에 불과 하다는 것을 나는 그에게 그 첫시간부터 분명히 말해 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황장엽은 자신의 그 철학을 , 그 사상 체계를 이 지구상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할 위대한 철학으로 완성된 성(城)으로 너무도 완벽하고도 견고하게 건축했다는 오만에 빠져 있는 모습을 여과없이 으시대며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눈에 그의 그 철학은 그가 <헤겔>을 쓰레기로 매도,무시 했듯이 전혀 가치없는 허접 으로 보였을 뿐이었는데.
그래서 그의 오만은 그의 높은 연령에 비해 차라리 마음이 아플 정도의 경박함을 드러내 주고 있었고, 나는 조금은 잔인 할지라도 첫 번의 대화에서 그 편견의 오만을 깨뜨려 버리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첫날에 그에게 하필이면 그가 또하나의 쓰레기라고 펄펄 뛰는 정신분열증의 <니체>의 말을 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철학가는 철학의 가치는 전체성에 , 즉 구조에 있다고 믿는다.
후세인들은 그가 사용한 석재에서 가치를 발견하고는 그것으로 바로 그 자리에 번번히, 그리고 더 나은 건축물을 짓는다. 즉, 後世人들은 철학자의 건축물이 파괴될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재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철학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
황장엽이 <마르크시즘>에서 겨우 몇 개의 석재를 골라 그의 주체사상과 인간중심철학의 기본적 뼈대로 재료로 사용 했듯이, 황장엽이 스스로의 완벽한 城이라고 오만해 했던 그의 철학에서 나는 단 한개의 벽돌도 가치있다고 골라내어 손에 집어 들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모든 철학자의 체계는 철학자 자신의 인생을 반영하는 것 ”이다. 그에게는 그의 연륜에 걸맞는 인간의 깊이는 그리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첫시간을 끝으로 그 모임엘 가지 않으려 했으나 황장엽의 권유가 너무 간곡했었고 그래서 서너번 정도는 더 나갔던 것 같다.
두 번째 강의에서부터 그는 자신의 사상체계에 대한 더없는 권위와 오만의 태도에서 한발 물러서는 겸허함을 보였다고 나는 느꼈다.
함께 강의를 듣고 있던 몇사람의 박사들이 감히 상상도 못했던 신기한 변화라고 놀라워 했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 곳에서 같이 그의 강의를 들은 분들이 실은 내가 거론한 이 모든 사실을 모르고 듣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다만 강의를 듣는 스승으로서 또 연로함에 대한 경의감으로 대접하느라 질문도 아예 생략하는 인내와 아량을 보이고 있는셈이다.
그들은 꼭 강의를 듣기 위해서보다는 단지 황장엽씨를 외롭게 망명해 온 연로한 분으로서 인간적으로 위로하고싶고 보호하고 싶은 따뜻한 마음에서 그렇게 모이는 것이라는것도.
나는 이 글에서 일부러 황장엽의 북한에서의 활동을 거론 하지 않았다. 그가 북한의 참혹한 오늘에 결코 자유로운 위치가 아니고 ,김일성 과 김정일의 모든것에 깊이 봉사하고 충성하고 보좌 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며 어디까지나 망명 이전의 일이다.
황장엽씨의 망명은 그의 철학이 어떻게 발전 되었든 , 북한의 고위층의 망명으로 당시 북한에 끼친 타격과 대한민국에 기여한 많은 부분이 분명 있다. 그가 지닌 정보는 이미 시기적으로 너무 낡아 이즈음은 별로 정보로서의 가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이 곳에서의 삶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 존재다.
8000여명에 이르는 외롭고도 힘든 탈북민들에게 그는 분명 정신적 지주이고 살아있는 조상이며 부모이고 구심점이다.
그를 중심으로 젊은 탈북민 지식층들은 그들의 고향인 북한을 자유민주화하기 위한 어떤 위험한 일도 보람으로 알고 열심히 목숨걸고 용감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한국에서의 존재가치는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가 인간중심철학을 , 민주주의 이념을 어떻게 전파하든 나는 연로한 그가 그정도의 활동을 하는 것 정도쯤으로 생각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그의 이런 강의내용을 알고도 묵인해 주는 노정권이 처음에는 위심스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곧 그가 주기적으로 대학생 대표들을 만난다해도 그의 사상의 파급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나는 이해할 정도라 생각했다.그가 지닌 자신의 사상체계에 대한 긍지와 오만은 학자로서의 그를 인정해 준다면 어느정도까지는 봐 줄수 있는 부분이다.
작가로서의 나의 시선은 그를 특수한 경험과 아픔을 지닌 사람으로서 인간적으로 더 깊이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자신의 편견적 사상체계로 이곳의 지식인들과 보수세력 전체를 함부로 평가하면서 규정짓고 모욕하는 경솔한 태도는 그 보수세력의 한사람으로서 나는 쉽게 용납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가 80여 평생의 기나긴 시간을 들여서 인류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 스스로 거대한 城으로 완성했다고 믿고 있는 황장엽의 인간중심철학은 내게 있어서는 맨 첫 번 만남의 아주 짧은 몇마디의 대화에서 그 견고하다고 그가 믿고 있는 城채에서 단 한개의 쓸만한 벽돌 하나를 찾아 낼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의 유치함과 평행선의 무가치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철학자로서의 그의 사상에 대한 타협없는 고지식한 고집을 작가의 입장에서는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한다.
공산주의자로 출발한 황장엽의 삶의 근원에서부터 그의 뼈와 살과 정신과 사상과 인생을 이루는 모든 것을 결코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근원에서부터 시작한 나를 비롯한 이곳의 보수세력의 삶을 이룬 정신과 영혼과 사상 역시 마찬가지다.
황장엽은 아직 이 곳을 , 이곳 사람들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그들이 보고 만나는 몇사람의 한정된 외피적상황을 보고는 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이 속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정신을, 실로 다양하기 짝이없는 삶과 생활들을, 그 인생관을, 그 사색과 사상의 철학적 깊이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의 정통 보수 세력의 한사람으로서 개인에 우선하는 집단적 발전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어도 좋은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적 사상은 결코 인류의 미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철학이나 사상이 아닌, 이미 오래전에 쓰레기통에 넣어 불태워진 낡은 망령에 불과한 것이다. 이미 건조되어 먼지만 쌓인 박제된 꿈일 뿐이다.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인간중심철학이 종교를 대신할 수는없는 곳이 바로 이 땅의 보수세력의 뿌리깊은 정신이고 철학이고 사상이며 영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