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지난 11일 향년 66세로 돌아가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진보신당은 14일 논평에서 감히 선생을 평가한다면, 선생은 건축가들의 건축가셨고, 건축가 이상의 건축가셨다. 선생은 언제나 우리 사회에서 건축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해 고민하셨고 말 뿐이 아니라 구체적인 작업으로 이를 보여주었다.
선생은 건축이 단순히 건물주와 건축가 간의 사적인 대화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그리고 미래 세대와 함께 시공간을 뛰어넘는 공공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무주군에 지어진 농민의 집, 안성면 사무소 등 ‘무주 프로젝트'의 산물들과 2003년 순천 기적의 도서관부터 서귀포, 정읍 등 6순데 지어진 기적의 도서관(어린이 도서관)이다. 능력만으로 보자면 다른 건축가들이 하지 못할 일이 없는 이런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좀 더 생색이 나고 돈벌이가 되는 것보다는 건축의 사회적 의미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정기용 선생이 보여준 실천의 힘이었다.
그가 만들어 놓은 공간은 절대 사람 위에 군림하거나, 자연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안성면사무소로 지어진 건물 1층에 면 주민들을 위한 목욕탕 시설을 설치한 달지, 공원 안에 들어서는 도서관이 기존의 소나무를 해 칠까봐 중정형 건물로 설계한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은 선생의 이런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다. 그런 면에서 정기용 선생은 건축가들의 건축가였다.
이런 건축에서의 성취에 버금가는 정기용 선생의 성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도시 공간에 대한 사랑이다. 선생은 2001년 한 강의에서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가치관'의 표현이라고 본다면 우리들의 지난 30여 년간 신봉해 온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그리고 그런 고민으로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공원화 사업, 그리고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 등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데 관심을 가졌다. 단순히 도시 계획이 아니라 도시의 ‘공간 환경'을 고민하신 것으로, 우리의 역사와 현재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힘이 서울이라는 구체적인 도시 공간 안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변화를 꿈꾸었다.
선생은 건축가의 고민을 품고 그것을 넘어서는 사회 변화의 꿈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그런 꿈이 몽상으로 끝나지 않고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 열정이 언제나 이후 세대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앞선 자에 대한 진정한 추모는 슬픔이 아니라 다짐이라고 했던가.
병마에 맞서 싸우는 상황에서도 기필코 쏟아내신 2010년의 ‘4대강 사업' 관련 기고글에서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 보를 건설하는 현장에 가보자. 그리고 바라보자. 광기의 현장을. 그래도 광기에 맞서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강을.”라고 제안하셨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 자연을 죽이고 사람을 병들게 하는 건축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위한 꿈을 소중히 지켜나가겠다.
부디 현세에 대한 깊은 심려, 이제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쉬시길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