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현 정부는 이념적 틀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뉴스파인더)4.27 재보선 패배 이후 총체적 쇄신론이 제기되고 있는 한나라당을 향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상반된 조언을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일보는 우파정당이란 정체성을 잃고 야권이 주도하는 포퓰리즘 경쟁에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한나라당의 정체성 회복 주문을, 중앙일보는 반대로 한나라당의 ‘과잉이념’을 지적했다. 한편, 이를 비교 보도한 뷰스앤뉴스는 조선일보의 훈수가 중앙일보의 훈수보다 수준이 현저히 낮다며 조선일보를 한껏 낮췄다.
조선일보는 13일 최보식 선임기자의 칼럼 ‘비겁자가 영원히 설 자리는 없다’를 게재했다. 최 선임기자는 칼럼에서 지지율 추락과 민심이반에 당황한 한나라당이 최근 ‘10조원 추가 서민복지’를 꺼내드는 등 맹목적 ‘서민표’ 포퓰리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점에 대해 “그렇게 해도 선거에서 좋은 점수를 못 받았다. 아마 세금을 더 거둬 일일이 나눠주고 퍼부으면 ‘뉴 한나라당’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칼럼은 “대통령은 다른 일에는 너무 부지런하면서, 나라의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세우는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인물들에 대한 감사와 재평가 작업에는 고개를 돌린다”고 지적, 시대적 소임의 한 예로 건국대통령과 역사교과서 문제를 들었다. 그러면서 “눈앞의 토목공사에만 능했지 역사의 토목공사에는 거의 백지상태다. 대통령으로서 사회공동체를 정신적으로 묶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른다”며 “가치의 뿌리가 흔들리는 곳에서는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도, 오래갈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칼럼은 한나라당을 향해서도 “이들은 본능적으로 ‘때가 되면’ 표가 되는 샛길로 쫓아간다. 지금 ‘쇄신’을 외치는 소장파에게서도 그런 일그러진 모습이 어른거린다”며 “간혹 사람은 비겁하게 살 때도 있지만, 비겁자가 영원히 설 자리는 없다”고 일갈했다. 당의 뿌리인 정체성을 부정한 채 급격하게 좌회전 하고 있는 여권의 대중추수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을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우파진영의 공통된 인식과 맥을 같이한 것이다.
중앙 시급한 일은 이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
반면 중앙일보는 같은 날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한나라당의 과잉 이념 반응이란 칼럼을 게재,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와는 정반대의 시각을 보였다. 강 교수는 칼럼에서 집권세력이 민심이반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제식으로 여론을 읽으려 했기 때문”이라며 ‘강남 좌파’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을 그 예로 들었다.
강 교수는 이 용어가 보수 진영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부유층이 몰려 있고 한나라당의 견고한 지지 기반인 서울 강남 지역에 어떻게 좌파가 존재할 수 있느냐라는 ‘예상 밖의’ 현상에 대한 놀라움 혹은 신기함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러한 반응 뒤에는 현 정부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우파와 좌파라고 하는 이념적 틀로 치환해 바라보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면 우파, 반대하면 좌파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어 세상을 이렇게 읽다 보니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나 한나라당에 대한 싫은 소리 모두 좌파 들이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민 다수와 집권 세력 간 인식의 간극은 이렇게 벌어지게 된 것”이라며 “정치적 반대자를 좌파로 낙인찍고 비판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시절 진보 성향의 정부를 공격하고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서는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집권 이후에는 자신의 발목을 묶는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 전 노무현 정부를 이념적 편향이 강하다고 비판하면서 집권 후 실용 정부임을 강조했지만 현 정부 역시 어느 순간 이념적 틀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고 거듭 비판하면서 “이렇다 보니 집권 세력은 국민 생활과 직결된 주요 정책에 대해서도 공허한 이념의 틀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또 현 정부의 대북문제도 거론하면서 “현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으로 인해 비롯된 남북의 군사적 긴장 고조와 그로 인한 안보 불안이 싫거나, 혹은 우리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에 중국이 북한에 경제특구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모습이 불안해 대북 강경정책에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순간 모두 좌파가 되는 것”이라고 비판을 이어갔다.
강 교수는 마지막으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거론하면서 “좌파, 우파라는 정치적 언어가 한나라당과 집권세력이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자주 지적돼온 정치적 소통 부재의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면서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보니 민심을 제대로 읽거나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에 가장 시급한 일은 갇혀 있는 이러한 이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나라당은 이념화가 아니라 탈이념화가 문제
결국 우파언론을 대표하는 두 매체가 서로 상반된 주문을 한나라당에 던진 셈이지만, 액면 그대로 봤을 때 중앙일보의 강원택 교수 칼럼은 반박의 여지가 지나치게 많다.
일단 강남좌파라는 용어는 좌파진영에 속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좌파진영의 위선을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새삼 강남에 좌파가 존재할 수 있느냐고 놀랐다기보다 현 정권의 강력한 지지층마저 돌아선 민심이반의 강도에 놀랐다고 분석하는 것이 타당한 분석에 가깝다.
그럼에도 강원택 교수는 이 같은 한나라당의 반응이 이념 틀에 기인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나라당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이 돌아선 이유 중 큰 부분이 한나라당의 탈이념화 때문이라는 사실을 볼 때 강 교수의 이러한 분석은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크다. 탈이념화에 더해 국민정서와 괴리된 인사정책 및 경제정책에서 오는 각종 난맥상이 겹친 게 한나라당 패착의 주요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니 노무현 정권처럼 이명박 정권도 이념 틀에 갇혔다는 분석도 틀리게 된다. 노 정권이 국보법 폐지와 같은 이념 문제에 매달리다 심각한 민심이반을 경험한 것과 달리 현 정권은 민감한 이념문제에 사로잡혔던 적이 없다. 오히려 정권을 빼앗긴 좌파진영이 광우병 폭동과 같이 출범 초기부터 집요하게 현 정권을 흔든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많은 언론의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가 현 정부 대북정책에 반대한다고 좌파로 몰아세운다는 것도 현재 상황과 상당히 괴리돼있는 주장이다. 역으로 탈이념화 된 정부여당에서는 사실상 햇볕정책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강원택 교수는 결국 여권의 민심이반 현상에 대해 좌파진영에서 주로 제시하는 정략적 해석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주장, 즉 한나라당은 ‘무조건’ 이념과잉이며 여기에서 시급히 벗어나는 것이 민심의 지지를 회복하는 길이라는 충고를 한 셈이다.
뷰스앤뉴스, 역시 중앙 손 들어줘
이 같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조언 차이에 대해 좌파언론 뷰스앤뉴스의 분석기사가 흥미롭다. 뷰스앤뉴스는 기사 <조선>과 <중앙>의 차이, 한나라 쿼바디스?에서 13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또다시 한나라당이 ‘나아갈 길’을 조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방향은 180도 달랐고, 수준 차도 현저했다”며 조선일보 칼럼을 한껏 낮춘 뒤 “한나라당이 과연 <조선>과 <중앙>의 180도 다른 조언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그 선택에 따라 한나라당의 운명도 갈릴 성 싶다”고 덧붙였다. 어느 쪽 조언이 좌파진영 입맛에 맞는 것이었는지는 사뭇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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