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바른 어린이로 지도해야 합니다. 무례한 자에게는 올바른 정신이 깃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의를 바르게 가르치는 일은 정신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제 5,6,7,8,9대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 어록의 일부분이다.
사람의 존귀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가난하고 억울하며 가슴아픈 사연에 휩싸인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함께 아파하고 마음 시려했던, 그러면서도 성실과 예의를 중시하며 자라나는 새싹 미래의 희망 어린이를 유독 좋아했던, 그래서 더 빛나는 우리들의 어머니 상. 그래서일까 육영수 여사에게는 여도 야도 영남도 호남도 없었다.
그냥 당대의 영부인이었고, 세월이 흘러도 모두의 가슴에 아련한 향수로 자리 잡은 영부인인 것이다. 그 영원한 영부인 육영수(1925. 11.29~1974. 8.15). 육영수 여사가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지난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조총련 사주에 의한 재일 조선인 청년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서거하셨으니 꼭 37년만이다.
올해 8.15에도 육 여사가 잠든 국립 서울 현충원 묘역에서는 전국에서 올라온 추모객들이 모여 추모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올해는 이와 곁들여 뜻깊은 사업이 한 영화제작업자에 의해 이뤄질 예정이다. 故 육영수 여사 생애를 조망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가 제작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평소 육 여사를 존경하고 사랑하던 사람들에 의해 원작과 함께 기획되고 특히 80년대 영화판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영화배우 출신들이 머리를 맞대게 된 것이다.

▲ 퍼스트 레이디 육영수' 영화 제작에 나선 이갑성 대표. 육영수 여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그의 해맑은 미소가 무척 상큼하게 다가왔다. 영화에 강한 집착을 보인 이 대표는 배우로 출발해 영화 '아부지'를 제작한 제작자이면서도 주연산업 등 3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건설 CEO 다. ⓒkonas.net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육영수>. 영화 제목이다.
영화는 육 여사 추모행사가 열리는 8월15일 첫 촬영(crankin)에 들어간다. 영화제작에 나선 제작자와 자리를 함께 했다. 그 날은 서울이 104년만의 엄청난 폭우로 최악의 물난리가 일어난 7월27일 이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팔레스호텔 인근에 위치한 '육영수 여사 영화 제작소' 본부(서초동 덕암빌딩)를 찾아 제작자 이갑성 주연산업 대표를 만났다. 해맑은 미소로 반갑게 기자를 맞아준 이 대표와 관계자 몇 분과 자리를 함께 했다. 기자가 찾은 이 날은 마침 영화의 성공을 위해 지인들이 방문해 기도회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사전 예비지식을 갖추기도 했지만 뜻밖에도 제작자 이갑성 대표는 지금은 그 분야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건설사업 분야의 최고 CEO지만 한때는 잘 나가는 여배우와 주연을 맡기도 한 배우출신이다.
지난 1963년 고 최무룡, 장동휘씨와 구봉서, 이대엽씨등이 주연한 6.25를 소재로 한 반공영화로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리바이벌 한 '해병묵시록'과 '하얀노을' 등에 출연한 배우이자 2009년에는 전무송 씨가 주연배우로 출연, 가난했던 시절 우리들의 아버지 상으로 코끝을 찡하게 한 영화 '아부지'(감독: 배해성)를 제작한 제작자이기도 하다.

▲ 인터뷰를 마치고 육영수 여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웃음을 짓고 있는 참석자들. 좌로부터 김동주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대표, 박경자 원작자, 이 대표, 김정철 총감독. ⓒkonas.net
한참 당시 그가 출연했던 시절의 영화 얘기를 나누다 본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육영수 여사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금방 답변이 돌아왔다. 이 대표가 열여섯살 무렵 육 여사가 돌아가셨는데 자신이 생각해도 육 여사에 대한 남다른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미 '아부지영화를 만들었기에 이제는 '어머니'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대상이 바로 육영수 여사'라는 것이다. 일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이어 "영화의 성격"에 대해 오늘의 시대 상황과 연계해서 묻자 정색하며 답변했다. "이 영화에는 어떤 이념성이나 정치적 색깔이 없다. 생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오직 모든 국민이 존경하고 사랑하던 우리들의 어머니 상으로서 그 분의 삶을 조명하고 그를 통해 오늘의 젊은이들이 하나의 가치 지향성을 배울 수 있으며, 먼 훗날 후대에까지 길이 남을 수 있는 작품으로 남기고 싶은 그런 성격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말했다.
원작도 마찬가지지만 동석한 원작자(소설가, 박경자)도 자신이 집필하게 된 육영수 여사 관련 사실을 제작자와 일치된 말로 뒷받침하기도 했다. 총감독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 참여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호남인이 주축인 게 또 하나의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었다. 제작자(전남 신안군 증도면) 원작자(전북 남원) 총감독(전북 전주)이 모두 호람 사람이다.
이 날 자리를 함께한 김동주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대표는 영화와 관련해 육영수 여사님은 정치적, 이념적, 지역적 갈등을 뛰어넘는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계층 간의 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현시대의 유일한 모델"이라고 육 여사에 대한 깊은 마음을 표현했다.
김 대표는 이어 요즘 정치권에서 복지에 관한 논쟁이 분분한데 정치인들은 복지이전에 국민을 생각하는 진정성이 전제되어한다"며 "육영수 여사님이야 말로 사회적 약자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으로 오늘 우리사회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국민을 위해서 고뇌하신 육영수 여사님의 애민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애모의 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날 인터뷰가 진행된 제작본부 창밖으로는 후드득 거리는 요란한 소리로 창문을 두드리는 빗발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해맑은 미소로 기자와 마주한 이갑성 대표는 많은 제작비가 투자될 영화 제작일을 불과 20일여 앞에 놓은 투자가답지 않게 초연한 모습이었다.
이는 어쩌면 영화『퍼스트레이디 육영수』가 한 시대 우리들의 가난하고 힘든 역경 속에서도 모두가 힘을 내고 극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원동력으로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했던 한 여성의 헌신적인 삶을 재조명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그 분의 순수한 사랑을 본받아 지금 우리가 현재적 시각에서 당면하고 있는 갈등과 분열, 반목을 치유했으면 하는 바람과 순수함이 배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 제작본부 건물벽에 부착된 '육영수 여사 영화제작소' 간판을 한참 바라보며 이 영화에 많은 이들(관객)의 마음이 모아져 우리사회의 갈등 극복의 바로미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간절히 담으며 빗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은 이갑성 제작자와의 일문일답 형식의 대담을 정리한 내용임.(konas)

▲ 이갑성 대표가 자신이 배우로 출연했던 영화를 소개한 당시 일간신문 스크랩 기사 내용과 자신이 직접 제작한 영화 아부지 포스터를 보이며 배우시절의 영화얘기를 전하고 있다. ⓒkonas.net
▲ 영화 제목은?
- <퍼스트 레이드(First Lady) 육영수>다.
▲ 지금까지 육영수 관련 영화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선지를 펼쳐놓고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구상하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제작자도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표출하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영화 '아부지'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 주변에서 다음은 '어머니'를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해 그렇지 않아도 오래 전부터 나름대로 구상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원작을 보고 결심하게 되었다. 육영수 여사는 제가 16세쯤 돼서 돌아가신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대로 가슴에 담아둔 추억들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 상으로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떠올린 것이다.
▲ 작품 내용이 우선 궁금한데 이 영화의 원작은 어떻게 된 작품인지 또 집필 배경은 어떤 측면이었는지 작가께서 말해주셨으면?
- 원작은『목련화 우리 어머니』다. 목련꽃을 유난히 좋아하신 육영수 여사를 그대로 칭한 것이다. 육영수 여사는 바로 내 친정어머니와 같은 모습이기도 했지만 유난히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육 여사님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도 내가 글을 쓰게 된 이후 언제부턴가 '꼭 한번 육영수 여사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채근하기도 했다. 해서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다시피 퍼스트 레이디 육영수 여사는 그 배고픈 시절에도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항상 생각하신 분이다. 나환자촌을 방문해 스스럼없이 한센인들의 손을 잡고 볼을 비비며 함께 아픔을 나누신 분이다.
우리 친정어머니는 6·25전쟁 이후에도 늘 '이 몸이 나라 위해 산다면 이슬 같이 살겠노라'는 군가를 자주 부르면서 나라를 위한 생각을 많이 하셨다. 친정어머니의 그 모습은 육영수 여사의 생각과도 일치했다고 본다. 애국의 일념으로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고 아낀 여사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이 훌륭한 어머니에 대한 문화적 콘텐츠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래서 세계적인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끌어나갔으면 한다. 이 영화를 통해 오늘의 우리 현대 여성들이 참는 법, 인내하는 면을 배워서 어떤 고통도 견디어 낼 수 있는 그런 면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대략 떠올리기는 하지만 영화의 주된 내용은?
- 육영수 여사의 삶이 포인트가 될 것이다. 후손들에게 그 분의 진정성과 따뜻한 마음, 사람을 사랑했던 그 가치를 알려주는데 주안을 두고자 한다. 개인적 고뇌를 삼키면서도 전편에서 남을 배려하고 외진 곳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이 다큐멘터리 드라마 형식으로 흐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배려의 삶과 희생정신을 오늘 우리사회에 투영되기를 바라는 측면이다.
영화는 육영수 여사가 나라와 민족을 걱정한 큰어머니로서의 모습이 먼저고, 남편과 자식 걱정은 두 번째다. 그래서 목련을 국민에 비유했다. 그런 마음씨를 볼 때 육 여사는 세계적 어머니를 대표한다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영화 한편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작가 덧붙임)
▲ 영화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어떤가?
-스패프는 다 구성 되어 있다. 다만 제일 중요한 인물이 육영수 여사를 연기하는 여배우이기에 심사숙고를 하고 있다. 여기서 밝힐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카리스마와 사생활 면, 도덕적 측면 등을 육 여사 이미지에 맞는 배우로 선정하려고 고심하고 있다.
또 그런 인지도와 더불어 관객들에게도 친근하고 어필할 수 있는 그런 분으로 몇 분을 놓고 컨택하고 있다.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개봉되면 아마 많은 영화 관객들이 '아 그 배우' 하는 분으로 정해지게 될 것이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 내년 선거가 있어서 혹시 다른 어떤 정치적 입장으로 영화를 바라보지는 않을는지?
- 그럴까봐서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어떤 경우에도 영화는 영화적 생각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우리 영화에 참여하는 스패프는 그 분야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정치적 관점이나 어떤 다른 의미를 가미해서 사시(斜視)적 시각으로 우리 영화를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고민도 했다. 내년에 총선이 있고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를 하다 보니 겹치게 된 것이지 전혀 관계없다. 순수한 영화인으로서, 또 제작자의 입장에서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영화는 영화로만 봐야 한다. 누가 봐도 '육영수 여사의 삶'을 표현하는데 주안을 두고자 한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영화로, 정치적으로 비쳐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어떻게 이 영화를 잘 풀어갈까 하는 게 과제고 숙제다.
어떤 관객의 입장으로서도 영화가 끝나고 '아 참 잘 만든 영화다'하는 말을 듣고자 한다. 그렇게 지금 진행하고 있다.
▲ 호남 분들이 주축이 돼서 만든다고 들었다.
-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친척들이 목포에 살고 있어서 1년에도 자주 목포를 찾는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지인들이 육영수 여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점이다.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힘을 얻고 있다.
육영수 여사를 제가 만들게 된 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3년 전에 '아부지'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어머니 '육영수'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코 여기에 대해 태클을 걸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웃음).
더불어 제작자의 입장에서 하나의 시리즈로서 사회에 교훈이 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고, 그 연장선상에서 제작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 영화 개봉예정은 언제쯤으로 보는지?
- 모든 시나리오와 스태프, 대부분 배우들이 확정됐고 8·15광복절을 기점으로 촬영에 들어가기에 예정대로 순조롭게 된다면 내년 2, 3월이면 개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영화를 위해 사전 (육영수 여사)가족 분들과 접촉을 한 적은 있는지?
- 전혀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다만 영화가 완료돼서 시사회를 갖게 될 때 초청장은 보내야 하지 않나 고려하고 있다.
▲ 중요한 것은 흥행성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볼 것이다. 그런 분들이 많다.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주연배우를 신경 쓰는 것도 최고 배우를 통해야 흥행성도 어느 정도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에 맞는 배우를 찾는 것은, 어떤 영화에 어떤 배우가 출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배우를 보고 오는 관객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영수라는 그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이 영화를 통해 큰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은 없다. 본전을 한다 해도 육영수 여사 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한다. 후세에게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 자부심과 영화를 통해 (육 여사의 순수한 삶을)알린다는 자부심이다. 흥행 수익의 목적보다 필요한 영화를 만들어 그를 사회에 재조명한다는 사명감이라고나 할까.
▲ 한 때 영화배우를 했다. 그리고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해 대 성공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 당시 이름 있는 여배우와 공동으로 주연을 하면서 주인공 작품도 몇 편했다. 그런데 한참 배우 생활하던 무렵인 서른다섯 인가 했을 때 촬영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는데, 어린 아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더라. 그런데 수중에 돈이 없는 것이다. 해서 배우를 계속해야 하나, 그만 두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후 건설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영화에도 간혹 출연하고 하다 1988년 무렵 배우를 그만두고 180°방향을 전환했다. 하지만 꿈이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영화는 제작자가 그 영화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받아서 만드는데 그렇게 되면 이끌려 다니게 돼 (자신이 원하는)본래 의미의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 돈으로 내가 꿈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바램이었다.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고, 보람으로 생각한다.
특히 요즘 영화는 완성되었을 때 어떤 의미의 발견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게 많다. 가벼운 영화, 웃고 싸우고 하는 영화에 더 빠지는 경향이다. 거기에 비해 이 영화는 교육적 측면이나 향수를 자극하고 또 그런 측면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 이 영화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은?
- 영화도 사업이고 하기에 흥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큰 성공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육영수'라고 하는 영화는 내가 아니라도 어느 누군가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40대 이후는 다 알지만 그 이전 세대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본다. 그래서 기록영화 식으로 남기고 싶다.
앞으로도 육영수 여사를 떠나서 그에 걸맞는 분이 나오게 된다면 또 그 분의 영화를 만들게 될 것 아니겠는가.
▲ 무척 기대가 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크랭크 인 현장 취재와 초대해주시면 시사회장도 찾고 싶습니다. 순조로운 영화제작과 뜻대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