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강치구
한국광복군동지회 김영관 회장, 우리 광복군은 끝까지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는데 최선을 다해 앞장설 것"
광복군 창군 71주년을 맞아, 15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 대강당에서는 ‘한국광복군 창군 기념식이 거행됐다.
이날 기념식은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영관)가 주관했으며,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 김혜경(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이재관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부회장, 박유철 광복회 회장, 김영관 (예)제독, 광복회원, 신광여고 학생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15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 대강당에서는 한국광복군 창군 제 17주년 기념식이 거행됐다.ⓒkonas.net
김영관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광복군의 뿌리와 활약상을 언급하면서 “우리 광복군은 지난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리고 내일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는데 최선을 다해 앞장설 것”이라고 역설해 400여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특히, 김 회장은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탄생했지만, 그 뿌리는 구한말의 대한제국 국군에 두고 있다. 이는 해산된 군인이 주축이 된 의병에서 만주독립군으로 이어져 33년간의 항일투쟁을 거쳐 그 역사적인 전통의 맥을 이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오늘의 대한민국 국군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광복군임을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박세환 회장의 축사를 대독한 이재관 부회장도 “광복군의 백절불굴 투혼은 조국광복의 초석이 되었고 국군태동의 모태가 되었으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주춧돌이 됐다”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애국열사들이 존경받는 풍토만이 나라의 안위를 지켜낼 수 있다는 교훈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재관 부회장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북한의 도발을 단호하게 분쇄하고, 반미, 친북, 종북세력을 강력하게 응징해 선배님들의 거룩한 호국충정을 길이길이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훈처 우무석 차장은 한국광복군의 국권회복 의지와 불굴의 투쟁정신은 우리 국군이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무석 차장은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잃게 되면, 대한민국은 발전의 동력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선열들이 피와 땀을 흘려 지켜주신 이 나라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지금은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고 대를 이어 전해질 수 있도록 올바른 나라사랑교육에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가보훈처에서는 지난 6월 나라사랑교육과를 신설했으며, 다양한 나라사랑교육을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교육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복회 박유철 회장은 1940년 9월 17일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복군 창설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이듬해 12월 10일에 있었던 자주적인 대일선전포고’는 우리 역사에서 영원히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라며 광복군의 역사적 의의를 밝혔다.
또한, 박 회장은 “대일항쟁기 내내 일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민족을 잔인무도하게 억압했지만, 이에 맞선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투쟁 또한 오늘날 우리 후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치열했고, 장대했고, 그래서 더욱 위대했다”며 선열들의 독립투쟁 의지를 기렸다.

▲ 만세삼창을 외치는 참석자들. 좌측부터 김영관 예비역 제독, 이재관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부회장, 김혜경 시민사회비서관, 박유철 광복회 회장,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konas.net
이어 행사는 신광여고 학생대표의 광복군 창군 선언문 낭독, 특전사 군악대의 반주로 3·1여성동지회의 독립군가 합창이 진행됐으며, 400여 참석자 전원이 혼연일체로 만세삼창을 외치며 ‘광복군 창군 71주년’을 기념했다.
행사 후에는 한시준(단국대 역사학과) 교수가 ‘독립운동의 전략과 한국광복군’을 주제로 광복군의 역사적 위상을 살펴보는 학술강연회를 가졌다.
한편,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중국 충칭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을 거행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대일항전을 전개한다는 목적으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4개 지대로 편성돼, 영국군과 연합해 1944년 3월 임팔 전투를 비롯해 1945년 7월까지 팀플·티팀·비센플 등 미얀마 각지에서 대일작전을 수행했다.
또한,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공동으로 특수공작 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했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일제 항복 후 광복군 정진대를 편성, OSS 미군 18명과 함께 C47비행기로 8월 18일 국내에 진입했으나, 일본군의 저항으로 중국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임시정부와 함께 한인교포 등을 보호해 국내에 송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46년 5월 16일 한국광복군 복원선언으로 해산됐으나, 요원들 대부분이 국방경비대로 참여해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했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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