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리는 권력자의 장식물인가?
(뉴스파인더)도준호 본사대표(전 조선일보 논설위원)김일성에 이어 전례가 없을 정도로 긴 12일장으로 치러진 28일의 김정일 장례식엔 맏상주가 없었다. 효행을 무엇보다 가장 큰 덕목으로 치는 북한에서 아버지 장례는 맏아들이 주장이 되어 장례를 치르는 것이 ‘도리’이나 장남 김정남의 얼굴은 장례식이 치러진 금수산기념궁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카오에 살고 있던 그가 김정일 사망 후 행방을 감춘 뒤 베이징에 있다는 등 온갖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후계자 김정은과 같은 배에서 태어난 2남 김정철도 코앞이면 닿을 수 있는 같은 평양에 살고 있는 데도 장례식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집안의 어른인 김평일은 어떤가? 법도 있는 집안이라면 현장에서 형님의 장례가 차질 없이 치러 질수 있도록 대소사를 직접 챙겨야 할 텐데도 그는 자신이 맡고 있는 폴란드 대사직 집무실을 한 발 짝도 떠나지 못했다. 이들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232명의 장의위원 명단에 끼이지 못했다.
이러면서도 북한은 후계자인 3남 김정은의 효행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다. 다른 집안이면 한번이면 족할 아버지 시신 앞에 무려 5번이나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조문을 하는 모습, 슬픔을 이기지 못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모습, 조문객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 등을 북한 선전매체들은 계속해서 내 보내고 있다. 북한주민들에게 김정은이 세상에 얼마나 효자인가를 각인시키기에 바쁜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생전에 봉건국가인 조선조보다 더 효를 강조하고 충을 역설했다. 북한은 하나의 대가정이며 대가정 구성원끼리 화목하고 서로 도와야 하며 무엇보다 ‘충성동이’ ‘효자동이’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김정일은 생전에 최대 업적 중의 하나로 ‘어른들 생일상차려주기’를 내세울 정도로 자신이 효행을 주민들에게 선전했다. 김일성 사망 후 통상 예법에 따르면 만 2년만에 끝나게 되어 있는 ‘3년상’을 만 3년에 걸쳐 아버지 추모기간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북한이 이번엔 여러 형제들 중 유독 김정은의 효행만 강조하고 다른 형제들은 장례식에 참석도 못하도록 한 것은 김정은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김정일 사망 직후부터 김정은의 효행강조와 함께 권력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북한의 매체들은 당 중앙군사위부위원장직밖에 없는 김정은을 ‘위대한 영도자’ ‘혁명위업의 계승자’라 부르며 생전의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김정은을 ‘우리당과 국가 군대의 영명한 영도자’라고 칭해 김정은이 곧 추대형식으로 최고사령관과 총비서직에 오를 것임을 시사했다.
도리란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인륜의 행동규범이고 원칙인데도 형제들을 배제시킨 가운데 장례를 치른 것은 그만큼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취약하다는 반증이다. 왕자들 간의 권력다툼이 심했던 조선조에서도 임금이 승하하면 모든 왕자와 종친들이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김정은은 자신의 형제들도 장례식에 참석시키지 않을 정도로 허약한 것이다.
유교적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교를 높이 떠받들고 있는 북한에서의 ‘도리’와 ‘예의’는 법도가 아니고 권력자의 자의적인 장식물에 불과함이 이번에 증명됐다. 북한에서 ‘도리는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눈 내리는 평양거리를 마지막으로 떠난 김정일은 생전에 수많은 테러를 감행하고 철권통치로 북한 주민을 옭아맸지만 아들들의 전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저승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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