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이 일본인 납치자 문제 재조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식과 시기, 그리고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일본 정부가 취할 조치 등에 합의했다고 미국 소리방송이 보도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교착상태에 있던 북-일 관계가 다소 풀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13일 중국 선양에서 열린 실무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 재조사와 관련한 구체적 방안에 합의했다.
양측은 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재조사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는 한편 올 가을까지 조사를 완료하기로 했다.
일본 측 협상 대표인 사이키 아키다카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이번 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이키 대표는 납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시 조사하기로 합의한 것은 한 걸음 진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북한이 재조사에 착수하면 곧바로 2006년 10월 이후 북한에 취해 온 제재 중 일부를 해제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북한 정부 관리들의 일본 방문과 북한 전세기의 일본 취항 허용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북한 측 협상 대표인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대사는 합의 이행은 일본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납치 재조사 진전 상황을 정기적으로 일본 측에 설명하고 일본 정부 관리들이 북한을 방문해 납치 피해자와 관련된 사람들을 면담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실무회담에서는 일본 민항기 요도호 납치범의 인도와 북한 만경봉호의 일본 항구 입항 허용 문제 등도 거론됐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에 관해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회담에서는 또 일본의 과거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 등 '과거 청산' 문제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관측통들은 이번 북-일 실무협상 결과를 도쿄와 일본 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데 따른 결과로 보고 있다.
지난 해 9월 취임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이전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나 아베 신조 총리와는 달리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해왔지만 아직까지 북-일 관계에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납치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함에 따라 일본 정부는 내심 기대를 걸고 있다.
북한도 일본과의 협상에서 일정한 합의를 도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미국은 "핵 검증체제가 마련되지 않으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북한으로서는 일본의 대북 경제제재를 일부라도 해제하는 것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고, 이런 판단이 납치자 문제 재조사 방식 등에 합의하게 된 배경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납치 문제를 둘러싼 북-일 관계 전망이 아주 밝은 것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북-일 양국이 납치 문제 재조사 방법과 일정 등에 합의했지만 이런 약속이 얼마나 이행될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북한이 '권한이 부여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신속히 조사를 실시해야 하지만 조사위원회의 면면에 따라서는 일본 측이 반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중이 실린 인사들을 기대하고 있지만, 북한 측이 어떤 인사들을 기용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 가을까지 조사를 종료한다는 부분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목입니다. 북한의 재조사를 일본 측이 확인하는 방식과 관련해서도 양측은 합의문에서 '북한이 진척 정도를 수시로 통보하고 일본 측의 관계자 면담, 조사 결과 직접 확인에 협력한다'라고 다소 모호하게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일본 측은 북한의 재조사 시작과 동시에 인적 왕래와 전세 항공편 입국 규제를 해제한다면서도, 구체적인 시기는 양측 간 협의를 통해 조정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대북 제재 해제 시기가 일본 국내정치 상황과 연계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여부와 일본의 정치 상황 변화 등이 앞으로 북-일 간 합의 이행 여부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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