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26일, tbs eFM 시사 프로그램 This Morning과 단독 전화 인터뷰
한국전쟁에 관한 견해를 바꾸었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 신문 기자가 극히 일부 내용만을 발췌한 것이며, 언어 차이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 있다.
남침 유도설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발발 이전 5년간의 사건들을 다각적으로 해석해야한다고 한 것. 유능한 사학자라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 고위 관료 및 학자들이 접하지 못한 기밀정보에 근거, 미국은 한국 전쟁동안 범죄적인 행위 많이 저질렀고 막대한 책임 있다.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이자 한국 역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는 26일, tbs eFM 101.3의 시사 프로그램 This Morning』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본인의 남침 유도설 부인에 관한 서울신문 기사는 왜곡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측에서 정전협정에 관한 인터뷰라고 하여 응하였지만, 기사는 전쟁 발발의 기원에 관한 질문에 관한 답변만을 발췌하였고 언어 차이로 인한 오역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을 수정주의 학자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유능한 사학자라면 역사를 수정해가야 할 의무가 있다’며 ‘수정주의 학파’라는 명칭 자체가 의미 없다고 했다.
커밍스는 본인은 1940년대 후반의 미군정 기록들을 열람했으며, 이는 한국의 고위급 관료들도 볼 수 없는 자료로서 한국인들이 알지 못하는 한국전쟁에 관한 내용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 전쟁동안 미국이 한국에서 한 일들은 매우 끔찍하고 중대한 전쟁범죄라고 하며, 한국 전쟁의 발발은 미국에게 막대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연세대학교 박명림 교수가 지적한 바 있는 언어 장벽으로 인한 오역의 여지에 관해 묻자, 차이가 완연한 두 언어 간의 완벽한 번역의 어려움에 관해 설명하며, 서울신문 기자도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말했다.
tbs eFM 디스모닝 브루스 커밍스 인터뷰 전문(한글 번역본)
tbs eFM 101.3 This Morning』 브루스 커밍스 인터뷰 전문(한글 번역본)
.Bruce Cumings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
Alex Jensen (이하 젠슨): 최근 몇몇 국내 매체가 박사님(브루스 커밍스)이 6.25 한국 전쟁 발발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극적으로 바꾸었다(자기 수정)’고 보도 했다.
Bruce Cumings (이하 커밍스) 나는 서울 신문과 한국 전쟁 정전협정에 대한 인터뷰를 하기로 동의했고, 그쪽 기자와 만났다. 그런데 그 기자는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한국 전쟁은 누가 시작했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해 물어보며, “남한이 한국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이 저의 견해라고 착각하여 이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나는 그 기자에게 그것은 나의 견해가 아니며 나의 연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새로이 드러난 소련 문서 같은 것들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그는 특히 6.25 전쟁에 대한 내 견해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6월 25일 당일에 일어난 사건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 이전, 특히 1945년에서 1950년 사이 5년간 일어난 사건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또, 6.25 전쟁의 발생 원인에 대한 책임은 북한, 남한, 미국, 소련, 그리고 중국 모두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자는 두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인터뷰 중에서 극히 일부 내용만 발췌했다. 나중에 기자가 보내준 발췌 본을 보았을 때, 이는 원래부터 정치적으로 의도된 인터뷰였으며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본인이 원하는 내용만을 언급할 것이었다는 깨달았죠. 돌이켜보면 그 인터뷰를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젠슨 박사님의 6.25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수정주의 역사학적 관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커밍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미국 사학자들도 특히,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수정주의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항상 수정주의가 1960년대에 윌리엄 애플맨 윌리엄스(William Appleman Williams), 로이드 가드너(Lloyd Gardner), 그리고 월터 라피버(Walter LeFeber)를 비롯한 역사학자들이 월남 전쟁에 반대하며 미국의 외교 관계를 재해석했던 소동으로부터 시작된,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명칭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때 이 학자들은 수정주의 학파로 간주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좋은 사학자라고 여겨진 것이죠. 나는 유능한 사학자라면 누구든지 이미 알려진 역사적인 사건들을 수정해 나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책을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모두 수정주의자로 볼 수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별 의미 없는 정치적인 타이틀에 불과합니다. 나는 학자로서는 드물게 1940년대 후반의 미군정 기록과 한국 정부의 고위 관료들도 읽을 수 없었던 수많은 일급비밀 자료를 비공식적이자 최초로 열람했던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한국의 일반 시민들은 물론 한국 고위 관료도 이런 자료를 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더구나 나처럼 기록 보관실에서 10년씩이나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전쟁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 전쟁의 큰 그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다면,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 1949년 여름의 전투를 누가 시작했는지에 대해 논한다면, 당시 38선 주변의 대부분의 전투는 남측이 시작했고 미군 사령관이었던 로버츠는 이런 취지의 내용을 워싱턴에 알렸습니다. 만약 당시 북한이 남한을 대상으로 강력하게 반응했다면 한국전쟁의 시작은 더욱 모호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측에서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이전의 6개월 동안 38선 주변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에 북한의 남침이 갑작스러운 침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마치 진주만 공습을 받은 미국인들처럼). 단순히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만 묻는 것은 한국 전쟁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벗어납니다.
젠슨: 누가 시작했는지를 떠나서, 한국 전쟁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커밍스: 미국이 막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 머클로이(John C. McCloy), 딘 러스크(Dean Rusk)와 그리고 나머지 한 명 찰스 본스틸(Charles H. Bonesteel)이 1945년 8월에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 된지 하루 정도 지나자마자 한국 사람은 물론 그 누구와도 아무런 상의 없이 38선을 그었고, 한국인들은 이 분단선을 없애고자 노력했습니다. 문서화되지 않았을 뿐 소련 또한 이 과정에 개입했고 38선 이북에 군대를 배치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그의 장군들은 북을 공격하고 싶어 했고, ‘북벌(Northern expedition)’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문서에 의하면 김일성이 남쪽을 공격(남벌)하는데 소련의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 두 세력 모두 이승만과 김일성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1950년 초반에 (아직도 그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남한을 침공할 수 있는 일종의 허락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미국인들이 외국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메이슨-딕슨 라인을 거부했던 것처럼 그 어느 한국인들도 38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젠슨: 박사님의 특징적인 해석과 분석에 대한 반발은 적지 않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학자 알란 밀레트(Alan Millet)는 “미국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안달이 나있다”고 박사님을 평가했는데요, 이러한 비난에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애국심 있는 미국인이라도 박사님 같은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커밍스: 시민으로서의 첫 번째 의무는 나라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비판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미국이 한국에서 한 일들은 매우 끔찍합니다. 한국 전쟁 기간 동안 북한의 주요도시들을 공습으로 거의 쓸어버리다시피 한 일은 중대한 전쟁범죄 중 하나입니다. 사실, 대한민국 육군 장교들과 가까운 사이인 알란 밀레트 같은 사람은 미국보다는 한국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루었던 기밀이 해제된 정보들을 안다면 미국의 정책을 주류의 관점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데, 그는 이런 정보를 다루기를 거부합니다. 예를 들어, 1950년 6월 남한이 최소 4,000명이나 되는 정치범을 학살할 때, 미국이 방관하고 공식적인 전쟁역사서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탓한 것은 그야말로 완전한 기만행위입니다. 하지만 밀레트의 연구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잘한 일과 잘못한 일 모두에 대해 균형적으로 바라보고 아무 것도 숨기지 않으려 해온 것입니다. 이는 좋은 역사가라면 당연히 하는 일이죠.
젠슨: 다음 달이면 정전 60주년인데요, 남북의 갈등은 진행형이기 때문에 박사님과 같은 사학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현재의 남북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한데요, 최근의 상황들을 볼 때 남북 갈등의 종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커밍스: 사실 1998년에서 2008년까지 김대중 및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당시에는 매우 낙관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북한을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화해의 정책을 추구하고 수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동포들을 알아가려는 노력은 아주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5년 동안에는 뒷걸음질해 휴전 60년 중 가장 최악의 상태로 돌아갔죠. 2012년 국방부 장관을 지낸 레온 파네타(Leon Panetta)는 “미국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북한과의 전쟁 재개에 가까운 상태로 지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휴전 협정 60년 후에도 여전히 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정책적 실패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미국이 가지고 있는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가 북한의 심각한 도발이나 침략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는 점에서 휴전협정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측면에서 현재의 상황은 안정적이고 변화의 여지가 적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젠슨: 북한 전문가인 부산 동서대학교의 브라이언 마이어스(Brian Myers) 교수는 “커밍스는 그의 저서 ‘김정일 코드(North Korea: Another Country)’에서 북한을 토마스 무어(Thomas Moore)의 유토피아에 비유하는데 그런 고집스런 왜곡은 순전히 의도적이다” 라고 비판했는데요, 이에 대한 입장은?
커밍스: 나는 그가 의미를 읽을 줄 모른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나는 예전부터 북한이 스스로를 유토피아 혹은 낙원으로 보는 관점에 대해서 글을 써 왔고, 그렇다면 ‘북한의 말이 옳다고 가정하고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에 관해 연구해보자’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 이후 나머지 내용은 토마스 무어의 말대로 유토피아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며 특히 디스토피아인 북한에서 유토피아를 찾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2년 전쯤 한국 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왔는데 모두 웃음을 터트렸었습니다. 단지 마이어스 교수가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뿐입니다. 젠슨: 한편, 연세대학교의 박명림 교수가 “커밍스의 장점은 한글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 각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원문을 봤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반면 오역도 많았다” (서울신문 6월 25일자 “[정전협정 60년] 커밍스 ‘자기 수정’ 엇갈린 반응”)고 지적한 것에 관해서는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커밍스: 박 교수를 개인적으로 아는데, 나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나는 40년 전에 한국어를 배웠는데 해석하는 과정에서 물론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을 하며 깨달은 것은 한국어와 영어처럼 아주 다른 두 언어 간의 번역을 할 때 생기는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내가 쓴 첫 번째 책의 초벌 번역본 앞 몇 페이지를 읽고 구역질이 나 화장실로 달려갈 뻔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원문에 ‘전쟁 이후에 서울의 길거리는 파편으로 가득했다’고 한 것이 번역본에는 ‘쇠와 철이 가득했다’고 되어있었는데 이것은 완전히 무의미한 내용이죠. 이외에도 내가 본래 말하고자 했던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한 내용들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나는 글 쓰는데 은유(metaphor)를 많이 사용하는데 번역본을 보면 의미가 뒤바뀌거나 완전히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해결책은 나 자신이 번역본을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일일이 검토하는 것인데 사실 그건 불가능하죠. 이런 통번역의 어려움에 대해서 알고 있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또한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그 기자가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 했고, 물론 나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이해했지만, 결국 뉘앙스는 사라졌고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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