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아무리 미사여구로 채워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하더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오일환(보훈교육연구원장)오는 7월 27일은 1953년 이날 유엔군 총사령관 클라크 대장(Mark W. Clark)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및 중공군 사령원 펑더화이를 다른 일방으로 하여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대한민국 군총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은 한반도
전역의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입각한 통일을 염원하여 휴전을 거부하며 정전협정 체결에 참가하지 않았다.
북한은 한국이 정전협정에 가담하지 않았다며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로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행태는 가당찮은 일이다. 적대행위의 일시적 중지를 목적으로 하는 정전협정과는 달리, 평화협정은 전쟁의 종료를 목적으로 하는 교전당사국 간의 정치적 조약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의 평화협정이란 6.25전쟁을 종식하기 위하여 한국, 미국, 북한, 중국 등 교전당사국들이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것을 뜻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정전협정 당시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었고, 클라크 대장은 이 대통령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위임받은 수임인으로서 한국을 대신하는 지위도 겸하여 정전협정에 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교전국이자 정전협정 당사국으로서 평화협정 체결에 마땅히 참여할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북한이 미국과 양자 간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의도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출하고 북한식 흡수통일을 도모하는 데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북한은 1974년부터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파기 등을 겨냥한 평화협정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특히 정전협정 60주년인 올해는 그 강도가 훨씬 거세다.
북한은 1월 1일 신년사에서는 특별히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보름가량 지난 1월 14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며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의 해체를 촉구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비망록(‘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는 것은 조선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필수적 요구’)을 통해 “올해 한반도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됐지만 불안정한 정전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유엔군사령부는 지체 없이 해체되어야 한다.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데 대한 우리 공화국 정부의 일관한 입장과 노력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정전상태를 지속시키고 있는 배후에는 유엔군사령부라는 냉전의 유령이 있다”고 주장했다.
주지하다시피, 유엔사는 1950년 전시 상황에서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 설치된 연합군 군사지휘기구로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는 이 협정을 관리하면서 전쟁 재발 방지에 기여해 왔다.
그 중요성을 잘 아는 한미 양국은 지난해 10월 24일 한미 국방장관 간에 이루어진 제44차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정전협정과 유엔사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또 지난 3월 5일에는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제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대북제재 움직임과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반발하며 “이번 전쟁연습이 본격적인 단계로 넘어가는 3월 11일 그 시각부터 형식적으로 유지해오던 조선정전협정의 효력을 완전히 전면 백지화해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사흘 후인 3월 7일에는 노동신문 정론을 통해 “조선정전협정이 백지화된 후 세계적인 열핵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이상한 일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조선반도의 정전체계유지책동은 반공화국전쟁 기도의 산물’ 제하의 5월 29일자 노동신문 기사에서도 확인이 됐다.
“조선반도에 일찍이 공고한 평화체제가 수립 되였더라면 비핵화 문제도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며 정전체계의 평화체제로의 대체를 촉구하였다. 이처럼 북한이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를 표명한 것은 제3차 핵실험 이후 핵 보유를 당연시하면서 평화협정 체결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됐다.
6월 16일에는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담화를 통해 북·미 당국사이에 고위급 회담을 갖자며, “군사적 긴장 상태의 완화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 없는 세계 건설 문제 등을 포함해 쌍방이 원하는 여러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급기야 6월 21일에는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는 유엔사 해체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를 요구하면서 미국의 위협이 지속되는 한 핵 억제력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북한은 지난 60년 동안 끊임없는 도발로 정전협정을 무력화하고자 했다. 정전협정 위반 감시를 위해 스위스,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4개국으로 구성된 중립국감독위원회는, 한국이 1989년에 체코슬로바키아와 1990년에 폴란드와 각각 수교하자, 북한은 이를 계기로 동 위원회의 무용론을 제기하였으며, 1993년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것을 구실로 체코대표를 철수시킨 데 이어 1994년 4월에는 폴란드 대표마저 철수시켰다.
북한은 군사정전위원회도 1991년 3월에 한국군 장성이 유엔사 측 수석대표로 임명된 것을 빌미로 그 이후 위원회 개최를 거부했으며, 1994년 4월에는 아예 철수해버림으로써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이 같은 북한의 일탈행위는 정전체제를 무력화하기 위한 책동이었다.
북한의 대미 평화협정 체결 요구는 한반도에서 휴전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미동맹이 폐기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하여 한국을 무력으로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위장평화전술의 하나일 뿐이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이 저지른 정전협정 위반 사례가 무려 43만여 건에 이른다는 사실이 잘 입증해주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에 대비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정전협정이 감당해온 언쟁 억제의 순기능적 측면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자칫 북한의 선전선동과 통일전선전술에 말려 섣불리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수용하게 될 경우 북한의 계략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명시적으로 개혁․개방에 동참하고 한반도 안정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다자안보체제가 구축될 때까지는 정전협정의 틀 속에서 한미동맹 군사력을 통해 북한의 대남도발을 확실하게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 저절로 이루지지 않는다.
1973년 1월에 자유베트남, 미국, 북베트남, 베트콩이 맺었던 파리평화협정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는 아무리 미사여구로 채워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하더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남북이 정전협정을 상호 준수하는 가운데 서로 신뢰를 쌓아가며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등 실질적인 평화를 추구해 나가는 노력이 우선이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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