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批判) 은 명사로 옳고 그름을 가려 평가하고 판정 한다는 뜻과 철학적으로는 인간의 지식과 사상, 행위 따위에 대한 기원, 타당성, 한계 등을 명백히해 평가 한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남윤모 칼럼니스트]맹목적이라는 생각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비난 (非難) 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거나 꼬집어 나쁘게 말한다는 뜻으로 비판 보다는 비난이 더 나쁜 뜻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의정활동에서 의원들은 소속정당에 따라 타당 의원들을 동료라기보다 필요에 따라 협잡을 하고 상대를 이용할 모략의 도구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이런 정치풍토가 서울 여의도에서 시작돼 지방자치제로 내려오면 정도가 더 심해져 시정잡배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다.
선거의 당락에 따라 같은 핏줄인 집안끼리도 정당이 다르면 얼마든지 적이 되는 현실이 우리 지방자치의 정치력 수준이며 한마디로 동네 정치를 조금 미화 시킨 것이 거창하게 지방의회라고 불리고 있다.
여기에 지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관변화 된 시민단체까지 가세하면 정치적인 지형도에 따라 비판은 실종되고 비난과 협잡의 강도가 더 거세져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언어적 폭력 행위가 도처에서 빈번하게 벌어진다.
초등학교 수준의 비난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고 시정잡배 수준의 육두문자가 지방의회에 횡횡해 이곳이 지방 주민들의 자치를 담당하는 곳인지 시장 통인지 조폭들 전쟁터 인지 분간을 못할 때가 많다.
의회 의정활동이 가장 비교육적인 곳이라는 교육자들의 뼈있는 지적도 우리나라 정치에서 곧잘 터져 나오는 비난과 협잡 행태와 무난하지 않다.
국회의 행태를 빙자한 지방의회에는 애당초 상대방에 대한 비판은 없고 비난이 난무하지만 그 비난도 상대당에 대한 저주 수준에 가까워 이를 듣고 접하는 주민들이 간혹 비뚤어진 지방의회 의정에 절망을 느끼고 공황증세를 보이며 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하는 곳이 지방의회로 폭 넓게는 국회가 시발점이다.
한때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 정치성 비난 폭로 프로그램 '나 꼼수'라는 팝캐스트가 있었다.
이 정치성 비난 방송이 처음 시작 됐을 때 젊은 층에서는 순간의 시원함으로 열광을 했지만 학자들은 교육적인 부정적인 영향에 한숨과 탄식을 하며 젊은 층의 인성이 무너지는 것을 가슴 아파 했다.
일부 소수의 매스미디어 담당 관계자는 나꼼수가 정치적인 카타르시스를 해소시키는 한때의 시원함을 줄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라며 생명력이 길지 않을 것을 예측했다.
욕을 하면 순간은 시원하지만 욕의 특성상 그 저급함에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것이 불변의 원리다.
간혹 정치권의 폭로를 담당하는 저격수 의원들이 그 당시 인기는 있겠지만 생명력이 길지 않은 것을 현대사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저격수 의원들은 한마디로 유권자들의 순간 시원함을 선사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독약을 무상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라 칭해도 무리가 없다.
그만큼 대안 없는 비난이 생명력이 없는 것에는 현대 정치를 통해 입증 됐다고 봐야 한다. 저급한 비난은 저급함의 특성으로 종국에는 본인이 망하게 돼 있다.
나꼼수 역시 젊은이들에게 저급한 언어를 사용해 그들에게 나눠 줘서는 안 될 독을 조금씩 풀었다고 비유하는 학자들도 있다. 집안에서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욕으로 비난 한다고 그 욕이 시원 할 수는 있지만 결국은 그 욕을 시원하게 즐긴 본인들에게 부메랑처럼 날아와 상처가 날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비난을 하는 자는 그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비난보다는 상대방을 고려한 비판문화를 확산 시켜야 한다.
요즘 국정원 시위가 확산 일로에 있다. 순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저급한 비난을 독약처럼 남발하는 시위꾼들에게 정중히 경고 하고 싶다.
욕은 욕으로 망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인식해 욕설이 가미된 대책 없는 비난은 삼가 해 주는 것이 분별력이 완벽하지 못한 젊은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길라잡이 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시위 현장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저급한 욕설 비난은 교육을 생각해 가급적 삼가 해 주는 것도 청소년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또 다른 국가적 차원의 배려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