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의식한 나머지 인권문제와 관련 할 말도 하지 못해서는 아니 된다. 잔혹한 김정은의 보복이 두려워 움츠러들어서도 아니 된다.
정용석(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북한이 지난 12일 장성택 로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재판의 기본 절차도 없이 즉결 처형하며 최악의 인권 상황을 자랑하듯 공개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 정치권 인권단체들은 북한 스스로 공개한 잔혹상을 지켜봤으면서도 공식적으로 김정은 만행을 비판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 부처 어느 한 곳에서도 김정은의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확증된 인권유린에 대해 공식적으로 쓴 소리를 하지 못하였다. 독(毒)이 오른 독재자 김정은의 보복이 두려워서였는지 모르겠다. 또는 장성택 처형을 통해 입증된 북한의 인권유린이 북한 내정 문제라며 치지도외(置之度外)해 버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북한 인권은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통일부는 장성택 즉결 처형이 야만적인 인권유린 작태라고 꾸짖었어야 했다. 북한이 장성택을 지하 범죄 집단의 납치범 처형하듯 하면서 만 천하에 공개한 현장은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로 이슈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경고적인 논평 하나 내보내지 못하였다. 여당은 물론 야당도 공식적으로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몇몇 인사들이 개인적으로나 성토할 따름이었다. 걸핏하면 국민의 인권유린을 문제 삼고 나서던 인권 단체들도 김정은의 반인권적 처형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비판하고 나서지 않았다.
우리 정부와는 달리 미국 정부는 단호하게 그리고 정면으로 김정은 권력을 비판하였다.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잔학 행위하는 것”이라며 “북한 측에 도발적 행동을 삼가라고 촉구”한다고 밝혔다.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김정은을 정상적인 대화 파트너로 삼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신도 요시다카(新藤義孝) 총무상도 장성택에 대한 “돌연한 해임과 즉시 처형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잔학 행위”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북한의 혈맹인 중국의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북한 내부의 일”이라며 비판하지 않았다. 맹방의 허물을 덮어주며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잔인무도한 장성택 즉결 처형에 대해 최소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잔학 행위”를 드러낸 광기라며 비판했어야 마땅하다. 동시에 우리 정부는 동족으로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대북 경제협력과 연계시키며 국제인권기관에 제소할 것임을 경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청와대에서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고 북한의 급변사태 및 대남 도발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으로 그쳤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통상적으로 내부가 불안하면 외부에 대한 도발을 통해 내부를 단속하는 사례를 과거에 많이 봤다.”며 교과서 같은 의견 제시로 머물렀다. 김정은 권력의 반인권적 처형을 꾸짖으며 대북 인권문제를 중시하겠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각료가 아니라 언론계나 학계의 시사해설자 같은 모습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되지도 않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추진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아무리 퍼줘도 퍼준 손을 물어뜯는 북한 정권에 한가하게 경제협력 운운할 때도 아니다. 지금은 장성택 즉결 처형을 통해 확인된 북한의 처절한 인권유린 문제를 들고 나설 때이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의식한 나머지 인권문제와 관련 할 말도 하지 못해서는 아니 된다. 잔혹한 김정은의 보복이 두려워 움츠러들어서도 아니 된다. 박근혜 정부의 한 단계 차원 높은 인류 보편적 가치와 뼈대 있는 대북 정책을 주문해 두고자 한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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