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현일 기자의 시사펀치 >
판도라의 상자가 기어코 열리는가.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이 7월 22일자로 40일간의 입법예고기간이 끝났다. 시행까지 법제처 심의와 국무회의 의결 등 몇 차례의 행정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의료 영리화의 대문이 열리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은 자본의 돈벌이 탐욕 앞에 무방비로 내동댕이쳐지게 된다.
시행령 개정안의 요지는 ‘외국인환자 유치 활성화와 의료기관 부대사업 범위의 대폭 확장’이다. 환자편의를 위한 부대사업, 예컨대 식당, 주차장, 매점, 장례식장 등으로 엄격히 제한됐던 비영리법인인 병원의 영리사업 허용범위가 제한 없이 풀리는 것이다. 의료재료 및 의료기기 구매, 건강보조식품 및 기능성화장품 판매, 심지어는 호텔사업과 온천사업 등 온갖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까지 확장할 수 있게 허용되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범위를 넓힌 것일 뿐 결코 의료 영리화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는 아니라고 우기는 격이다.
지난해 12월 13일 정부가 ‘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의료 영리화 정책 추진이 포함돼 있다.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되어 있는 의료법인이 영리자회사를 설립하여 영리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나아가 병원 인수합병, 영리법인약국, 원격의료 활성화, 의료광고 규제 완화, 외국인환자 병상비율규제 완화, 신의료기기 와 신약의 허가승인절차 간소화 등 전방위적의료 영리화 정책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는 의료법인 영리자회사의 이윤추구를 무한대로 넓힌 것이 핵심이다. 삼성 등 재벌들에게 영리 목적의 자본투자의 길을 터준 것이고, 투자 이윤을 뽑고 그 수익을 의료기관 외부로 빼돌릴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영리병원 허용이고, 의료 영리화이다.
사실 의료 영리화는 이명박 정권 때부터 여러 차례 시도를 하였으나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하였던 정책이다. 박 정권의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국회 심의가 필요 없는 꼼수를 부렸을 뿐, 사실상의 영리병원 허용과 다름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유정복 인천시장이 당선 직후 송도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 추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을 통해 외자를 유치하고 온천, 관광숙박, 전시산업 등 부대사업을 통해 복합의료 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으로 노골적인 의료 영리화 추진이다.
영리 자회사는 의료법인 경영에 직접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 영리화가 아니라는 당국의 변명도 궁색하기 그지없다. 병원이 영리추구에 종속되고, 인수합병으로 대형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병원 경영 역시 돈벌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자명하다. 당연히 모든 부담은 의료소비자인 국민이 짊어져야 한다. 과잉진료와 의료비 상승, 1차 의료의 붕괴는 물론이고 부담이 증가하는 만큼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약화되고 국민건강보험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로 잠시 주춤하나 했더니 기어코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과 관련된 규제, 즉 의료 영리화의 빗장을 풀어버린 것이다.
의료 영리화는 국민적 관심이 뜨겁고 매우 예민한 사안이다. 반대여론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데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의료민영화를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반대서명’이 160만명을 넘었고, 시행규칙 입법 예고 마감일인 22일 하루에만 65만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단기간에 이처럼 서명인원이 폭증한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의료 민영화, 영리화의 진실>이란 동영상은 조회 수가 50만에 달한다. 민주노총 보건의료산업노조는 22일 총파업을 벌였고, 민주노총은 ‘생명과 안전’을 내세워 동맹파업까지 단행했다.
정부의 요식적인 행정절차만 지켜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국회 심의 절차도 필요 없으니 국회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가족들과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듯이 의료 영리화 저지를 위해 국민들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까지 돈벌이 수단으로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