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현일 기자의 시사펀치 >
"새정치민주연합 11층에 내렸더니 온통 깜깜하더군요. 출근한 사람이 하나도 없군요. 이렇게 우리를 다 버리는군요."
"어두운 새민련(새정치민주연합) 사무실 밖에 도착해 누웠을 때 세월호 속에 갇힌 아이가 된 느낌이 났다. 계단에서 문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차가운 바닥에서 아들 생각이 너무 나서 울었다."
수사권·기소권이 빠진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한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국민공감혁신위원장)에게 합의안 파기를 촉구하며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새정치연합 중앙당사에 들어갔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남긴 글입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박영선 위원장에게 강한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영선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100일인 7월 24일을 앞두고 세월호 가족들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박2일 대행진을 함께하기도 했고,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 확보를 누차 강조해 왔다. 그랬던 박 위원장이 유가족들과의 아무런 논의도 없이 돌연 새누리당과 합의를 한 것이다.
한 유가족은 "내가 이 손으로 박영선 원내대표 손을 잡고 '파이팅'하라고 해줬다"며 "그런데 어떻게 우리한테 이러냐. 우리를 배신한 거냐"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게 아니라 뒤통수 찍힌 심정"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 9일 '광화문에서 외침!' 문화제 사회를 맡은 고 김동혁 군의 어머니 김성실씨는 "(합의가 나온 뒤) 어제 오늘 많이 힘들었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인데 정치권의 답은 야합 이었다"고 질타했다.
그날 단식 27일째였던 고 김 양의 아버지 김 모씨는 "박영선 의원께서 저희한테 완전 실수했다"며 "유가족에게 의논 한 마디 없었다"고 말했다.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 사이에서도 박영선 위원장을 향한 질타가 나왔다. 가족들과 함께 온 오모(42)씨는 "유가족들과 얘기도 없이 완전히 새누리당에 백기투항했다. 가족을 기만했다"고 비판했다.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박영선 위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권보다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요건이 더 중요하다면서 그것은 당의 '기본 방침'이었다고 밝혔다. 또 "유가족들에게 알리면 협상 상대방에게도 알려지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새정치연합이 그간 '수사권' 운운한 것은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을 상대로 한 '쇼'에 불과했다는 것입니까? 유가족과 국민을 기만하는 정당이 존재할 필요가 있습니까?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가족들과 머리 맞대고 협상전략을 짜도 힘겨울 판에 가족들을 협상전략 숨겨야 할 대상으로 삼은 셈"이라며 "마음에서 가족과 멀어지니 결과도 그리 나올 수밖에"라고 지적했다. 또 "가족들과 추천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마음도 겉돌고 있었다"고 꼬집었다.매우 정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박 위원장이 "부실한 정보와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박영선 의원의 인터뷰는 당당하다. 확신에 차 있다. 그것이 그의 '야합'보다 더 당혹스럽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불통'이라고 야당은 비판해 왔지만, 박영선 위원장이라고 다를 바가 있을까요? 정봉주 전 의원은 "전권을 위임받지도 않고 혼자 알아서 결정한 것은 쉽게 얘기해 독재"라며 "국민들의 이야기,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모르는 정당은 존립의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이 의원총회를 통해 결국 합의안을 사실상 파기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묻고 있다. 야당의 '존재의 이유'를 말입니다. 더불어, 이 질문은 그나마 '변화 가능성'이 있는, 애정이 남아 있는 상대에게 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새정치연합은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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