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현일기자의 시사펀치 >
국회의장의 타협 요청에 대해 여당이 힘으로 버티는 기묘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26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의 타협을 요청하면서 본회의를 30일로 연기하자, 30일까지는 어떤 협상도 있을 수 없다면서 야당의 대화제의를 거부하고 있다. 나아가 이완구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의 조치에 대해 원내대표직 사임을 시사하면서 아예 종적을 감췄다. 새누리당이 원내 다수당이며 현 국회의장을 배출한 정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다.

새누리당은 28일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장 비상대책위원장의 대표 회담 제의까지 일축했다. 원내의 일은 원내대표간 협상에서 다룰 문제라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대표에 당선되기 전까지는 마치 청와대와도 대등한 위치에서 서서 폭이 넓은 정치를 펼칠 것처럼 장담하다니 막상 당선되고 나서는 모든 책임을 이 원내대표에게 미루면서 발을 빼왔다.
그러나 실제 여의도 정치의 교착상이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여야간의 최대 쟁점이자, 지난 4월 16일의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인 세월호 특별법의 원만한 입법을 가로막아 온 쪽은 바로 청와대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이달 초 야당의 내홍을 틈타 여야간의 2차 합의안을 넘어서는 어떤 협상도 있을 수 없다고 구체적 지침까지 내렸다. 이런 조건에서 이완구 원내대표건, 김무성 대표건 어떤 재량권이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오직 대통령 한 사람만이 정치인인 사회를 우리는 독재라고 불러왔다. 독재 국가에서는 대통령을 제외한 어떤 사람도 자신의 정치적 권한을 갖지 못하며, 대통령의 뜻을 글자 그대로 집행하는 데서만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그런 사회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4월의 참사 이후 우리 정치가 아무런 결과물도 내어놓지 못하고, 심지어 대통령이 내세운 국가대개조안조차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박 대통령의 시대 인식 자체가 지금의 사회에 비해 지나치게 낡은 것임을 증명한다.
아마 새누리당은 교착의 책임을 야당에게 돌리고, 국회의장을 압박함으로써 풀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러나 설사 국회의장이 압박에 못 이겨 30일 본회의를 소집한다고 하더라도 이후 정국은 지금보다 더 극한적인 대결에 직면할 것이다. 그 때 가서 다시금 야당에게 책임을 돌리려 한 들 ‘결과적 무능’의 책임은 결국 청와대와 여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다수파가 정쟁에 앞장서고 다수파가 대화의 문을 닫는 이런 정치는 1987년 이후 처음 보는 어이없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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