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청와대 홍보특보는 22일 “서울과 워싱턴 하늘에 인공기가 휘날리고 평양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꽂힐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 정권 실세의 ‘통일’관을 압축해 나타낸 말인데, 사상·체제가 근본적으로 다른 남북 깃발이 어떻게 서로 얽혀 휘날릴 수 있다는 것인지 그 구체적 방안을 되묻고 싶다.
이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체제’와 6·15공동선언式 ‘연합제·연방제’ 통일론이 바로 이것인가 하는 의구심과 강한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6·15실천위원회 남측대표’인 백낙청 교수는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 사이 에서 통일이 되었다고 느낄 때 ‘어 통일이 됐네, 우리 만나 통일을 선포하세’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식 통일”이라고 말했다. 李특보의 생각과 흡사하다.
이해찬 전 총리는 엊그제 “평화체제를 수립한 후 경제공동체를 진전시켜 남북 경제를 상생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에 외화획득, 첨단산업 등을 육성시켜 경제를 자생력 있게 복원시킨 후 남북 경제공동체·경제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 지도부가 개혁·개방 의지가 전혀 없음을 강조한다. 체제의 구조적 특성상 개혁·개방이 불가능하며, 무리한 개혁·개방을 추진하면 체제 붕괴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외부 충격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 역시 이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개혁·개방을 극력 꺼린다는 것이다.
최근 개방 담당 일부 북한 고위 관리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것이 엄연한 북한 현실이다. 북한은 문호 개방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고, 1978년 중국의 등소평이 가졌던 개혁·개방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공산 세습독재를 연명하기 위한 현금과 물자이다. 이를 획득하기 위해 남한에 협박성 벼랑끝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무모한 통일을 시도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 분명 무리가 발생할 것이다.
첫째 ‘경제통합’ 미명 하에 대규모로 추진되는 대북 지원이 붕괴에 처한 김정일 정권을 돕고 북한의 핵 군사력을 증대시켜 남북 긴장을 오히려 고조시킬 것이다. 이렇게 되면 李 특보가 보수층에 대해 ‘전쟁 불사 세력’이라고 한 비난이 자신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둘째 무리한 통일 시도는 자칫 ‘예멘식’ 파탄을 초래할 것이다. 남북 예멘은 1990년 5월 ‘합의통일’을 선포한 후 정부조직과 권한을 1:1로 평등하게 분할하고, 국경을 완전 개방하였다. 그러나 권력 구조에 대한 양측의 갈등 노정과 군사통합의 실패로 내란이 발발, 무력통일로 귀결되었다.
에멘 사태가 주는 교훈은 이상적·낭만적 통일 시도의 위험성과 군대 통합의 지난(至難)함이다. 군대는 명령 조직이며 체제의 최후 보루이므로 양측 모두 양보하기를 꺼려한다, 특히 독자적 명령체계를 갖고 있으므로 완전 분해하여 재조직하기 전에는 통합이 불가능하다. 남북한은 정규군만 2백만에 이른다. 이 거대한 군사 조직을 외면한 인위적·졸속적 통일 시도는 불가능하고 위험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념 없는 통일이 무의미하고 또 추구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통일도 21세기 보편적 이데올로기인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확산 형식을 취해야 한다. 6·15式 연합제·연방제’ 통일은 대한민국 건국이념에 위배될 뿐 아니라 국가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통일은 한미동맹, 국가안보, 경제발전, 국민화합 등을 꾸준히 견지해 나갈 때, 역사의 섭리에 의해 다가올 것이다. 북한은 현재 체제붕괴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피의 3대 세습은 권력이나 재력이나 결코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北붕괴를 기다려 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