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정책처에 이어 입법조사처 외압 논란이 또 불거졌다. 국무총리실은 정부 정책과 상반되는 보고서를 제출한 조사관들의 문책을 요구했다고 하더니, 국회의장실에서는 직접 입법조사처 조사관을 불러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참여연대는 17일 논평에서 이 일을 최초로 밝힌 민주당 김종률 의원에 따르면, 국회의장실에서 조사관을 불러 해명서를 받았고, 이 자리에 동석한 박계동 사무총장은 향후 입법조사처가 정부여당에 불리한 보고서를 내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국회 지원기구에 대한 부당한 정치적 압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자료생산을 통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중립적’ 기관이다. 국회입법조사처법과 국회예산정책처법에 규정되어 있듯이 양 기관의 직무수행에 있어 외부로부터의 독립성은 그 생명이다. 만약 부당한 외압으로 양 기관의 조사 내용이 영향을 받는다면, 조사의 신뢰도를 담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외압 의혹이 반복적으로 불거지는 것 자체가 이미 입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국회 지원기관이 법으로 규정된 절차와 과정을 지켰다면 그 자체로 기관의 활동은 존중되어야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에 대한 외압 의혹은 해당 조사관이 지난 6일 ‘국회와 주요국 의회의 질서유지제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주요국 의회에서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사례가 없다는 내용을 적시한 것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정부여당이 쟁점법안의 직권상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에 비춰보면 보고서의 내용이 정부여당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지난 2일 ‘미디어법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미비하다’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 발표에 대해,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예산처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회의장도 국회의원도 잘 알다시피 두 개의 입법지원 기관은 정부여당의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를 생산하는 기관이 아니다. 의원이나 상임위의 의뢰에 따라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조사하고 보고서를 생산하는 연구 기관이며,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특정 정당에 유리한 당파적인 내용은 이미 기관 내 연구자간의 검토와 내부 규정을 통해 규제되고 있다.
박계동 사무총장이 언급했다고 알려진 것처럼 ‘보고서 내용이 정부여당에 불리할 때 국회의장실을 거쳐야 한다’면, 야당에게 불리한 보고서가 나오면 야당 대표실을 거쳐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각 정당이 필요로 하는 당파적 정보 및 주장근거가 필요하다면 각 정당의 정책기관에 문의할 일이다. 국회 지원기관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체 국회의원 및 위원회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회의 공적 자산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에 대한 외압 논란은 현재 우리 입법부가 처해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연말 소위 입법전쟁이 청와대의 요구에 부응한 한나라당의 쟁점법안 일괄 통과 시도로 발생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보고서의 작성과정이 정당하고, 사실관계에 문제가 없다면 조사자와 보고서 내용에 대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거나 의혹논란을 벌일 이유가 없다. 지난 17대 국회는 국회개혁의 입법조사처 등 지원기구를 확대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방송, 인터넷 의사중계를 설치했다. 하지만 18대 국회는 전문성을 높이고 국민과 함께 하려는 노력보다 권력자의 눈치만 보고, 정파적 이해에 따라 압력을 행사하는 등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 입법지원 기관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입법지원 기관이 객관성과 중립성을 상실해 신뢰를 상실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고, 정부여당에도 결코 이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정치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 거세도 오늘까지 정치는 조금씩 변화·발전해왔다. 18대 국회는 진정 대한민국 국회를 과거로 되돌릴 것인가?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