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한나 김 양의 활동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번 방한은 의미가 남달리 특별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렇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와는 달리 미국에서 한국으로 역 유학을 한 셈이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미국이 한국전 휴전일을 기념일로 제정했다고 해서 모든 미 국민이 참여하고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휴전일 조기게양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일 뿐이다. 미국의 학생들과 대중들은 한국을 잘 모른다. 나는 한국을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한국에 미련을 못 버리는 성격으로 굳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한국을 알리고 인정시키고 한반도 통일과 평화정착에 기여하고 싶다.
- 휴전 기념일 제정에 의미를 부여 한다면?
남북한의 통일을 말하기 전에, 자유를 지키려고 희생했던 이들을 먼저 기억해 줘야한다. 6·25 전쟁이 끝난 후 56년 뒤에 미국에서 늦게나마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인정하는 조치들이 추가로 발표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국내외 보도를 보면 한나 양은 ‘정전 기념일’ 제정법안 통과를 위해 435명의 미 상.하 의원 사무실 모두를 찾아가 서명활동을 한 것으로 보도했다. 누구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나? 그간의 활동상과 에피소드가 있다면 좀 소개해 달라.
사실이 아니다. 나는 전략을 수립해서 전략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435명의 의원들을 무슨 수로 다 찾아다니나. 전화연결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바쁘다”, “누군데 만나려 하는가?”하며 거부했다. 그래서 나는 회원들과 전략을 짰다. 그 전략은 바로 핵심의원(의회 내 영향력 있는)은 직접 찾아 대화하고 협조를 요구했다. 그 밖에 의원들은 보좌관을 직접 만나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협조를 구했다. 그것이 적중했다고 본다.
특히 제가 활동하고 있는 ‘Remember 727’회원은 15명에 불과하지만 의원들의 메일과 팩스를 최대한 활용했다. 심지어 회원들이 하루에 1만여 통의 메일을 보낸 적도 있다.
미국 내 대중들에게도 메일을 활용해 한국을 알게 하고 휴전을 인식시키는데 노력했다.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의원은 6·25 참전용사 출신의 찰스 랭겔(Charles B. Rangel) 연방 하원 세입위원장이다. 미 하원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닌 랭겔 위원장은 ‘Remember 727’의 노력에 감동해서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법안'을 발의했었다고 했다.
법안이 통과되고 7월27일 의회 리셉션에서 랭겔 의원은 너무 기뻐하셨다. 그만큼 우리 활동에 적극 지지해 주신 랭겔 위원장에게 다시금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만나 법안 지지를 요청한 적도 있다.
감격 벅찬 에피소드가 있다면 7월 21일 미 하원에서 법안 통과가 이루어진 날이다. 그날 나는 미 의회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미 하원의장의 만장일치 법안 통과 망치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감격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의회 안에서 쫒겨(추방)났다(이것은 최초로 공개하는 것임-웃음).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미 의회 안에서의 이러한 행위(박수치고 고함치는 것)는 용납되지 않는다.
- Remember 727이라는 단체의 목적과 활동 내용은?
Remember 727’은 2년 전에 제가 만든 ‘한국전쟁화해연합회’의 이름을 1년 전에 바꾼 것이다. 목적은 6·25 전쟁의 의미를 미국인들이 깨닫게 하고 미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 미군이 6·25 전쟁에서 5만명 넘게 전사했는데, 미국인 중에는 아직도 남한과 북한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또 6·25 전쟁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정전(停戰) 상태라는 걸 아는 미국인들도 거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Remember 727’이라는 휴전일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한국전 참전 21개국과 남북한과 일본, 중국, 러시아가 동시에 참여하는 26개국이 한국 통일에 참여해야 진정한 의미의 평화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참전용사들이 흘린 피의 중요성을 어느 나라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다. 얼마 전 6·25 종군 기자였던 데이비드 할버스탐(Halberstam)이 출간한 719페이지 분량의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이 주목받은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예우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삐딱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여섯 살 때 미국에 이민, 캘리포니아주에서 고교를 마치고 서울대에서 학부 과정을 이수하면서 6·25 전쟁의 의미와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 후 서울대 졸업 후 미국에 돌아가 미 평화봉사단 본부, 평화연구소(USIP)에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저는 서울대 유학 후 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06년 1월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교통사고를 당해 아직도 몸이 완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는 Remember 727’ 활동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내년이면 6.25 60주년을 맞는다.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한국전 휴전 기념일 제정 법안 통과를 위해 이런 다짐을 했다. ‘이 일(기념일 제정)이 성사되기 전에는 다른 일은 손도 대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이제는 한국전을 미국인들에게 ’기억(Remembrance)'시키고 평화의 중요성을 ‘인식.인정(Recognition)'하게 하여 이를 통해 ’화해(Reconciliation)'를 도모하는 것이다.
즉 3R단계(Remembrance-Recognition-Reconciliation)를 통해 통일(Reunfication)을 논의해야 한다. 이것은 곧 궁극적으로 세계평화에도 기여하는 것이 되리라 본다. 두고 보라. 반드시 해낼 것이다. 이것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미국인들이 한국을 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지원해 주는 그룹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한국의 재향군인회가 해 주었으면 한다.
- 솔직히 미국의 ‘한국전 정전 기념일’ 제정 소식을 듣고 한국 국민들은 놀랍고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초등학생 30%이상이 6.25를 북침으로 알고 있고 중고교생 50%이상이 6.25가 조선시대 전쟁이나 언제 일어난 전쟁인지를 모르고 있다. 이에 대한 김 양의 생각은? 또 미국 내 한인 2,3세 학생들의 6.25에 대한 인식은?
안타깝다. 과거를 끌어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도 한국전은 기억해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0.1%도 한국을 모르고 6.25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른다. 한국전 참전용사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제가 하고자 하는 ‘Remember 727’ 사업이 중요하다. 앞으로 미국 내 50개 주를 다 돌아다니며 한국전을 알리고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 활동의 포커스는 전쟁세대가 아니라 전후세대다.
- Remember 727’에서 고국의 젊은 대학생들과 6.25와 관련해서 교류할 계획은?
내가 제일 바라고 희망하는 사항이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재향군인회가 나서 달라. 예를 들어 향군에서 주관한 ‘6.25 대학생 국토대장정’을 미리 알았다면 나도 기필코 참여했을 것이다. 이러한 계획에 미국 학생이나 교포학생들을 초청하여 실시한다면 서로의 이익에도 아주 유익할 것이다. 밤낮을 걷고 생활하면서 미국학생은 한국을, 한국 학생은 미국을 알 수 있고 동시에 6.25라는 전쟁의 간접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한국의 미래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장을 마련해주고 예산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저에게는 많은 컨텐츠와 계획,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 내 대기업과도 협조를 바라고 있다. 내년도 국토대장정시 참여만 시켜 준다면 미국 내 학생들을 모아 도전하고 싶다.
-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서 한국전 참전국(21개국) 참전용사들을 대상으로 75년부터 매년 ‘참전용사 재방한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다. 세계 어느 국가도 하지 않는다. 전쟁을 치룬 나라로서 세계에서 유일하다. 내가 하고 있는 ‘Remember 727’활동과도 일치한다. 사전에 알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러나 재향군인회에서 감사서한을 보내주고 초청해 주어 이러한 사업이 있다는 것을 소상히 알았다. 이런 훌륭한 사업들을 미국 대중들이 젊은이들이 모르고 있다. 이번 미국.터키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처음부터 참관하고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볼 것이다. 이것을 위해 나는 귀국까지 연기했다. 참여하여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함을 표할 것이다. 그들의 느낀 점을 듣고 ‘Remember 727’ 사업에 접목할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토록 중요한 행사(Plan)를 잘 알리는 마케팅전략이 필요하다. 이것도 하나의 정책개발이다.
- 실례지만 장래 희망과 결혼 계획은?
Remember 727’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는 연애 생각이 없다. 나의 희망은 계속 이런 민간인 외교활동을 하는 것이다. 박사과정도 곧 밟을 예정이다.
- 다시한번 6.25가 잊혀 진 전쟁이 아니라 미래(통일.평화)를 향한 출발(기억=Remembrance) 점이 되어야 한다는 한나 김의 의지에 동의하고 그간의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에도 기대를 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같이해요’이다. 한국’과 ‘한국전쟁’은 미국사람들에게는 한 文段(문단=a paragraph)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여러 문단 한 편의 책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6.25한국전쟁은 한국만의 전쟁이 아니다. 관련 당사자 26개국이 관련되어 있다. 앞으로 평화협정, 통일로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여기에 세계 평화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여러분, 함께해요.’, ‘코나스도 함께해요’
- 긴 시간 대담에 응해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연락처를 알 수 있나요?
Hannah Kim, e-mail : hkim@Remember727.org
한나 김'과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필자는 앞으로 백악관과 미 의회를 움직이고 미국사회에 한국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대의명분이 뚜렷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둘째, 한국전 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을 국가적 마케팅 전략으로 끌어 올려한다. 셋째, 6.25라는 과거를 알리기에 급급하지 말고 현재와 미래로 나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넷째, 한국전 참전국 젊은 학생과 한국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땀 흘릴 수 있는 정책개발이다. 다섯째, 6.25와 한국을 알리는 장을 마련해주는 대 기업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한나 김의 당찬 프로젝트를 수용, 실천계획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입안자들과 기업들의 참여를 기대해 본다.(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