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제천의례(祭天儀禮)는 삼국시대부터 농업의 풍작을 기원하거나 기우제를 국가적으로 거행하는 데서 시작되었고 제도화된 환구제(圜丘祭)는 10세기 고려 성종(成宗) 때부터다. 조선 세조(世祖) 때 환구제가 폐지되었다가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하고 고종이 천자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봉행하고 광무황제로 즉위하였다.환구단은 1897년 고종의 대한제국 광무황제 등극의식과 환구대제를 봉행하기 위해 남별궁(南別宮) 터에 제천단(祭天壇)을 조성하고 북편에는 1899년 화강암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皇穹宇)를 축조하고 신위판(神位版)을 봉안(奉安)하였으며, 1903년 고종 어극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石鼓)단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종묘제(宗廟祭)는 역대 임금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서 춘하추동의 첫달과 12월 섣달에 대제를 올렸는데 경건한 분위기를 더욱 고양시키기 위한 음악과 무용으로서 종묘제례악이 따른다.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로 시작하여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천조례(薦俎禮), 잔을 올리는 초헌례·아헌례·종헌례에 이어 음복례가 행해지고, 신을 보내 드리는 송신례(送神禮)를 갖춘 후에 축(祝)과 폐(幣)를 망료(望燎) 위에 불사르는 것으로 끝난다. 종묘제례악은 우리 고유의 음율로 왕조의 창업과 기상을 노래하고 있으며 모든 행사의 순서에 맞추어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엄숙한 제사 의례 만큼이나 장엄미가 돋보이는 음악이다.
사직제(社稷祭)는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농작의 풍년을 좌우하는 곡식의 신인 직신(稷神)에게 드리는 제례로, 대사(大祀)에 속하여 사직대제라고 한다.조선 전기에는 1474년(성종 5)에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라 거행하였고, 후기에는 1783년(정조 7)에 작성된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에 따라 유교적 의례로 거행하였다. 대한제국은 1897년 사례소(史禮所)에서 편찬한 대한예전(大韓禮典)에 따라 황제의(皇帝儀)로 거행되었다. 사직제는 매년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 그믐날 밤에 거행되었는데, 길례(吉禮)의 일종이므로 주(奏)·악(樂)·무(舞)와 폐(幣)를 드리고 초헌(初獻)·아헌(亞獻)·종헌(終獻)의 삼헌례(三獻禮)로 진행된다.
선농제(先農祭)는 선농단에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왕이 풍년을 기원하며 경칩이 지난 뒤 첫번째 해일(亥日)을 택하여 왕이 직접 제향을 드리고 적전(籍田)을 가는 친경권농(親耕勸農)의 행사를 하였다. 제향은 10변 10두(十籩拾豆)의 중사(中祀)로 거행하며 친림제향 때의 아헌관은 왕세자, 종헌관은 영의정이 맡았다. 집례(執禮)의 창홀(唱笏)에 따라 악(樂)을 연주하고 육일무(六佾舞)를 추는 동안 영신·전폐·진찬·초헌·아헌·종헌의 예를 차례로 봉행한다. 선잠제(先蠶祭)는 선잠단(先蠶壇)에서 잠신(蠶神) 서릉씨(西陵氏)에게 양잠(養蠶)의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전통 제례의식으로 1400년(정종 2)부터 매년 3월 초사흘에 행해졌고, 1471년(성종 2) 선잠단을 다시 쌓은 뒤 1477년 창덕궁 후원에 채상단(採桑壇)을 신축하고 왕비가 직접 누에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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