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문(彰義門) 고개를 넘어 홍지문 방향으로 내려가면 왼쪽에 석파정(石坡亭)이 있는데 일찍이 호를 석파로 하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기거하며 산수풍경을 즐기던 곳이며 석파정 외에도 안양각 · 망원정 · 관풍루 등의 건물이 있으며 대원군 후에도 그 유족인 이희 · 이준 · 이우 등이 대를 이어 전해온다.
북한산 남록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사천계곡(沙川溪谷) 넓은 바위 위에 자리잡은 6각형의 세검정(洗劍亭)은 정자 아래 맑은 물 소리와 주변 산록의 녹수 홍화 등으로 사계절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며 세검정 뒤에 북한산 연봉이 둘러 있고 앞으로 탕춘대성(蕩春臺城)이 있어 산수풍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곳은 연산군이 사천계곡(沙川溪谷) 물을 이용하여 수각과 탕춘대(蕩春臺) 등을 짓고 놀았으며 숙종 대에 북한산성(北漢山城), 탕춘대성(蕩春臺城)을 쌓고 이 부근을 수도 서울의 북쪽 수어진지로 삼으면서 군인들의 유연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영조 26년(1750) 총융청(總戎廳)을 설치한 후 연융대(鍊戎臺)로 고치게 하였는데 영조가 홍상서에 명하여 글씨를 써서 새기게 하였다는 연융대(鍊戎臺) 각자(刻字)의 큰 바위가 세검정 뒷길 옆에 우뚝 서있고 세검정 위 동령폭포, 조지서(造紙署)터가 있다.
사천(沙川) 물을 따라 내려가면 탕춘대 성벽이 냇물을 가로지르는 곳에 탕춘대성(蕩春臺城) 즉 북한산 서성의 북문에 해당하는 홍지문(弘智門)이 있는데 아치로 된 돌문 누각에는 숙종 친필의 홍지문(弘智門) 현판이 있고 아래에는 5간수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