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 폐막 기자회견에서 미국 등이 요구하고 있는 위안화 절상을 거부하면서, 자유무역제도’를 적극 지지해 눈길을 끌었다. 그의 발언을 통해 중국의 대외(경제)정책 기조의 일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원 총리는 중국의 위안화가 결코 과대 평가절하돼 있지 않다(따라서 절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他국가들의 목소리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원 총리는 그 근거로, 비록 달러 대 위안화 환율이 최근 몇 년간 변화가 없었다 할지라도, 미국과 유럽으로부터의 對中 수출이 중국 이외 국가에 대한 이들 나라들의 수출규모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원 총리는 세계 경제상황에 대해 언급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안고 있는 금융제도의 불안과 위험, 그리고 치솟는 실업률로 인해 세계가 또 다시 침체에 빠지게 되는 ‘더블 딥(double deep)’에 직면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한편 원 총리는 세계 자유무역제도(free trade)를 강하게 지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나는 자유무역제도의 강력한 지지자이다”라고 언급하고, “자유무역은 세계경제의 성장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나라들은 자신들의 수출을 증가시키기 위해 보호주의(protectionism)에 연루되곤 한다”면서,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사례에 충분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달러화정책에 대해 “단지 자신들의 수출을 증가시키기 위해 타국의 화폐가치를 절상하도록 압력을 넣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나는 이것이 바로 보호무역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위안화 절상 요구에 대한 중국의 응답인 셈이다. ‘위안화 절상’ 현안은 제쳐두고, 공산체제로부터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자본주의 체제로 편입하고 있는 중국의 지도자 입에서 “자유무역 지지”라는 언급을 직접 듣게 되니, 역사적 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적 국제체제관(觀) 입장에서 볼 때, 국가 간 자유무역은 경제성장을 견인할 뿐 아니라, 세계평화를 증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 이유는 자유무역을 통해 무역에 관여하는 당사 국가 모두가 이익을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무력 충돌이나 전쟁을 회피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무역의 확대가 양극화와 착취의 근원으로서, 갈등과 대립의 원인이 된다고 보는 종속이론(사회주의)적 분석과는 정반대되는 입장이다.
원 총리의 14일 발언은 그가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천명하는 가운데, 중국의 국가이익을 관철하려는 고도의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 美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는 14일자 최신호에서 “중국이 세계의 규칙을 새로 쓰려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무역, 기술, 통화, 환경 등 세계 현안과 관련, “親중국적인 국제체제”를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동아일보」, 2010.3.15).
그러나 「뉴스위크(Newsweek)」는 “중국의 자신감, 국가정체성 혼란 등이 뒤섞여 중국은 안보, 무역, 대외관계 등에서 자국중심 정책을 한동안 계속 펼 것”이라면서도, “‘중국발(發) 세계 재형성’의 길은 아직 평탄치 않다”고 전망했다(상게서).
3월 14일 회견에 나타난 원 총리의 의도는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를 논박하려는 데 집중돼 있어, 중국 대외정책의 상세한 윤곽이 드러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을 요할 것 같고, 특히 위안화 절상 논쟁의 객관적 파악을 위해선 보다 심층적인 국제경제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원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외교현안 문제에 대해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 했는데,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티벳 지도자 달라이 라마(Dalai Lama)를 만난 일과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강력 비난하면서, “이러한 조치들은 중국의 영토 주권(territorial integrity)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그 책임은 중국 편에 있지 않고 미국 편에 있다”고 주장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지금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강대국으로 변신하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화평굴기(和平堀起)→조화세계(和諧世界)’는 등소평 시대로부터 후진타오 치세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대외정책 변천 모습을 집약해 주는 슬로건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의미로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리겠다’는 정책방향이다. 1980년대 20년간 중국의 공식적인 대외정책 강령이 되었다.
후진타오 시대에 들어와 ‘화평굴기(和平堀起)’ 노선 아래, “평화발전의 길을 더욱 흔들림 없이 걸어가 중국의 발전과 세계평화를 함께 촉진시킨다”는 정책방향을 추진해왔다. 2003년 이후 공식화되었다.
2006년 중국은 “평화적인 발전의 길을 걸어 조화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는 ‘조화세계(和諧世界)’를 대외정책 슬로건으로 삼았다. 국제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중국위협론에 대응, 세계질서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개입하겠다는 대외전략 개념이다.
지난 30여년 중국의 눈부신 성장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수출 세계 1위, 외환보유액 세계 1위, 자동차 내수판매 세계 1위, 국방비 세계 3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2009년 중국과 일본 GDP는 각각 4조 4,200억 달러와 4조 6,800억 달러로 비록 일본이 약간 앞섰지만, 1~2년 내에 중국이 일본을 추월할 것이란 연구보고서도 나왔을 만큼, 중국의 발전 속도가 거세다(「동북아전략균형 2009」, 한국전략문제연구소).
결국, 중국은 향후 대외정책에 있어 미국과의 협력‧견제관계를 유지하며, 자국의 제발전을 지속적으로 증진하되, 국제 규범‧규칙‧조직‧기구 등을 중국주도 시스템으로 변화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세계 자본주의 무대를 깨지 않으면서, 미국과는 이익 중심으로 대결‧협력해 나가는 외교적 유연성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