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10주년 기념 토론회
많은 언론과 학·정계에서 언론의 중립을 강조하고 선거법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언론이 특정 정치세력에 편향되어있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왜 언론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하는가?
이대근, "분열, 갈등의 정치 체제...언론이 갈등을 촉진시켰다"
정파성 없는 언론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보수 독점체제에서 언론의 정파성 논의는 언론 현실의 왜곡 될 수 있다"
최영묵, "언론, '감시견' 표방하지만 실제론 '공격견'"
민중의소리가 10주년을 맞이해 언론의 정파성에 대한 토론회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과 공동개최했다.
언론의 정치적 중립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언론이 정치적으로 편향돼있는 현실에 대해 언론계·학계 인사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발제를 맡은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한국 언론이 보수 독점 체제의 산물이라고 전제했다. 이 논설의원은 시민사회는 진보, 보수, 중도로 어느 정도 다원화되었다 해도 이를 대표하는 체제는 보수 독점 상태 이라며 언론을 지배하는 보수언론은 보수 여론을 확대하고 이를 보수 정당 확장의 자원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설의원은 서민, 빈민, 노동자, 농민,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이익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구조가 체제 내 불안을 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오히려 갈등 촉진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파성 없는 언론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이 논설위원은 "중립의 기준은 역사적 조건, 정치적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중립성 문제는 인식론적 논쟁이 가능한 개념으로서 엄밀히 정의하자면 현실 세계에서 가능한지, 효용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정파성이란 특정 정치·이념적 가치와 지향성이라며 이를 배제한 언론은 이론상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논설위원은 한국은 보수 독점체제이며, 좌파는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어 완전한 다원주의 사회로 규정할 수 없다"며 이에 따라 한국 언론의 정파성 논의는 언론 현실의 왜곡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파성은 이념적 지향성...일관성 없는 한국 언론"
이 논설위원은 정파성은 일관된 이념적 지향성을 전제하지만 한국 언론은 특정 정당, 정권과 이해를 같이함으로써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다수당의 날치기 처리 시도에 소수당이 국회를 점거하며 저항하는 상황의 경우, 지지 정당이 다수당일 때는 의회주의를 강조하며 다수표결을 주장하고, 지지 정당이 소수당일 때는 다수의 횡포를 비판하며 대화와 타협을 주문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또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에 따른 제3차 사법파동과 비정규직법 유예 등의 예를 들며 언론으로서의 기본적 기능까지 포기하는 보수언론의 태도는 정파성이 아니라 편파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영묵, 언론, 감시견 표방하지만 실제론 '공격견'"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론적으로 언론과 정치권력과의 관계에서 '미디어는 감시견(watchdog)"이라면서도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은 이상형일 경우가 일반적이고, 자본주의 이후 언론은 대체로 애완견, 보호견, 공격견으로 변질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애완견'으로서의 미디어란 독자적인 기반이 없거나 취약한 상황에서 권력에 순응하는 양상이고, 보호견'으로서 미디어의 역할은 권력구조(power structure)를 보호하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국내 주류 미디어가 외형상 감시견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격견이 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며 일부 신문의 무규범적, 자기중심적 보도 행태가 그러할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중반 이후 정치사회 환경 변화도 이를 뒷받침 한다고 주장했다.
데일리안 편집국장 출신의 김인배 환타임스 편집국장은 한국 언론이 사실보도에는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지만, 하나의 현상을 놓고 부분적 팩트만을 부각시키거나 의도적으로 덮어버리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편집국장은 많은 언론이 중립적이지 않고 정파성이 있다"며 특히 정치와 관련해 '진실보도'는 아니라도 최소한 '균형보도'라는 선은 지켜야한다"고 말했다.
김 편집국장은 중용의 도는 기계적 중간이 아니라 '예스든, 노든 명백히 한 쪽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라며 그런데 보다 중요한 자세는 치우침 없이란 전제라고 주장했다. 김 편집국장은 치우침 없이 를 쉽게 표현한다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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