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이현오
6·25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대학생 대원들, 유엔묘역에서 숙연한 자세로 참배
6일 오전 대학생 대원들의 발걸음은 지금까지에 비해 훨씬 가벼워 보였다. 5시에 일어났음에도 피곤한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전 날 밤이 늦도록 군부대 연병장을 밝히던 캠프파이어 불빛이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대학생 남녀 대원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가 마냥 아쉬운 듯 했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지금까지 10일 밤과 낮을 함께 해온 정든 친구이자 동료애로 똘똘 뭉쳐 있었는데. 이들 대학생 대원들이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주관한 6 25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을 위해 전 대원이 함께 자리를 한 것은 지난 달 6월19일이었다. 지역단위로 오리엔테이션을 갖기는 했지만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얼굴을 알리고 서로를 소개하며 팀웍을 다지기도 했지만 서먹서먹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6월25일 60주년을 맞는 6·25전쟁 기념식장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에게 출정신고를 한 이들 108명의 대원들은 일일 도보 평균 24km를 걷는 총 연장 636km의 대장정에 나섰다.
처음 하루 이틀은 서로가 어색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서로는 하나가 되어 갔다. 30℃를 웃도는 아스팔트 위의 지열을 감내하면서 폭우가 쏟아져도, 땡볕이 내리쬐어도, 어깨를 내리누르는 배낭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다가와도 그들은 두려움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럴 때마다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턱에 차 오르는 가쁜 호흡을 고르며 고갯길을 오를 때면 누군가의 손길이 배낭을 밀어주었다. 지쳐 쓰러지면 한달음에 달려와 배낭을 받아 들고, 발바닥의 물집을 터뜨리고 연고를 발라주며, 무릎에 붕대를 감아주는 의료 스텝진의 고운 손길이 있었다.
동료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기운이 빠져들려면 어느새 어깨를 부축하고 신나는 구호가 10배 100배의 힘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당찬 모습 이면으로 장난 끼 가득한 얼굴들이 바로 앞에서 춤을 쳐 댔다. 그랬기에 이들의 이 날 밤은 평상시와 같은 예사로운 밤이 아니었다. 함께 했던 서로와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손을 맞잡아 격려해가며 한잔의 맥주에 청춘의 뜨거운 피와 젊음의 낭만, 기백을 담아 노래했다.
동고동락했던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아쉬운 추억담도 이어졌다. 졸업과 함께 다가올 새로운 사회에 대한 동경, 미래사회에 대한 희망과 꿈도 펼쳐졌다. 자신과 같은 또래에 나라를 위해 꽃다운 젊음을 바쳐야 했던 당 시대인의 아픔도 토로하면서 얼굴빛은 붉어져갔다.
그것은 단지 장작더미에서 비춰진 불빛에 의한 반사나 맥주 몇 잔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속이 꽉 찬 젊음만이 간직하는 청춘의 이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해단식이 열릴 부산을 향해 포항을 출발한 6 25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대원들은 이 날 공식적인 마지막 경유지 '재한 유엔기념공원'에 도착해 참전용사와의 대화에 이어 기념공원에 안장된 6 25전쟁 유엔참전용사의 묘역에 참배했다.


▲ (위) 대학생 대원들이 유엔기를 중심으로 둘러서서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고 있다. (아래) 기념공원에 대해 소개를 듣고 있는 대원들.ⓒkonas.net
대원들은 조금 전 가슴에 매단 참전 기장과 훈장으로 자신을 알린 참전용사로부터 6·25당시의 처절했던 상흔과 주검 등 상상이 잘 되지 않는 내용들을 들어서인지 숙연한 자세로 참배단에 섰다.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리고 자원봉사자의 설명을 들으며 유엔기념공원의 유래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재학 중 미국으로 이민 가 대학원까지 마치고 다시 원광대에서 한의학 박사과정을 밟다 이번 국토대장에 의료 스텝 팀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동엽 군은 해외에서 느낀 조국애를 "단일민족으로 똘똘 뭉친 민족정신"으로 표현하며 이번 대장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이동엽 군. 의료 스텝 팀장으로 활동했다. ⓒkonas.net
이 군은 한국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기 나라 일처럼 유엔군이 지원해 나라를 구한데 대해 가슴 뭉클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고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이종진 씨도 참전용사라고 밝힌 이 군은 "할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하신 분이셔서 인지 이번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보고들은 것이 남다르고 더욱 와 닿는 것을 느낀다"며 "잠시 잊었던 국가안보에 대해 더 크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젊은이들이 안보의 중요성에 함께 공감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 군은 "의료 팀장으로 처음에는 대원들이 속 메스꺼움과 근욕통 등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고, 물집으로 고생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 큰 무리 없이 마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번 6·25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은 영원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고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를 널리 알리겠다"며 이 행사가 해외 유학생에게도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바람사항까지 전했다.
한편 재한 유엔기념공원은 1951년 1월18일 6·25전쟁 중 전사한 유엔군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사령부가 묘지를 조성한데 이어 1955년 11월 우리 정부가 현재의 기념공원 내 토지를 영구히 기증하고 성지로 지정할 것을 유엔에 건의해, 같은 해 12월15일 이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했다.

▲ 기념공원 경내를 걷고 있는 대학생 대원들. ⓒkonas.net
이어 1974년 2월에는 관리업무가 유엔에서 11개국으로 구성된 재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CUNMCK)로 위임돼 현재에 이르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기념공원(묘지)으로 현재는 영국과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 2,300위의 유해가 봉안돼 있다.


▲ (위) 기념공원. 꽃으로 쌓여 있는 곳이 2,300여위가 뭍혀 있는 묘역, (아래) 지난 18일 이명박 대통령이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참배하고 기념식수한 소나무. ⓒkonas.net
지난 18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기념공원을 방문해 전사자 묘역을 참배해 6·25전쟁 60주년을 더 의미 깊게 했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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