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한반도 정세의 가장 큰 현안은 북한 핵문제”, 승자의 자세로 주도권 행시해야
북한의 항복?
이명박 정부는 최근 인도적 지원의 결정이나 남북대화의 수용, 국방백서의 '주적' 불표기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는 있지만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그동안 정부가 제시한 원칙과 조건을 북한이 수용하고 태도를 바꿀 때까지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도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뒷받침해 왔다.
드디어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것인가? 최근에 북한은 추석에 즈음하여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자고 먼저 제의해 왔다. 그리고 남북 군사실무회담도 제의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에는 우리가 하자고 매달리고 북한이 이에 선별적으로 응하던 사안이었다.
올 봄 돌발적인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직전까지도 북한은 먼저 남북정상회담을 하자고 손짓하였다. 또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도 북한이 먼저 제의했다. 이명박 정부의 강경자세가 먹힌 것일까? 국제제재와 수해로 인해 북한의 식량사정과 경제가 빈사상태에 빠지고 외부의 지원이 절실히 아쉬워진 만큼, 조금 더 기다리면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사과하고, 핵문제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항복할 것인가?
그러나 이같이 일견 그럴듯하고 후련한 전망은 근거가 빈약한 일방적 기대이다. 북한은 독재국가이며 인권보다 주권을 우선시하고 체제의 보위나 체면을 위해 주민들의 희생과 고통쯤은 얼마든지 감내하는 집단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거나 애써 무시한 소치이다.
대북제재로 경제난을 가중시키면 북한당국에게 압박이 가해지겠지만 고통의 대부분은 힘없는 북한주민들에게 돌아간다. 북한당국은 주민 고통의 원인을 자신들의 실책보다 외부 적대세력의 "대북적대정책"에 전가시켜 체제단속의 구실만 강화한다. 대북재제로 북한이 붕괴한다거나 손들고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20여년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만간 북한이 손들고 나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는 퍼주지 않고 의연하게 기다리면 북한이 제풀에 먼저 군사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하게 되니 잘 대처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북압박을 위해 러시아와 중국의 협조를 얻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우리나라의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G-20 개최국으로서 위신의 추락을 감수해야만 하게 되었다. 대북압박에 적극 뒷받침한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란 시장을 포기해야 했다. 금강산관광에 연관된 사업자와 주민들, 그리고 개성공단에 진출하고 남북교역에 참여한 사업자가 입은 피해는 말할 필요도 없다. 과거처럼 퍼주지 않았더라도 더 많이 잃어버린 것이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기?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북한이 변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한 반면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는 오히려 불분명하다.
정부는 비핵화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한다고 했고,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 없이는 6자회담에 나갈 수 없다고 한다. 대북제재와 압박 국면을 벗어나려는 북한의 유화 움직임이 있을 때 마다, 정부는 어떤 때는 비핵화를, 어떤 때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를, 어떤 때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내세운다. 그렇기에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의 우선수위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정부가 원칙을 강조하지만 그 원칙은 상황이 조성 될 때마다 새로 제시되고 있다. 대북정책의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원칙도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현재 한반도 정세의 가장 큰 현안은 북한 핵문제이다. 천안함 사건도 흐지부지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는 사안이다. 재작년에 발생했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도 받아내야 한다. 인도적 대북지원 재개에 있어 그간 지적되었던 분배투명성 문제도 개선되어야 한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도 국가의 기본적 책무로 등한시할 수 없다. 이 모든 문제가 현안이며 반드시 풀고 가야한다. 그러나 우선 순위가 명확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의 전제조건으로 얽혀버리면 출구조차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게 되고 북한으로 하여금 핵능력을 증대시킬 시간만 벌어줄 우려가 있다.
정부는 현재 거의 모든 대북 현안을 천안함 사건과 연계시키고 있다. 6자회담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성의 있는 자세가 있어야 재개할 수 있고, 대규모 대북 인도적 지원도 천안함에 대한 사과가 전제조건으로 되어 있다. 지난 5월 24일 발표한 천안함 사건의 대응조치 내용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당시의 '5.24 조치' 중 외교와 국방 분야의 조치들은 실제 이행과정에서 현실을 반영하여 이미 상당한 궤도 수정이 있었다. 유엔 안보리에서의 대북규탄 결의안 채택 목표는 실현되지 못했고, 휴전선상의 대북심리전 방송재개는 보류되고 있다. 비록 긴급한 수해지원 명분이지만 중국과 미국의 대북지원 조치에 이어 우리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재개되었다.
미국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초기에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여 6자회담 재개에 '북한의 사과'를 선행조건으로 요구했으나 최근 '남북관계 증진을 위한 긍정적 조치'라는 유연한 요구로 출구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은 줄곧 '북한의 사과'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해법으로 제시하여 왔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시인과 사과 요구가 거의 현실성이 없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북한이 6자회담 재개와 남북관계 완화를 위해 선도적인 조치를 하고 우리는 뒤쫓아 가며 대응하는 구도가 마련되어 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정세변화에 기민하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시점이다. 자칫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국제적 압박이 아니라 꿈쩍 않는 한국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국제정세가 조성될 수도 있다. '천안함 사과'라는 요구 조건은 사라지고 '6자회담'은 원래 우리가 제기한 것이고 북한은 이에 소극적이었던 협상 틀인데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 남북한의 입장이 역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응, 승자(勝者)의 자세를 보여라
돌이켜보자. 재작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유엔의 대북제재를 받게 되자 북한은 6자회담을 거부하며 대북제재 결의에 대한 사과와 핵군축과 평화협상을 위한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요구하였다. 또한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선제의하면서 남북관계의 여러 현안들을 돌파하려는 복선을 내비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은 남북 고위급 대화와 미국과 양자협상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할 것이고 금강산 관광재개를 위한 연결고리도 찾아보려 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유화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은 최근 미국과 중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6자회담'의 선행조건인 '남북관계 증진을 위한 긍정적 조치'들과 연계되어 해석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천안함 사건에 빠져 북한과의 기(氣)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한반도 비핵화나 남북관계 증진을 위한 주도권을 북한이 행사하고 있는 형국이다. 혹여 그러한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으려고 하다가 우리 정부의 당초 대북정책 목표를 잃어 버리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기를 바란다.
역대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나름 최선을 다 해왔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조건으로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를 겨냥한 '비핵, 개방, 3000'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북한의 비핵화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한반도 정세의 가장 큰 현안이다. 우리가 당면한 안보문제에도,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문제에도,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데도 북한 핵문제는 풀고 가야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핵무장 능력을 증강시키고 있는 북한의 움직임을 하루속히 비핵화의 방향으로 돌려세워야 한다.
사실 남북한은 서로 기싸움을 할 처지가 아니다. 북한은 남한과 맞설 상대가 되지 못한다. 남북 간의 체제경쟁은 이미 20여 년 전에 승부가 났다. 남북한의 국력격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 수치로 따지기가 민망할 정도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승부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의연한 승자의 자세이다.(konas)
위 글은 평화재단에서 발행한 현안진단 제 9호에 게재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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