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이현오
독일통일 20년 맞아 '독일통일 20년과 한국의 통일 대비 주제 국제학술회의 열려
독일통일 20주년(10.3)을 맞아 우리의 통일대비에 어떤 교훈으로 받아 들여 승화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국내외에서 달아오르고 있다.
4일 열린 독일 통일 20년과 한국의 통일대비'(통일연구원·한스자이델 재단 공동주최)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도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독일 통일의 역사적 교훈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남북한에 어떻게 적용되고 무엇이 필요하며 또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설득력 있게 의견을 논하는 자리였다.
이 날 국제학술회의에는 통일 당사자인 독일 관계 전문가들의 발제와 함께 특히 한반도 통일과 관계 있는 주변국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통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떤 역할과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를 놓고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학술회의는 먼저「독일통일 20년 평가」에 이어「한반도 통일비전」그리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관점」등 3개 분야 회의로 체계적으로 분석 제시했으며, 여느 학술회의와는 다르게 발제자 대부분이 독일과 미국, 중국의 통일과 관련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편성해 의미를 더했다.
제1회의에 발제자로 참석한 독일연방내무부 신연방정부 밴트만(Bentmann)담당국장은 보고서를 인용해 "독일통일은 성공적인 통일로 결론 나고 있다"고 밝혔다.
밴트만 국장은 독일 통일과정에서 구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 통일당의 역할을 들면서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 통일당의 역할을 사실상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89년 11월부터 90년 초까지 통일당은 개혁이란 말을 내세우면서 무언가 반전을 시도했지만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통일당에 대해 사람들은 믿음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젊고 유능한 젊은 사람이 동독을 떠나는 대규모 엑소더스가 지속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아래서 조정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과 제도가 필요했고, 그래서 지방선거를 통해 조직이 마련됐다며 이런 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또한 시민운동가들이 많이 있었고, 이 시민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구 동독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 총선이었고, 총선 결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나왔다고 소개했다.
밴트만 국장은 또 통일비용과 관련해 "통일비용은 통일로 인해서 비용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40년 간 동독의 잘못된 국가경영시스템으로 인해 이를 처리하기 위해 발생된 비용"이라고 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을 불식케 했다.
또 통일에 수반되는 기간과 관련해서는 통일을 위한 과정들이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진행되고 이루어져야 했으며, 기회의 창 또한 오랫동안 열려 있지 않았다"고 말해 통일의 기회가 다가온 순간 서독과 동독인들이 '통일'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했음을 일깨웠다.
그러면서 "통일 이후 20년 동안 동독지역에 어떤 재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서독에서 동독으로 자본이나 자금을 투입했지만 분명히 할 것은 동독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임을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새로 완전히 변화된 새 사회에 적응하는 힘이 여기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어 현재 통일 20년이 지난 지금 지난날을 돌아보면 모든 과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고 앞을 볼 필요가 있다면서 "아직도 동독 지역은 자체적으로 경제를 완전히 유지하지 못하고 향후 몇 년 동안에 목표를 이루어 균등한 삶의 질을 영위해 나갈지에 대한 숙제를 안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발제에 나선 독일연방헌법재판소 브로스 재판관은 '독일 통일의 법적 근거와 통일의 의미'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1949년에 제정된 서독의 헌법 전문에는 국가목표로 통일이 설정되어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헌법 146조에 통일내용이 들어가 있지만 간단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어떤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통일을 향한 하나의 헌법적 근거의 출발점이라는 점과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어떤 통일형태를 하고 담을 것인지는 정치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통일 이후에도 어떤 문제를 서독과 동독인들 사이에 송사가 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송사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해 통일을 대비하고 있는 남북, 특히 이산가족 사이에서 연계될 수 있는 송사에 대해서도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브로스 재판관은 독일통일에 대한 서독의 동독에 대한 '흡수통일' 용어 지칭과 관련해 반박했다. 독일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라고 했다.
즉, 독일이 통일된 형태를 보면 구 동독 지역이 연방주가 되어서 통일독일에 가입하는 방식이라며, "혹자들은 독일 통일에 대해 흡수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맞지 않다. 2차 대전 이후 서독이 생기는 과정을 보면 서독은 연방주가 먼저 존재했다. 연방주가 국가를 이루게 된 것이고, 그로 해서 1949년에 연방공화국 탄생한다"며 "그래서 연방주가 먼저 생기고 그 다음 가입하는 형태이기에 흡수통일이 아니다"고 제기했다.
그는 끝으로 독일 통일의 평가에 대해 전체적으로 독일통일은 성공적"이라며, 법을 적용하는데 있어서도 인간을 먼저 생각하고 하는 점도 성공적"이라면서 하지만 아직도 남은 문제점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 또한 고민"이라고 말해 핵은 물론, 천안함 폭침 이후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놓여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무척 부럽고 행복한 고민으로 보여지는 장면이기도 했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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