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권재찬
고농축 우라늄(HEU)이 플루토늄 방식보다 위협적..국방부 장관,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도 검토
한.미 양국은 22일 북한이 최근 고농축우라늄(HEU)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공개한 것을 두고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6자회담의 한국측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오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회동해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고 외교부 당국자들이 전했다.
보즈워스 대표는 이날 오전 김성환 외교장관을 예방한 뒤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텝)을 가진 자리에서 북한의 원심분리기 공개에 대해 이것은 우리가 거의 20년 동안 대처해온 매우 어려운 문제"라며 "매우 실망스러우며 심각한 일련의 도발행위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보즈워스 대표는 이번 행동은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앞으로 관련국들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공동대응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우라늄 농축활동을 사실로 이해한다"며 "상황을 있는 그대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이며 우리가 대응해야 하는 사안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번 사안은 심각한 문제의 대상이라는 것이 분명하고 안보리 결의를 포함해 9.19 공동성명까지 기존에 우리가 북한에 해준 합의나 결의에 위배된다"며 "한.미.일 포함해 중국, 러시아까지 포함한 5조 공조하에 단합된 입장에서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앞으로 기존의 5자공조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을 보면 대화재개의 여건을 조성해야만 대화가 생산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하고 "그동안 우리가 해온 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우라늄 농축은 우리가 오랫동안 주시해왔고 또 의구심을 가져왔던 부분이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상황이라거나 저희가 알지못했던 놀랄만한 상황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동안 우리가 염려해왔던 것이 현재화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6자회담 재개 문제와 관련, "6자회담은 비핵화에 기여하도록 해야 하며 비핵화를 지연시키고 막지 않도록 해야한다"며 "바른 조건이 조성된 하에서 6자회담이 재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외교적 방법 외에 제재와 압박도 다른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가제재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제재를 한다, 안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며 "현재까지 논의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북한이 미 전문가들에게 공개한 고농축 우라늄(HEU)이 플루토늄 방식보다 위협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원자로라는 구체적인 현장이 있는 플루토늄 추출 방식에 비해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는 지하의 소규모 작업공간에서 은밀한 제조가 가능하고 방출되는 방사능도 매우 적어 외부감시가 어렵다는 점에서 훨씬 더 심각한 위협이 된다.
헤커 소장은 "미국이 20년 가까이 주시했던 영변 핵시설에 원심분리기를 갖춘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은 이 같은 시설 또는 더 나은 시설이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군사전문가들은 핵탄두의 경량화(輕量化)가 가능하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미국 알래스카까지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진 대포동 2호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느냐의 관건은 경량화 여부에 달려 있다. 또 HEU를 쓰면 플루토늄 방식보다 핵무기 제조와 보관이 훨씬 쉽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밀하고 복잡한 기폭장치를 써야 하는 플루토늄 방식과 달리 단순한 장치로도 폭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1일 북한이 최근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원심분리기 수백개를 갖춘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여줬다는 보도와 관련해 우리나라 핵전문가들의 분석도 다양하다.
이들은 북한이 미국, 한국 등으로 하여금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협상 테이블에 나서도록 하려고 `농축우라늄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에는 대체로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협상 전망을 놓고는 미국 등이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대북정책에서 대화로 방향을 선회할 것이라는 분석과 대화는 북한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협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로 엇갈렸다.
다음은 연합뉴스가 취재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상황이 심각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미 양국에서 소위 말하는 협상파와 원칙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공개함으로써 그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정부가 천안함 사태에 대한 사과와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분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시점에 맞춰 공개해 자신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6자회담의 재개 조건으로 말해온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과는 역행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협상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취하고 정치.경제적 대가를 요구하는 전형적인 전술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북한의 이런 신호에 대해 협상으로 응할 것인지 대북제재 강화 쪽으로 나갈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북한과 협상할 경우 북한이 과거 써왔던 살라미 전술같은 협상 전술을 계속 답습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뛰어넘는 포괄적인 협의를 구축해 한.중.미.일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할 것이냐는 문제가 계속 등장할 것이다.
협상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전술에 말려들지 않도록 중국의 협력과 함께 한.미.일의 긴밀한 공조 체제를 갖춰 일괄 타결 쪽으로 가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원심분리기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정부 특사가 방북했을 때 발생한 문제다. 8년간 수백개 원심분리기를 가동할 수 있는 시설을 지었다는 것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너무나 급박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침착한 접근이 필요하다.
▲ 전성훈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북한은 이미 1990년대부터 파키스탄과 핵협력을 추진해왔고 이란과도 협력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원심분리기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시설 역시 어제, 오늘 사이에 만든 것은 아니고 2002년도부터 보유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기술적 축적을 해온 결과물을 이번에 공개한 것이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시설은 없다고 얘기해오다가 이미 지난해 6월 말 인정했고 이번에는 그 실물을 보여주는 셈이다. 북한은 플루토늄 제조시설을 공개하는 것도 이런 순서를 따라왔다.
앞으로 두 가지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미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했는데 그렇게 갈 수도 있고 당시 실패를 경험 삼아 신중하게 나갈 수도 있다. 다만 부시의 전철을 밟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협상장에 달려들어서 요구사항을 다 들어준다고 HEU 프로그램이 폐기된다고 볼 수도 없다. 북한은 HEU 시설을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핵무기로 이어질지 여부는 국제사회의 반응이 결정할 것이다.
▲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6자회담 및 북미대화를 앞두고 협상에 나오라는 대미 압박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내부적으로는 후계체제를 앞두고 핵을 이용해 선군정치를 계속 유지하고 군의 충성심을 유도하려는 다목적 용도인 것 같다.
북한이 HEU 시험개발을 얘기를 한 적은 있지만 수백개를 봤다는 얘기는 처음인 것 같다. 전문가들은 원심분리기가 2천∼3천개가 돼야만 우라늄 고농축에 의학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앞으로 플루토늄과 HEU, 둘다 협상 테이블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6자회담 재개하는 데 있어 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다만 원심분리기를 갖추고 있어도 북한이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시위용이라고 볼 수 있다.
원심분리기 개수에 대해서는 팩트에 차이가 있다. 헤커 박사는 수백개를 봤다고 하고 북한은 2천개 가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원심분리기는 실질적인 핵무기 제조보다 실험단계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전략적 인내' 입장을 취해온 미국도 대북 접근방법이 바뀔 것으로 본다. 보즈워스의 한중일 방문이 6자회담과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한 순방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한다. 오바마 정부가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만큼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핵문제를 비롯한 외교적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에 협상으로 갈 것으로 본다.
▲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의 원심분리기 공개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중국으로서도 당혹스런 일이기 때문에 중국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감추고 있던 핵능력을 자꾸 과시함으로써 협상을 끌어내려고 강수를 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중국과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수 있다. 북한이 핵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왔지만 이번에는 도발적 방법을 선택했다.
앞으로 중국의 반응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가급적 긴장을 완화시키면서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해왔는데 북한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협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HEU는 2002년부터 시작된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협상에 나서게 되면 미국이 북한의 입장을 정당화하는게 된다. 북한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이 분명하지만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원심분리기 공개가 미국과 대화를 촉진할지, 아니면 미국의 압박을 강화할지 여부는 미국과 중국의 협조 속에서 진행될 문제다.
한편 김태영 국방장관은 22일 북한이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한 것과 관련,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전략적으로 고려할지 여부에 대해 "핵억제를 위한 위원회를 통해 협의하면서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일각에서 언급하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고려할 생각이 있느냐"는 한나라당 이종혁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장관은 또 한미 공동의 대응 방향에 대해 (지난 10월)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확인한 바 있는 (확장억제정책) 위원회를 구성해 한미간 긴밀히 협의할 생각"이라며 "한미간에 굉장한 우려를 갖고 철저히 준비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는 가운데 첩보를 공유하고 있어 (이번 우라늄농축시설 공개가) 급히 놀랄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추가로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kon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