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을 초청해 초현대식 제어실을 갖춘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했다.
진보신당은 22일 북한이 영변에 건설하고 있는 경수로의 연료 조달 관련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개발 이라는 능력을 과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변의 경수로가 본격적인 전력 생산용이라고는 할 수 없는 25-30MW급의 실험용 수준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헤커 등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있다고 한다. 전문가에 따라 그것으로 고농축우라늄(HEU)을 추출할 수 있는 양이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소 엇갈리기는 하지만, 대체로 핵무기 1-2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기존의 영변 흑연감속로를 통해 추출한 플루토늄을 이용한 플루토늄탄에 이어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우라늄탄까지 생산할 능력이 있는 북한과 마주하게 됐다.
우리는 그간 누차에 걸쳐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이 중단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북한의 핵능력은 오히려 증강될 따름이라며 한미 당국의 적극적 대화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말로는 비핵화를 가장 우선에 두면서도 실제로는 “북한의 패턴을 종식시키겠다.”며 대북 제재와 압박에만 치중해왔다. 오바마 정부도 별다른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뒤를 쫓는 듯한 행태를 보여왔다.
한미 당국은 그동안 적극적인 대화를 촉구하는 주장에 대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무의미하다며, 북한 당국이 진정한 비핵화의 의지를 보여주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대화를 하는 체하며, 압박을 피해 핵능력을 증가해 온 행태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를 통한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 그것만이 북한이 비핵화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수 있고 비핵화의 속도를 낼 수 있으므로 북한이 구체적 신호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흔들림 없는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북한이 벌써 두 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하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누리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밝힘으로써 과연 비핵화를 할 의지가 있는가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HEU의 경우만 해도 2002년 10월 미국의 제임스 켈리(Kelly)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방북했을 때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현재 부총리)이 우리는 HEU를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고 말한 이후에는 줄곧 그 존재를 부정해왔다.
지난해 2차 핵실험 이후 5월에는 우라늄 농축 작업 착수를 선언했고 9월 “우라늄 농축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발표한 데 이어, 헤커 등이 우라늄 농축 설비인 원심분리기 수백 개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햇볕정책과 그 지지자들이 HEU를 애써 무시한 결과가 지금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가시적으로 드러난 사실만 보자면, 6자회담이 난관에 봉착하기 전인 2008년 12월 이전만 하더라도 영변에서는 플루토늄 관련 시설의 핵불능화 작업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원심분리기 등 우라늄농축 시설은 부재했다.
북한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진작부터 진행해왔을 수는 있다. 그러나 영변에 가시적인 시설로서 구체화된 것은 6자회담이 난관에 봉착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고농축우라늄이 핵무기를 만들 수준으로 추출되었는지는 불분명하고, 그것을 이용한 우라늄탄의 개발·배치는 가능성만으로만 남아있다.
가능성이 현실로 변하기 전에 빨리 문제의 해결에 나서야 한다. 전략적 인내 운운하며, 시간을 끌 때가 아니다. 중국이 북한의 붕괴나 급변사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마당에 그 실효성이 의심받던, 제재에 기초한 북한에 대한 압박 정책은 비핵화는커녕 북한의 핵능력만 증강시키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이런 사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2000년 북·미 코뮤니케를 의도적으로 묵살한 이후 모라토리움이 선언되었던 북한의 미사일 개발능력은 획기적으로 신장되었고, 제네바합의의 파탄을 선언한 이후 북한은 핵무기를 5-10 개 정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해냈다. 소를 잃고 난 다음에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다음 소마저 잃는 우를 막을 수 있다.
여전히 북한에 대한 불신만을 되뇌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우라늄탄을 만들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 시설의 경우 그 원료의 추출에 거대한 시설이 필요 없어 추적이 어렵다고 하는데, 북한이 굳이 미국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공개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미국 등이 영변의 흑연감속로 시설에서 추출할 수 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보고, 비확산만 신경 쓰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추적이 용의치 않아 확산의 가능성이 훨씬 큰 우라늄농축의 능력도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래도 대화에 안 나설래? 이런 것 아니겠는가?
아직까지도 한국의 당국자는 미국 전술핵무기의 재배치 운운하며 현실성도 없고, 중국을 북한 편으로 더욱 경사시키는 어리석은 정책이나 내뱉고 있다. 도대체 말로는 비핵화를 가장 앞세우면서도 그 국제적 성격이나 해결책에 대해 제대로 알기나 하고 고민이나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보수층의 눈치를 보느라 비핵화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방도인 대화에 주저하는지는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 개인이 굳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형성의 업적을 남길 대통령으로 남지 않겠다면 그 뿐이고, 상황이나 악화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많은 사람의 판단이고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북한은 대화에 나설 테면 나서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핵능력을 계속 증강시키고 있다.
대화에 지금 당장 나서서 우라늄농축과 관련한 핵능력을 동결시켜야 한다. 그리고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폭탄의 개발과 실전 배치도 중단시키고, 그 완전한 폐기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평화협정 체결 등 평화체제의 형성과 비핵화를 통 크게 주고받아야 한다.
다른 방법이 있는가? 행동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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