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자 신문들은 “KBS 이사회는 9일 사장에 공모한 후보 13명에 대한 면접과 투표를 통해 11표 중 6표를 얻은 정연주 前 사장을 KBS 차기 사장으로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시 정치권력이 방송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개탄스러운 마음 금할 수가 없다.
당초 KBS 이사회는 형식적인 공모제 의혹을 모면하고 사장 선임의 공정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사장추천위원회(이하 사추위)를 구성키로 하였다. 하지만 사추위의 구성에서 해체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KBS 이사회는 그 자신이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개혁이라는 말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행태를 보였다.
KBS 이사회는 사장 응모자가 40명 이하일 경우에는 “5배수 추천”을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사장 응모자가 겨우 13명밖에 되지 않는데도 사추위가 5명의 사장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에 노조 추천 사추위원이었던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이 사장 응모자의 5배수 추천은 특정인을 사장에 앉히기 위한 껍데기 사추위라며 사퇴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후 KBS 이사회는 5배수 추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지금종 사추위원을 대신할 노조 추천 사추위원을 받지 않고 6인으로 사추위를 꾸려나가겠다고 하면서, 노조가 추천하는 인사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계속해서 거부하며 사추위를 파행으로 몰아갔다. 게다가 이사회 자신이 추천했던 방송학회 회장인 이권영 사추위원을 한 차례 회의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해촉하는 해프닝까지 연출했다.
이처럼 KBS 이사회는 공공기관 사장의 공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5배수 추천”을 주장하며 7인의 사추위 구성 자체를 계속해서 방해하더니,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갑자기 8일 아침 외부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어 사추위를 해체하고 이사들이 직접 사장을 제청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사추위원으로 참석했던 KBS 이사가 “이사회는 정 씨의 연임을 방해할 만한 제안을 모두 거부하고 사추위로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자 깨버렸다”고 밝혔듯이, KBS 이사회는 사추위라는 민주적 절차로는 “정연주를 위한 각본”이 연출될 수 없음을 깨닫고는 막을 올리지도 않은 채 내려버렸다.
바로 다음 날 9일 KBS 이사회는 또 다시 외부에서 이사회를 개최하여 면접에서 임명제청까지 당일치기로 끝내고서는 정연주 前 사장을 KBS 차기 사장으로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해버렸다. 이제 5개월간에 걸친 정연주 前 사장의 연임 논란은 대통령의 임명장 수여라는 형식적 절차만이 남게 되었다. 결국 이사회의 사장 임명 제청과정은 정권이 이미 결정한 인사를 사장으로 앉히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KBS 이사회의 행태뿐만 아니라 정연주 前 사장의 향후 행보 또한 너무나 우려스럽다. 공영방송 수장의 필수 요건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하지만 정연주 前 사장은 탄핵 편파방송을 비롯하여 임기 내내 정치적 편향성으로 공영방송 KBS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해온 장본인이다. 오죽하면 KBS 직원의 82.4%가 정연주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겠는가.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무리수임을 뻔히 알면서도 정연주 카드를 끝까지 밀어붙이며 또 다시 오기와 독선의 코드인사를 단행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공영방송에 대한 모독이자 언론 전체에 대한 모욕이다. 내년 대선에서 KBS가 무엇을 해주길 바라기에 대통령은 “정연주의 KBS”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