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발언을 둘러싼 파장이 법조계 내의 본질적 갈등인 것처럼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발언 취지를 무시하고, 표현상의 문제를 마치 본질적인 문제인 것처럼 침소봉대하여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법률가 직역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가 소모적인 대립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법원장의 수사기록 관련 발언은 검찰 수사 자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선 법관들에 대한 훈시이며, 낡은 재판관행에서 벗어나 피고인이 법정에서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판중심주의’를 확립하라는 취지이다.
표현상 다소 거친 부분은 있었으나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술을 받아 놓은 조서가 어떻게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수 있느냐’라는 뜻을 보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타까지 공소장을 베껴왔던 형사재판의 낡은 관행에 대한 강력한 척결의지라는 것은 누구보다 검찰이나 변호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또한 변호사 관련 발언을 놓고 볼 때 언어선택에 있어 신중하지 못하여 표현상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그와 같은 발언이 변호사들을 비난하는 취지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법관들이 변호사의 변론활동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판단하라고 훈시하는 맥락에서 행해진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이를 두고 변호사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거나 사법질서를 부인하는 발언’이라며 대법원장의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
국민들은 오랫동안 사법부의 개혁을 요구해왔으나,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된 사법개혁노력은 10년이 넘도록 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공판중심주의는 과거의 수사, 재판관행을 본질적으로 개혁하는 중차대한 요구임에도 이렇다 할 실적을 거두지 못했으며, 법원과 검찰은 낡은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국회는 산적한 사법개혁법안을 처리하는데 게으름을 피우고 있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
대법원장의 발언은 사법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법개혁 과제 중 특히 재판에 있어서 공판중심주의를 이룩하려는 데 법원이 앞장서자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번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부적절한 표현을 꼬투리 잡아 이를 침소봉대하고 전체 발언의 취지를 왜곡하는 행동은 자제되어야 한다. 지금은 법조계가 서로 헐뜯을 때가 아니라 힘을 합쳐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에 박차를 가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