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최경선
열린북한방송 하태경 대표 서울대 시작으로 인권미팅 토크 콘서트 시작
전문 대북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의 하태경 대표가 대학생들과의 토크 콘서트에 나섰다. 인권미팅’이라고 이름붙인 첫 번째 콘서트는 31일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열렸다.
오전 11시, 83동 404호에서 후배들과 함께 한 이 날 콘서트에는 애국소녀로 알려진 레이싱모델 김나나 양이 참석해, 하 대표의 대학시절 학생운동에서부터 북한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기까지의 과정과 에피소드들을 묻고 답하는 인터뷰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 열린북한방송의 하태경 대표가 31일 오전 11시 서울대학교 학생들과의 ‘인권미팅 토크 콘서트에서, 주사파로 활동했던 자신의 학창시절과 북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konas.net
열린북한방송은 그 동안 대학생이 참여해 제작하는 라디오남북친구를 통해서 많은 젊은이들과 소통을 해왔지만, 이번 콘서트는 대학생들과 소통의 폭을 훨씬 넓히려는 시도에서 진행됐다.
하 대표는 ’86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후 재학 시절 두 차례나 감옥을 오가면서 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하는 등 이른바 종북 좌파 학생운동의 배후조종자였지만, ’90년대 중반 북한의 경제위기를 계기로 북한의 현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운동에 나섰다.
1부 레이싱모델이 묻고 인권운동가가 답하다에서 하 대표는 “학생시절 교투(교내투쟁)나 가투(가두투쟁)를 할 때 돌 던지기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해서 항상 뒤에 섰기 때문에 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4학년때 감옥에 갔다 옴으로써 이런 콤플레스를 극복했다”며 당시의 학생운동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어 “감옥에서도 정치범은 독방을 썼기 때문에 2년간 약 3천여 권의 책을 읽어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다”고 말해 그의 학구열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하 대표는 당시의 학생들이 반미·친북의식이 강해 커피나 콜라도 안마시고 영어공부를 하지 않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 졸업후 영어 동시통역대학원을 마친 이유에 대해, “어느날 우연히 북한에서 제작한 비디오를 봤는데, 북한의 유치원생들이 영어 웅변대회에서 유창한 영어로 미국을 비난하는 것을 봤다”며 “미제를 이기려면 미제를 알아야 되고, 미제를 알려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회자의 말을 듣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현재 하 대표는 전 세계를 상대로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한 국제 세미나에 수 십 차례 참석해, 유창한 영어로 북한 주민의 인권과 민주화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
또한 하 대표는 중국 지린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경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에 대해 “처음부터 미국 유학을 준비했는데, 그때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소식과 사진들을 접하면서 북한을 알고 싶었다”며 “북한 김일성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북한에는 갈 수 없어 북한과 가장 가까운 길림성으로 유학을 갔고 거기서 많은 탈북자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중국 유학 시절 어느날 연변 중심가 시장에 반찬을 사러갔다가 만난 4명의 북한 꽃제비에 대한 충격적인 일화를 털어놨다. 그들이 불쌍해 보여서 하 대표가 국밥집에데리고 가 밥을 사줬더니 아이들이 국물만 먹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물만 먹지 말고 건더기도 먹으라고 했더니 지금까지 한 번도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위장이 고기를 소화시킬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하 대표가 화가 나서 김정일 욕을 하자 아이들이 “우리 장군님 욕하지 마시라요”라며 먹던 밥 숟가락을 내려 놓더라는 것이다.
이때 하 대표는 배가 고파 북한에서 도망쳐 나왔음에도 북한 사회와 김정일을 욕하는 대신, 북한이 못사는 이유를 미제와 남조선 탓으로 돌리는 세뇌교육의 현실을 인식하고, “북한을 바꾸려면 식량만 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외부의 소식을 전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대북라디오방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더불어 중국 유학후 대기업에 입사해 연봉 1억을 넘게 받는 안정된 직장을 잡았지만 미련없이 그만두고 열린북한방송을 시작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인생은 뭔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며 후배들을 향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세상의 흐름에 주목하며, 하나의 외국어를 확실히 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하 대표는 미국의회의 지원으로 열린북한방송을 세웠는데, 그 준비기간이 불과 1년 반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하 대표는 “민간대북방송 설립을 염두에 두고 미국에 갔는데, 탈북자 수백 명을 만난 자신만큼 북한의 현실을 아는 사람이 미국내에 없더라”며, “인생을 설계할 때 남들이 가는 길만 보지 말고 넓게 보면 다양하게 개척할 길이 있다”고 인생을 넓게 보는 안목을 가질 것을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하 대표는 결론적으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강조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만들고, 이를 파고 들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전세계적으로 확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은 실패할 수도 있고 용기가 필요하지만 후회는 않게 되고, 후회 남을 따라 살면 4∼50대에 허무를 느끼고 새인생을 살고 싶어진다”며 “내 인생의 주인이 될 것”을 강조했다.

▲ 탈북후 6년간 4개국을 떠돌다가 한국에 입국한 백화성 군이 서울대 학생들에게 자신의 탈북과정을 설명하고 있다.ⓒkonas.net
이어 2부 탈북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는 2008년 한국에 입국해 현재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백화성 군과 하태경 대표와의 대담이 이어졌다.
백 군은 12세 때 남한의 KBS 라디오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90년대 말 몰래 남한 드라마를 본 느낌, 중국, 베트남, 러시아, 독일을 거쳐 6년간 온갖 천대와 멸시를 겪으면서 숱한 탈북과 감옥생활, 추방, 북송되지 않기 위한 혈서·단식투쟁·자살 시도 등을 거쳐 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들을 설명했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의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남조선은 좋은 나라 아니니까 중국이나 북한으로 되돌아 가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의 쓰라린 마음을 상처를 소개해 탈북자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무관심과 인식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번 하태경 대표의 토크 콘서트는 그동안 젊은 세대에게 우파는 따분하다, 재미없다.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을 깨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날 서울대학교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번 인권미팅은 오는 11월 8일 연세대학교와 15일 고려대학교로 이어진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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