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6.15와 10.4 선언, 지킬 약속 아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월 28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종북정책을 추종하는 발언을 주저 없이 뱉어내 귀를 의심케 했다.
뉴스파인더 정용석 논설고문<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박 위원장이 김-노 전 대통령의 6.15및 10.4 선언 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는데서 그렇다. 그동안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은 6.15와 10.4선언을 비판하며 거부해왔다. 그러나 박 위원장이 지지하고 나섰다.
박 위원장은 2012 핵안보정상회의 기념 국제학술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및 10.4 선언을 꿰뚫는 기본정신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어 그는 “이런 차원에서 저와 새누리당은 남북한이 신뢰존중과 인정의 정신을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6.15 및 10.4 선언 지지는 그가 정치인으로서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여지없이 드러냈다는데서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네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박 위원장의 2.28 발언은 상황인식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을 노정시켰다. 그는 6.15와 10.4 선언의 “꿰뚫는 정신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라고 하였다. 절대 그렇지 않다. 6.15 선언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하였다. 이 대목은 분명히 남한 적화의 연방제안을 통일안으로 ‘인정‘해 준 것으로서 평화가 아니라 적화로 이용될 수 있는 독소조항일 따름이다.
지금 한국이 추구해야 할 정책은 대북 압박
뿐만 아니라 6.15 선언은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힘으로써 박 위원장의 주장대로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자주‘를 내세워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적화하자는 것으로서 남한이 인정할 수 없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실상 북한은 6.15 선언의 ’우리민족 끼리‘와 ’자주‘를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위원장은 6.15선언의 “꿰뚫는 정신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라고 엉뚱하게 해석하였다. 그의 상황인식에 중대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박 위원장의 2.28 발언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퍼주기를 거들고 나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가 6.15선언과 함께 10.4 선언도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은 10.4선언에 포함된 대북 경제지원 약속을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는 말로 들리게 했다. 10.4선언에 담은 대북경제 지원 약속은 해주 경제특구 건설, 개성-신의주 철도보수, 개성-평양 고속도로 보수,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 관광, 농업-보건-환경 협력 사업 등이다. 이 사업들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14조 3,000억원이 든다고 한다.
셋째, 박 위원장의 2.28 발언은 대북 정책과 관련, 그가 모호한 태도로 임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는 “조정에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이라고 전제하면서도 6.15-10.4 선언은 “확고하게 지켜 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정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이 부분부터 먼저 조정된 뒤에야 6.15와 10.4 선언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어야 옳다.
그렇지만 박 위원장은 “조정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 면서도 6.15와 10.4 선언을 확고하게 지켜가야 한다”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였다. 반대자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애매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국가의 지도자가 애매모호한 태도로 곤궁을 도망친다면 국민들로 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박 위원장의 애매 모호성은 작년 그가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9-10월호에 기고한 글 ‘새로운 한반도를 위하여’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그는 ‘남북한간에 신뢰외교를 실현하기 위해서 한국은 지금 까지 해온 대북 정책을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측근은 이 말이 ”햇볕정책도 압박 정책도 아닌 제3의 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첨언하였다. 포린 어페어스에서도 박 위원장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제3의 애매모호한 논지를 폈다. 지금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대북 정책은 대북 압박이지 제3의 길이 결코 아니다.
넷째, 박 위원장은 그동안 대북정책과 관련, 냉철한 판단보다는 온정적 정서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가 2002년 북한을 방문하고 난 다음 그런 노선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 후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북경협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그는 또 2007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북측과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누면 그들도 약속한 부분에 대해 지킬 것은 지키려고 노력한다’며 북한을 약속을 지키는 정권으로 표출시켰다. 그밖에도 그는 작년 러시아 가스관의 북한 통과와 관련, 한국으로 연결되는 러시아의 가스관이 북한에 “한 번 깔렸다 하면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북한에 대한 신뢰를 표출하였다. 북한은 언제든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가스관을 쉽게 끊고도 남을 작태를 보여 왔다.
박 위원장의 긍정적인 대북관은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은 북한에 관한한 확고하였는데 반해, 박 위원장은 애매모호하고 대북 온정적이다. 그렇게 된 데는 몇 가지 배경이 깔려있지 않나 추측된다.
김정일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우선 그가 2002년 5월 방북해 김정일과 대화한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김정일은 당시 만난 박근혜 씨에게 “우리 둘 다 위대한 지도자의 자녀들이니, 선친들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의 경제발전 업적을 찬양하였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김정일이 자신의 아버지를 “위대한 지도자”라며 긍정적으로 추켜세웠다는 데서 김에 대해 긍정적 정감을 받은 게 아닌가 추측된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작년 11월2일 공개한 내용이 박 위원장의 김정일에 대한 긍정적인 속내를 담고 있다. 박 위원장은 방북 후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2002년 7월 경제개방을 선언한 김정일 위원장은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것 같이 보였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의 김정일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박 위원장이 대북정책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김대중-노무현 지지세력과 젊은 세대의 온정적 대북관에 영합하려는 전략적 계산에서 나온 것 같다. 대북 포퓰리즘의 발현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은 그의 모호한 속성이다.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박 위원장의 태도가 “굉장히 모호”하다고 털어놓았다. 대북관계에서도 모호한 태도로 반대논리를 중화시키고 북한에도 반감을 반감하려는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대북정책에 관한한 개인적 감정이나 포퓰리즘 또는 모호성은 남북관계에 독으로 작용한다. 지금 남북한 간의 평화정착과 북한 핵 폐기를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6.15 및 10.4선언이 아니다. 이 선언들은 반미종북 대통령들이 김정일에게 돈 주고 사들인 종북선언에 불과한 것들이다. 대한민국이 밀고 가야 할 급한 과제는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핵 폐기, 그것이다. 박 위원장은 6.15 및 10.4 선언을 “확고하게 지켜가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직시해 주기 바란다.
|